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만 폰 운게른슈테른베르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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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만 폰 운게른슈테른베르크

출생 1885년 12월 29일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그라츠
사망 1921년 9월 15일 (35세)
소련 소련 노보시비르스크
사인 사형
거주지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러시아 제국 러시아 제국몽골 몽골
국적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러시아 제국 러시아 제국몽골 몽골
별칭 몽골의 미친 남작
직업 정치인, 군인
종교 러시아 정교회티베트 불교

로만 폰 운게른슈테른베르크 남작(러시아어: Ро́берт-Ни́колай-Максими́лиан Рома́н Фёдорович фон У́нгерн-Ште́рнберг, 1885년~1921년)은 오스트리아 태생의 러시아 제국의 군인으로, 1921년의 단 1년 동안에 몽골을 정복하여 독재정치를 한 인물이다. 티베트 불교에 심취한 그는, 그러나 제멋대로 티베트 불교의 교리를 왜곡하여, 자신을 '살아있는 부처'로 여길 정도의 기행을 하고, 1년간의 몽골 통치기간 동안, 엄청난 수의 몽골인을 학살하여, 몽골의 미친 남작으로 통하는 불명예를 안았다. 몽골 역사상 유일하게 몽골을 직접 통치한 유럽계의 사람이다.

초기 생애[편집]

1885년오스트리아-헝가리그라츠에서 발트 독일인 귀족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어린 시절에 아버지를 따라, 러시아로 이주했다. 이후 러시아 제국 육군에 입대하여, 1908년에는 청나라와의 국경 지대를 수비하는 코사크 기병대의 장교가 된다. 그 후, 제1차 세계 대전이 발발함에 따라, 그는 우크라이나카르파티아 산맥으로 배치되어, 이곳에서 소령까지 승진하였으나, 1917년10월 혁명이 발발하면서 그는 군인으로서의 지위를 상실했다. 니콜라이 2세 황제가 살해당한 1918년 이후에는 러시아 백군에 가담하여, 러시아 내전에 종군하였다.

몽골의 독재자[편집]

그러나, 1921년에 상관의 명령으로 당시 몽골의 수도였던 우르가에 자신의 부대를 진주시킨 그는, 곧 상부의 명령을 무시하고 몽골복드 칸을 체포해 폐위시켜 버렸다. 그리고는 스스로 몽골의 칸을 자칭하고는 공포정치를 시행하였다. 이때, 이미 티베트 불교에 심취해 있던 남작은 자신이 부처라는 망상에 사로잡혔고, 사람들을 죽여 윤회를 통해 환생시켜 구원한다는 그릇된 생각에 따라, 수많은 몽골인을 학살하기에 이르렀다. 남작과 그의 군인들이 저지르는 상상을 초월한 대량 학살 행위에 분노한 몽골인들은 그의 이러한 폭정에 격렬하게 저항하였고, 곧 복드 칸의 밀지를 받은, 몽골 공산당의 지도자인 담딘 수흐바타르가 시민들을 모아 우르가로 진격하였다.

최후[편집]

1921년 당시, 우르가에 있던 의 궁전에서 잠을 자던 남작은 담딘 수흐바타르가 지휘하는 혁명군이 다가오자 부하 장병들에게 이를 토벌하라는 명령을 내린다. 그러나 그의 휘하의 부대에 속해있던 병사들은 자신들이 혁명군을 상대하기에는 역부족임을 깨닫고는 남작을 버리고 달아나 버렸다. 결국 남작은 몰래 궁을 빠져 나왔지만, 이내 담딘 수흐바타르의 연락을 받은 소련붉은 군대가 그를 체포해 노보시비르스크로 압송하였다. 그는 이곳에서 치뤄진 재판을 통해 사형을 선고받고, 9월 15일에 처형되었다. 이후 블라디미르 레닌은 그의 시체를 몽골에 돌려주었으나, 몽골인들은 그의 시체를 우르가의 길거리에 내던져 버렸다.

이후[편집]

남작의 죽음 이후, 몽골의 수도인 우르가울란바토르(몽골어: Улаанбаатар)로 개칭되었고, 복드 칸은 스스로 퇴위하고 정권을 국민들의 지지를 받던 공산당에 넘겨주어, 아시아 최초의 공산주의 국가인 몽골 인민공화국이 성립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