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오니트 텔랴트니코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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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오니트 페트로비치 텔랴트니코프 (러시아어:Леонид Петрович Телятников; 1951년 1월 25일, 카자흐스탄 코스타나이 베덴카 ~ 2004년 12월 2일, 우크라이나 키예프)는 소련의 소방관이다. 그는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 소방부서의 책임자이었으며 체르노빌 사고 당시 4호기의 소방팀에서 화재진압을 지도했다. 텔랴트니코프가 지휘하는 소방팀은 방사선 위험에도 불구하고, 그들에는 방사능 방호복 한 벌, 인공호흡기 및 작동되는 방사선량계가 없었다. 화재진압 이후 실시된 혈액 검사의 결과에서 그는 4,000mSv(밀리시버트)로 판정받았다.

한 자료에 따르면, 텔랴트니코프는 1986년 4월에 발생한 폭발 후에 체르노빌 원자로에서 화재 진압을 이끌었다. 그때 텔랴트니코프는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 소방부서의 책임자였다. 텔랴트니코프와 그의 부하들은 4,000mSv의 방사능 오염을 무릅쓰고 화재 진압을 위해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 지붕 위로 올라갔다.

다른 자료는 조금 차이가 있는 설명을 한다.

레오니트 텔랴트니코프는 체르노빌 소방서의 지휘관으로 사고 당일이 자신의 비번이었다. 하지만 그는 프리피야트에 살고 있었고, 전화로 경보 신호를 받았다. 그는 소방수들이 진압임무를 시작하고 10분쯤 후에 원자로에 도착하여 전반적인 지휘를 시작하였다. 텔랴트니코프는 3호기의 지붕에 올랐다. 지붕에는 적어도 5개의 불덩이가 있었지만, 원자로는 여전히 작동하고 있었다. 우선사항은 명백했다. 피해가 없는 원자로와 기계실의 화재를 진화하는 것이었다. 그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키예프 소방여단이 교대를 위해 도착하기 전까지 불길이 번지는 것을 막지 못하였다. 1987년에 텔랴트니코프는 소련 영웅으로 임명되었다. 그의 하급자인 블라디미르 프라비크과 빅토르 키베노크도 사고 당시의 화재진압을 하다가 방사능 노출로 숨을 거두어 소련 영웅 지위가 수여되었다. 텔랴트니코프는 소련 내무부, 소련 붕괴 후에는 우크라이나 내무부에서 계속 근무하였다. 1998년에 텔랴트니코프는 키예프의 의용소방대를 이끌었고, 청소년 소방의용대 프로그램을 설계했다. 그는 53세의 나이에 으로 인하여 죽었다. 2006년 4월 25일 체르노빌 사고 20주년 행사에서, 텔랴트니코프가 묻힌 키예프의 바이코베 묘지에서 그의 기념비가 건립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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