지바 롯데 마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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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바 롯데 마린스
Chiba Lotte Marines
이니셜 로고
회사명 주식회사 지바 롯데 마린스
설립 연도 1950년
소속 리그
퍼시픽 리그
이전 구단명
  • 마이니치 오리온스 (1950년 ~ 1957년)
  • 마이니치 다이에이 오리온스 (1958년 ~ 1963년)
  • 도쿄 오리온스 (1964년 ~ 1968년)
  • 롯데 오리온스 (1969년 ~ 1991년)
  • 지바 롯데 마린스 (1992년 ~ 현재)
홈 구장
ZOZO 마린 스타디움
수용 인원 30,200명
연고지
영구 결번
없음
역대 타이틀
아시아 챔피언(1회)
2005
한일 클럽 챔피언십(1회)
2010[1]
일본 시리즈 우승(4회)
1950 • 1974 • 2005 • 2010
리그 우승(5회)
1950 • 1960 • 1970 • 1974 • 2005
센트럴·퍼시픽 교류전 우승·최고 승률(2회)
(2015년부터 2018년까지는 최고 승률)
2005 • 2006
성적(타이틀 이외)
아시아 시리즈 출장(1회)
(굵은 글씨는 우승, 이탤릭은 준우승)
2005
한일 클럽 챔피언십 출장(1회)
(굵은 글씨는 우승, 이탤릭은 준우승)
2010
일본 시리즈 출장(6회)(굵은 글씨는 승리한 해)
4승 2패
1950 •
1960 • 1970 • 1974 • 2005 • 2010
클라이맥스 시리즈(8회)
(굵은 글씨는 승리한 해, 이탤릭은 제1 스테이지 탈락)
1승 7패
2007 • 2010 • 2013 • 2015 • 2016 • 2020 • 2021 • 2023
플레이오프(2004 ~ 2006)(1회)
(굵은 글씨는 승리한 해, 이탤릭은 제1 스테이지 탈락)
1승 0패
2005
플레이오프(전·후기제)(4회)
(굵은 글씨는 승리한 해, 이탤릭은 후기 우승)
1승 3패
1974 • 1977 • 1980 • 1981
구단 조직
구단주 신동빈(시게미쓰 아키오)
(대행: 다마쓰카 겐이치)
운영모체 롯데홀딩스
감독 요시이 마사토
유니폼
원정

지바 롯데 마린스(일본어: 千葉ロッテマリーンズ 치바 롯테 마린즈[*])는 일본프로 야구 구단으로, 퍼시픽 리그 소속이다. 팀명인 마린스(Marines)는 해병대를 의미한다.

센트럴 리그와 퍼시픽 리그라는 양대 리그가 출범한 1950년마이니치 오리온스(毎日オリオンズ)라는 이름으로 창단하여 1992년에 현재의 구단 이름으로 변경하면서, 현재의 구단주는 신동빈이 구단주 직책으로 전권을 행사하고 있다. 그전까지 신격호롯데그룹 총괄회장이 세상을 떠나면서 차남 신동빈이 직접 물려받았다.

1952년부터 1991년까지 도쿄도미야기현, 가나가와현 등의 연고지를 두었으며, 1992년부터 현재까지 지바현에 본거지를 두고 있으며 '마린스'에 앞서 '돌핀스' '파이리츠'가 팀명 물망에 올랐으나[2] 머리 글자가 주니치 드래곤스와 뒤집어쓰는 'D'였던 점(돌핀스) 이미지가 좋지 않은 점(약소 구단) 탓인지 불발됐고 두 팀 외에도 '매리너스'가[3] 거론됐다. 일본 시리즈 초대 우승 팀(1950년, 당시 마이니치 오리온스)이며, 퍼시픽 리그 우승 5회와 일본 시리즈를 4회 제패한 경력을 가지고 있다. 가장 최근의 우승은 센트럴 리그 우승 팀인 주니치 드래건스를 꺾은 2010년이며 2014년부터 매년 시즌 뒤[4] 대만을 찾고 있다.

구단의 역사[편집]

오리온스 시대[편집]

마이니치 오리온스[편집]

1949년 9월, 마이니치 신문을 모회사로 하는 ‘마이니치 구단’이 설립되어 ‘마이니치 오리온스(毎日オリオンズ)’가 결성되었다. 마이니치 신문사는 애초부터 쇼와 초기에 세미프로 야구팀인 ‘오사카 마이니치 야구단(大阪毎日野球団, 大毎野球団)’을 조직하고 있었다.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쇼리키 마쓰타로의 권유를 계기로 구단 결성의 기운이 높아져 전후의 ‘대매야구단(=오사카 마이니치 야구단)’을 기초로 자신들이 주최한 도시 대항 야구의 유력 선수를 스카우트를 해 구단을 결성했다. 9월 21일, 일본 야구 연맹에 가맹을 신청했다.

리그 확대의 분위기를 타서 가맹을 신청했지만 라이벌 사였던 요미우리 신문(요미우리 자이언츠의 모회사)과 주부 닛폰 신문사(현 주니치 신문, 주니치 드래건스의 모회사)가 강하게 반발했다. 교섭은 평행선을 걸어 전철계를 중심으로 한 마이니치 가맹 찬성파 구단에 의한 태평양 야구 연맹(퍼시픽 리그)가 결성된다고 하는 ‘양대 리그 분립 소동’으로 발전했다.

이 소동 속에서 오사카 타이거스의 주력 선수였던 와카바야시 다다시, 벳토 가오루, 도이가키 다케시, 혼도 야스지, 고 쇼세이가 마이니치로 이적했다. 가맹 찬성을 표명했지만 리그 분립 직전에 태도를 번복한 타이거스에 대해 마이니치의 보복으로 대량의 선수들을 빼돌리기 했다고 말해졌다.

이리하여 1950년의 퍼시픽 리그 정규 경기 개시로 참가했다. 본거지는 고라쿠엔 구장이고, 마이니치 신문 도쿄 본사 운동부장으로 전전에는 메이지 대학의 에이스였다가 대매야구단의 일원이 된 유아사 요시오를 총감독으로, 전 타이거스 감독인 와카바야시 다다시를 감독(선수 겸임)으로 하는 체제를 취해(실질적으로는 유아사가 감독 권한을 장악, 기록상의 감독도 유아사) 타이거스로부터의 이적해 온 선수진에 다이요 어업으로부터 스카우트를 한 고치 다쿠시, 도쿠라 가쓰키를 더하는 일명 ‘미사일 타선’을 형성, 투수에는 전년도 도시 대항 야구를 평정한 벳푸 호시노 조의 에이스 아라마키 아쓰시나, 다이요 어업으로부터 스카우트한 노무라 다케시가 활약했다.

창단 1년 만에 리그 우승, 일본 시리즈에서도 쇼치쿠 로빈스를 압도하여 초대 프로 야구 일본 시리즈 우승 팀의 자리를 차지했다. 1952년 7월, 후쿠오카 헤이와다이 구장에서 벌어진 니시테쓰 라이온스전에서 우천과 일몰을 악용해 고의로 경기를 노 게임으로 하는 마이니치 측의 책략에 관중들이 격노하여 폭동이 발생해(헤이와다이 사건) 폭동 사건에 대한 책임을 지고 유아사 총감독, 와카바야시 감독이 경질되었다. 덧붙여서 마이니치 오리온스 시대의 유니폼은 홈경기는 양키스 타입, 원정경기는 다저스 타입이었다.

다이마이 오리온스[편집]

1957년 11월 28일, 그 해 리그 최하위였던 다이에이 유니온스와 합병하여 '마이니치 다이에이 오리온스'로 개칭한다. 약칭은 다이마이 오리온스. 구단주에는 다이에이 유니온스의 구단주였던 나가타 마사이치가 취임.

다이마이로 새출발한 이후 1958년은 4위, 1959년은 준우승(리그 우승팀 난카이 호크스와 6게임 차)을 기록했고, 맹장 니시모토 유키오 감독이 취임한 1960년에는 에노모토 기하치, 야마우치 가즈히로, 다미야 겐지로 등 발군의 파괴력을 가진 일명 '미사일 타선'의 힘으로 10년만에 리그 우승을 차지한다. 그러나 다이요 웨일스와의 일본 시리즈에서는 0승 4패로 참패했고, 시리즈 2차전에서 스퀴즈 작전 실패가 나가타 구단주의 노여움을 사 니시모토 감독은 1년만에 해임되었고, 그 이후는 B클래스(1961년~62년 4위,1963년 5위)로 추락했다.

1960년 이후 마이니치 측 구단 임원이 전원 사퇴하면서 구단 경영의 전권은 사실상 나가타가 행사하게 되었고, 1962년 6월, 고라쿠엔 구장을 떠나 나가타 구단주가 사재를 털어 건립한 도쿄 스타디움으로 본거지를 옮긴다.

도쿄 오리온스 시대[편집]

1964년, 구단명을 도쿄 오리온스로 개칭. 현재의 지역 밀착 방법과는 약간 거리가 먼, 도쿄도를 본거지로 하는 타 구단들이 도쿄를 구단명에 넣지 않은 것을 나가타 구단주가 주목하여 "도쿄를 본거지로 하는 구단 중에서 유일하게 '도쿄'를 자칭하는 우리 오리온스야말로 도쿄를 대표하는 팀"이라고 발안한 것이 계기였다. 하지만 이 개칭은 마이니치 신문사 측과 교섭없이 진행되어 마이니치 측이 불쾌감을 표시한 결과, 마이니치는 1966년을 마지막으로 스폰서를 중단했다. 이에 따라 구단은 나가타 측이 완전히 장악하게 되었다.

이 시기의 성적은 4년 연속 B클래스였고, 다이마이 시절의 1961년~63년까지 포함하면 7년 연속 B클래스였다.

이후, 1969년 제과회사 롯데가 구단을 인수했는데 롯데 외에도 산토리 마쓰시타 전기 도시바 산요 전기 등이 구단 인수 물망에 거론됐지만 구단 경영에 용훼하지 말라는 오리온스 측의 제휴 조건 때문에 좌절됐다[5].

마린스 시대[편집]

침체기[편집]

제2차 밸런타인 감독 시대[편집]

2004년에 1995년에 롯데를 2위로 끌어올린 바비 밸런타인을 재선임함으로써 롯데는 다시 상위권 싸움에 돌입하였고 닛폰햄과 3위자리를 놓고 오르락 내리락하며 시즌 마지막 경기까지 3위 싸움을 하였고 시즌 마지막 경기에서 롯데가 이기고 닛폰햄이 지면 플레이오프에 진출하고 닛폰햄이 비기면 규정에 따라 작년 시즌 상위 랭크인 롯데가 홈구장에서 플레이오프 직행 티켓을 걸고 타이 브레이커를 치루게 될 수 있었으나 롯데와 닛폰햄이 모두 승리함으로써 롯데는 반 게임차로 닛폰햄에게 진출권을 내주게된다. 하지만 2004년에는 프로야구 재편 문제로 파업이 일어나 2경기가 취소된 탓이 컸기에 더욱 아쉬웠던 시즌이었다.그래도 9년만에 5할 달성에 성공하였다.

2005년에는 플래툰 시스템을 이용해 초반부터 선두를 지켰고 이 시즌에 처음 실시된 교류전에서 우승을 하는 등 선두를 지켰으나 후반기에 힘이 떨어져 2위를 기록하게 된다. 그래도 10년만의 A클래스 및 플레이오프 진출이었고 승률은 0.632의 높은 승률이었다. 제 1스테이지에서 세이부를 2승 무패로 가볍게 누르고 제 2 스테이지에서 다이에를 인수한 소프트뱅크와 리그 우승 및 일본시리즈 진출권을 놓고 겨루게 된다.롯데는 예상을 뒤엎고 2연승으로 앞서다가 2연패로 몰려 일본시리즈 진출 실패 위기에 놓였으나 5차전에 천신만고 끝에 역전승을 거두어 31년만에 퍼시픽 리그 우승 및 일본시리즈에 진출하게 된다. 일본시리즈에서 한신 타이거스를 4승 무패로 제압하여 일본시리즈 우승을 거두었고 이어서 아시아 시리즈에서도 3승 무패로 우승을 하는 등 최고의 한해를 보낸다.

2006년에는 전년도에 이어 교류전 2연패를 달성하였으나 상위팀들과 격차가 크게 벌여저 4위를 기록하여 2년 연속 플레이오프 진출 실패하게 된다.

2007년에는 2위로 클라이맥스 시리즈에 진출하여 퍼스트 스테이지에서 소프트뱅크를 2승1패로 제압하고 파이널 스테이지에서 닛폰햄과 맞붙었으나 2승3패로 패퇴하여 2년만의 일본시리즈 진출을 실패한다.

2008년에는 8월 말까지 하위권을 기록하였으나 9월 초에 다시 상위권 싸움에 불을 지폈고 한동안은 3위권을 지켰으나 결국 닛폰햄에게 반 게임차로 밀려 4위를 기록함으로써 클라이맥스 시리즈 진출에 실패한다.

결국에는 성적 부진 및 프런트와 재계약을 놓고 갈등을 빚게 된 바비 밸런타인 감독은 태업을 하였고 롯데는 이 여파로 시즌 초부터 꼴찌를 하여 하위권을 전진하게 되나 오릭스를 가까스로 제치고 5위를 기록하여 꼴찌를 면했다. 바비 밸런타인은 롯데와 다시 재계약을 하지 않음으로써 팀을 떠난다.

역대 연고지[편집]

역대 감독[편집]

〈 〉은 재임 차수.

연도별 성적[편집]

연도 감독 순위 경기 승리 패전 무승부 승률 승차 타율 홈런 평균자책점 비고
1950년 유아사 요시오 1위 120 81 34 5 .704 - .286 124 3.42
1951년 유아사 요시오 3위 110 54 51 5 .514 22.5 .258 59 3.25
1952년 유아사 요시오·벳토 가오루 2위 120 75 45 0 .625 1 .264 72 2.87
1953년 와카바야시 다다시 5위 120 56 62 2 .475 14.5 .252 56 3.13
1954년 벳토 가오루 3위 140 79 57 4 .581 10.5 .236 89 2.69
1955년 벳토 가오루 3위 142 85 55 2 .607 14 .251 89 2.46
1956년 벳토 가오루 4위 154 84 66 4 .558 13.5 .234 95 2.40
1957년 벳토 가오루 3위 132 75 52 5 .587 8 .239 80 2.47
1958년 벳토 가오루 4위 130 62 63 5 .496 16 .239 72 2.79
1959년 벳토 가오루 2위 136 82 48 6 .631 6 .255 114 2.76
1960년 니시모토 유키오 1위 133 82 48 3 .631 - .262 100 2.66
1961년 우노 미쓰오 4위 140 72 66 2 .521 15 .258 103 3.23
1962년 우노 미쓰오 4위 132 60 70 2 .462 18 .268 92 3.71
1963년 혼도 야스지 5위 150 64 85 1 .430 23.5 .246 117 3.05
1964년 혼도 야스지 4위 150 77 68 5 .531 6 .249 93 2.86
1965년 혼도 야스지 5위 140 62 74 4 .456 25.5 .232 117 2.90
1966년 다마루 히토시 4위 134 61 69 4 .469 18 .240 112 2.93
1967년 도쿠라 가쓰키·노닌 와타루 5위 137 61 69 7 .469 14 .240 87 3.01
1968년 노닌 와타루 3위 139 67 63 9 .515 13 .262 155 3.32
1969년 노닌 와타루 3위 130 69 54 7 .561 5.5 .260 142 3.11
1970년 노닌 와타루 1위 130 80 47 3 .630 - .263 166 3.23
1971년 노닌 와타루·오사와 게이지 2위 130 80 46 4 .635 3.5 .270 193 3.77
1972년 오사와 게이지 5위 130 59 68 3 .465 20.5 .264 148 4.54
1973년 가네다 마사이치 3위 130 70 49 11 .588 (2)(2) .264 139 3.43 전기 2위, 후기 2위
1974년 가네다 마사이치 1위 130 69 50 11 .580 (2)(1) .265 114 3.18 전기 2위, 후기 1위
1975년 가네다 마사이치 4위 130 59 65 6 .476 (6)(2) .259 108 3.33 전기 6위, 후기 2위
1976년 가네다 마사이치 3위 130 63 56 11 .529 (3)(3) .258 99 2.96 전기 3위, 후기 3위
1977년 가네다 마사이치 3위 130 60 57 13 .513 (5)(1) .270 111 3.17 전기 5위, 후기 1위
1978년 가네다 마사이치 4위 130 53 62 15 .461 (5)(3) .269 115 4.01 전기 5위, 후기 3위
1979년 야마우치 가즈히로 4위 130 55 63 12 .466 (4)(3) .274 150 4.30 전기 4위, 후기 3위
1980년 야마우치 가즈히로 2위 130 64 51 15 .557 (1)(3) .280 184 4.15 전기 1위, 후기 3위
1981년 야마우치 가즈히로 3위 130 63 57 10 .525 (1)(3) .277 126 4.16 전기 1위, 후기 3위
1982년 야마모토 가즈요시 5위 130 54 69 7 .439 (6)(4) .263 123 4.24 전기 6위, 후기 4위
1983년 야마모토 가즈요시 6위 130 43 76 11 .361 39.5 .264 128 5.12
1984년 이나오 가즈히사 2위 130 64 51 15 .557 8.5 .275 149 4.22
1985년 이나오 가즈히사 2위 130 64 60 6 .516 15 .287 168 4.80
1986년 이나오 가즈히사 4위 130 57 64 9 .471 13 .281 171 4.34
1987년 아리토 미치요 5위 130 51 65 14 .440 20 .264 104 3.67
1988년 아리토 미치요 6위 130 54 74 2 .422 21 .262 100 4.38
1989년 아리토 미치요 6위 130 48 74 8 .393 21.5 .266 119 4.50
1990년 가네다 마사이치 5위 130 57 71 2 .445 25 .262 132 4.22
1991년 가네다 마사이치 6위 130 48 77 5 .384 33.5 .260 89 4.23
1992년 야기사와 소로쿠 6위 130 54 74 2 .422 26.5 .241 89 3.82
1993년 야기사와 소로쿠 5위 130 51 77 2 .398 23.5 .251 95 4.08
1994년 야기사와 소로쿠 5위 130 55 73 2 .430 21 .261 104 4.50
1995년 바비 밸런타인 2위 130 69 58 3 .543 12 .254 88 3.27
1996년 에지리 아키라 5위 130 60 67 3 .472 15.5 .252 85 3.68
1997년 곤도 아키히토 6위 135 57 76 2 .429 19.5 .249 75 3.84
1998년 곤도 아키히토 6위 135 61 71 3 .462 9.5 .271 102 3.70
1999년 야마모토 고지 4위 135 63 70 2 .474 15.5 .257 97 3.64
2000년 야마모토 고지 5위 135 62 67 6 .481 9 .259 109 4.73
2001년 야마모토 고지 5위 140 64 74 2 .464 14 .258 133 3.93
2002년 야마모토 고지 4위 140 67 72 1 .482 23 .247 101 3.72
2003년 야마모토 고지 4위 140 68 69 3 .496 14 .271 145 4.37
2004년 바비 밸런타인 4위 133 65 65 3 .500 .264 143 4.40
2005년 바비 밸런타인 1위 136 84 49 3 .632 .282 143 3.21
2006년 바비 밸런타인 4위 136 65 70 1 .481 .252 111 3.78
2007년 바비 밸런타인 2위 144 76 61 7 .555 2 .262 107 3.26
2008년 바비 밸런타인 4위 144 73 70 1 .510 4.5 .268 127 4.14
2009년 바비 밸런타인 5위 144 62 77 5 .446 18.5 .256 135 4.23
2010년 니시무라 노리후미 3위 144 75 67 2 .528 2.5 .275 126 4.10
2011년 니시무라 노리후미 6위 144 54 79 11 .406 33.5 .241 46 3.40
2012년 니시무라 노리후미 5위 144 62 67 15 .481 10 .257 64 3.13
2013년 이토 쓰토무 3위 144 74 68 2 .521 8.5 .262 91 3.77
2014년 이토 쓰토무 4위 144 66 76 2 .465 14 .251 96 4.14
2015년 이토 쓰토무 3위 143 73 69 1 .514 18.5 .257 85 3.69
2016년 이토 쓰토무 3위 143 72 68 3 .514 15 .256 80 3.66
2017년 이토 쓰토무 6위 143 54 87 2 .383 39 .233 95 4.22
2018년 이구치 다다히토 5위 143 59 81 3 .421 28.5 .247 78 4.04
2019년 이구치 다다히토 4위 143 69 70 4 .496 9.5 .249 158 3.90
2020년 이구치 다다히토 2위 120 60 57 3 .513 14 .235 90 3.81
2021년 이구치 다다히토 2위 143 67 57 19 .540 2.5 .239 126 3.67
2022년 이구치 다다히토 5위 143 69 73 1 .486 7.5 .231 97 3.39
2023년 요시이 마사토 2위 143 70 68 5 .507 15.5 .239 100 3.40
  • 2023년 시즌 종료 기준, 순위에서 굵은 글씨는 일본 시리즈 우승.
  • 통산 성적 : 4803승 399무 4778패(승률 .501)

구단 기록[편집]

경기·승패·승률에 관한 기록[편집]

1950년부터 현재까지의 팀 순위, 붉은점은 일본 시리즈 우승을 나타냄
  • 리그 우승 : 5회
(1950년, 1960년, 1970년, 1974년, 2005년)[8]
  • 일본 시리즈 우승 : 4회
(1950년, 1974년, 2005년, 2010년)
  • 클라이맥스 시리즈 우승 : 1회
(2010년)
  • 아시아 시리즈 우승 : 1회
(2005년)
  • 한일 클럽 챔피언십 우승 : 1회
(2010년)
  • 센트럴·퍼시픽 교류전 우승 : 2회
(2005년, 2006년)
  • 전기 우승 : 2회
(1980년 전기, 1981년 전기)
  • 후기 우승 : 2회
(1974년 후기, 1977년 후기)
  • A클래스 : 31회
(1950년 ~ 1952년, 1954년 ~ 1957년, 1959년, 1960년, 1968년 ~ 1971년, 1973년, 1974년, 1976년, 1977년, 1980년, 1981년, 1984년, 1985년, 1995년, 2005년, 2007년, 2010년, 2013년, 2015년 ~ 2016년, 2020년 ~ 2021년, 2023년)
  • B클래스 : 43회
(1953년, 1958년, 1961년 ~ 1967년, 1972년, 1975년, 1978년, 1979년, 1982년, 1983년, 1986년 ~ 1994년, 1996년 ~ 2004년, 2006년, 2008년, 2009년, 2011년 ~ 2012년, 2014년, 2017년 ~ 2019년, 2022년)
  • 연속 A클래스 진입 최장 기록(4년 타이 기록) : 2회(1954년 ~ 1957년, 1968년 ~ 1971년)
  • 연속 B클래스 최장 기록(9년 타이 기록) : 2회(1986년 ~ 1994년, 1996년 ~ 2004년)
  • 최하위 횟수 : 9회(1983년, 1988년, 1989년, 1991년, 1992년, 1997년, 1998년, 2011년, 2017년)
  • 최다 승리 : 85승(1955년)
  • 최다 패전 : 87패(2017년)
  • 최다 무승부 : 15무(1978년, 1980년, 1984년)
  • 최고 승률 : .704(1950년)
  • 최저 승률 : .361(1983년)
  • 최소 경기차 : 1경기차(1952년)
  • 최대 경기차 : 39.5경기차(1983년)

그 외의 기록[편집]

  • 최다 홈런 : 193개(1971년)
  • 최소 홈런 : 56개(1953년)
  • 최고 타율 : .287(1985년)
  • 최저 타율 : .232(1965년)
  • 최고 평균자책점 : 2.40(1956년)
  • 최저 평균자책점 : 5.12(1983년)
  • 최다 연승 : 18연승(1960년)
  • 최다 연패 : 18연패(1998년)

역대 홈구장[편집]

역대 외국인 선수[편집]

같이 보기[편집]

각주[편집]

  1. 2010년도는 아시아 시리즈의 대체한 대회로서 한일 클럽 챔피언십을 개최하였다.
  2. “この機会に、千葉ロッテマリーンズの本拠地の歴史を振り返ってみましょうか☆”. ameba. 2011년 11월 11일. 2022년 4월 4일에 확인함. 
  3. 김찬석 (1991년 12월 3일). “[해외스포츠] 日롯데오리온즈 탈꼴찌 "몸부림". 국제신문. 2024년 3월 11일에 확인함. 
  4. 阿佐智 (2019년 2월 26일). “楽天イーグルス、台湾遠征。台湾に遠征した日本プロ野球チームを振り返る”. 야후 재팬 뉴스. 2024년 2월 15일에 확인함. 
  5. 신동호 특파원 (1969년 1월 19일). “日本(일본)프로 野球場(야구장)에 새유니폼 롯데팀 誕生(탄생)”. 조선일보. 2024년 3월 13일에 확인함. 
  6. 三浦馨 (2015년 8월 14일). “放棄試合…2軍監督へ降格 帰郷、古葉カープ見守る”. 산케이신문. 2022년 4월 2일에 확인함. 
  7. 三浦馨 (2015년 8월 14일). “放棄試合…2軍監督へ降格 帰郷、古葉カープ見守る”. 산케이신문. 2022년 4월 2일에 확인함. 
  8. 1974년은 플레이오프에서 한큐 브레이브스를 누르고 우승한(전·후기 통산으로의 승률 1위 : .580) 이후 36년간 승률 1위가 된 적은 없었고, 라쿠텐을 제외한 11개 구단에서 가장 리그에서의 연간 승률 1위로부터 멀어지고 있다(NPB 기록은 다이요 웨일스의 37년간)

외부 링크[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