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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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이스 영토. 녹색은 Altere Linie, 오렌지색은 Jüngere Linie

로이스(Reuß)독일 중부 튀링겐 지방에 있었던 후국(侯國)이다. 1918년 당시에는 로이스 Altere Linie(兄系)와 로이스 Jüngere Linie(弟系), 두 영토로 나뉘어 있었다.

역사[편집]

로이스 Jüngere Linie[편집]

1806년에 로이스-슐라이츠(Schleiz: 로이스-게라[Gera] 포함), 로이스-로벤슈타인(Lobenstein), 로이스-쾨스트리츠(Köstritz), 로이스-에베르스도르프(Ebersdorf)의 군주의 작위가 모두 후작(候爵)으로 올라갔다. 1824년 로벤슈타인과 에베르스도르프가 합병하였고, 1848년에 위의 모든 영토들이 통합하여 로이스 Jüngere Linie가 성립하였다.

독일제국이 와해된 1918년까지 계속되었는데, 1871년 독일제국의 한 영방(領邦)이 되었다. 1918년 자유주가 된 후 1920년 튀링겐주에 합병되었다. 수도는 게라시에 두고 있었다. 면적은 826.7㎢이었고, 인구는 1905년 당시 14만 4570명이었다.

로이스 ältere Linie[편집]

1790년에 후국이 되어 1918년까지 계속되었다. 1871년 독일제국의 일부가 되었다. 1918년 자유주가 된 후 1920년 튀링겐주에 합병되었다. 수도는 그라이츠에 두고 있었다. 면적은 316.7㎢로 독일제국의 22개 영방국가 중에서 가장 작았다. 인구는 1905년 당시 7만 590명이었다. 1927년 마지막 군주 하인리히 24세가 미혼인 채 죽어, 이 가계는 대가 끊어졌다.

남자 자손의 이름[편집]

로이스의 통치자인 로이스 가(家)는 모든 남자 자손들의 이름이 하인리히(Heinrich)라는 것이 특이하다. 이것은 12세기에 그들 가문에게 베이다(Weida)와 게라(Gera)의 영토를 주었던 신성(神聖)로마제국황제 하인리히 6세를 기념하기 위한 것이었으나, 가족법으로 규정된 것은 1688년부터였다. 가문 전체의 모든 남자 자손들의 이름이 하인리히였기 때문에, 이름 뒤에 '~세(世)'를 붙여 서로를 구분했다.

같은 아버지를 둔 형제 사이라도 '~세(世)'가 연속해서 이어지지는 않았다. 숫자는 전체 가문의 남자아이들에게 태어난 순서대로 붙여지기 때문이다. 가령 하인리히 67세의 다섯 아들들은 하인리히 5세, 하인리히 8세, 하인리히 11세, 하인리히 14세, 하인리히 16세였다.

한편, 그 숫자가 무한히 늘어나지는 않았다. Altere Linie에서는 100까지 숫자가 매겨지면, 그 다음부터 태어나는 남아(男兒)부터는 다시 1세로 돌아가 숫자를 붙인다. 한편 Jüngere Linie에서는 세기(世紀)가 바뀌면 그 때부터 태어나는 남아부터는 다시 '1세'로 돌아가 숫자를 붙인다.

제 1차 세계대전 이후의 로이스家[편집]

  • 로이스家 당주
    • 1918년 - 1927년 하인리히 24세 (兄系)
    • 1918년 - 1928년 하인리히 27세 (弟系)
    • 1927년 - 1945년/1962년 하인리히 45세 (1895-? : 1945년 소련군에 의해 납치실종, 1962년 사망선언)
      • 하인리히 45세는 로이스-슐라이츠家 최후의 남자였기 때문에, 1935년에 독립한 분가(分家) 로이스-쾨스틀리츠家에서 양자(작위상속이 아닌 재산상속을 목적으로) 하인리히 1세(1910~82)를 맞았다. 그는 하인리히 45세의 조카딸 보이슬라바 페오도라 추 메클렌부르크(1918~)와 결혼했는데, 그녀는 1990년대 초에, 자신의 장남 하인리히 8세에게 로이스家의 재산이 반환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 1962년 - 2012년 하인리히 4세 (1919-, 로이스-쾨스틀리츠의)
    • 2012년 - 현재 : 하인리히 14세 (1955-)
      • 후계자 : 하인리히 29세 (199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