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미폰 아둔야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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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마 9세
Phumiphon Adunyadet
Bhumibol Adulyadej 2010-9-29 2 cropped.jpg
타이 타이 제9대 국왕
본명 푸미폰 아둔야뎃
재위 1946년 6월 9일~ 현재
종교 소승불교
출생일 1927년 12월 5일(1927-12-05) (86세)
출생지 미국 미국 매사추세츠 주 케임브리지
왕비 시리낏 끼띠야꼰
자녀 우본라따나
마하 와치라롱꼰
짜끄리 시린톤
쭐라폰 왈라일락
부왕 마히돈 아둔야뎃
모비 시나가린드라
이전 왕 아난타 마히돈
서명 King Rama IX Signature.svg
푸미폰(중앙)과 모친, 아난타 마히돈(좌측), 갈야니 바다나(우측)

푸미폰 아둔야뎃(타이어: ภูมิพลอดุลยเดช, Phumiphon Adunyadet 1927년 12월 5일 ~ )은 타이의 현 군주이다. 짜끄리 왕조의 라마 9세이며, 공식적으로는 "대왕"으로 불리는 타이국왕이다. 1927년 12월 5일 출생, 1946년에 즉위 후 68년간 집권하여, 현존하는 국가 원수 중 가장 오랜 기간 자리를 지키고 있다. 동시에 영국엘리자베스 2세 여왕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나이가 많은 국왕이다.

초기 생애[편집]

푸미폰 국왕은 미국 매사추세츠 주 케임브리지에서 1927년 12월 5일 태어났다. 그가 태어났을 때는 타이에서 프라워라웡트 프라옹짜오 푸미폰아둔야뎃(타이어: พระวรวงศ์เธอ พระองค์เจ้าภูมิพลอดุลยเดช)이라고 알려졌으며, 모친이 평민이라는 사실이 반영되었다. 그가 태어나기 몇 년 전에 그의 삼촌이었던 프라차티뽁 왕이 왕실과 평민 사이의 자식을 '프라옹짜오'라고 부르도록 법을 통과시키지 않았다면, '몸짜우'로 불렸을 것이다. 그의 이름 푸미폰 아둔야뎃은 '땅의 강함, 비교할 수 있는 힘'이라는 의미이다.

푸미폰은 1928년 부친이었던 마히돈 왕자가 하버드 대학에서 의학 공부를 마친 후 타이에 돌아왔다. 그는 즉시 방콕에 있는 메터 데이 학교에 들어갔다. 하지만 마히돈이 1929년에 사망하면서, 1933년에 그의 모친이 남은 가족을 스위스로 데려갔다. 그는 그곳 로잔에서 학교를 다녔다. 1935년 형인 아난타 마히돈이 타이의 왕이 되자, 그와 그의 누나는 타이 왕가의 가장 상위급인 '짜우파'로 승격되었다. 가족들은 1938년 아난다 형의 대관식을 위해 모두 돌아왔지만, 대관식이 끝난 후 다시 스위스로 돌아갔다. 1942년에는 로잔 대학교에서 물리학법학을 공부했고,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나자 그들 가족은 귀국을 했다.

왕위 계승과 결혼[편집]

결혼 후의 푸미폰 왕과 시리낏 왕비

라마 8세에 즉위했던 형이 1945년 귀국한 후 1년 만에 석연찮은 죽음을 당하자, 1946년 푸미폰은 왕좌를 계승했다. 아난타의 죽음은 왕궁의 침대 맡에서 머리에 총상을 당한 것으로 오늘날까지 미해결로 남아있다. 왕위를 계승한 다음 푸미폰은 삼촌(큰아버지)인 차이낫 랑싯 프라유라삭디섭정대리청정에 임명하고 학업을 마치기 위해 1947년 스위스로 돌아갔다. 그곳에서 그는 전공을 법학에서 정치학으로 전환하여 통치자로서의 준비를 했다.

스위스에서 학위를 마치자 곧 파리를 방문했다. 그곳에서 그는 프랑스 대사의 딸인 사촌 몸라차웡 시리낏 끼띠야꼰을 만났다. 그때 그의 나이는 21세였고, 그녀는 16세였다.

1948년 10월 4일 푸미폰은 제네바 - 로잔 도로를 운전하다가 로잔 시외 10km 지점에서 교통사고를 당하였다. 척추를 다치고, 찰과상을 입었으며 오른쪽 눈을 실명하였다. 그가 병원에 있는 동안 시리낏이 자주 방문을 하여 두 사람 사이는 급격히 가까워졌다. 그녀는 어머니에게 푸미폰 곁에서 공부를 하게 해 달라고 졸랐으며, 푸미폰은 주변의 학교를 주선해 주었다. 1949년 7월 19일 조용한 약혼식을 올리고, 1950년 4월 28일 즉위식 일주일 전에 결혼을 하였다.

푸미폰 왕과 시리낏 왕비의 사이에서는 네 명의 자식들을 두었다.

푸미폰의 손자 중 한 명은 2004년 인도양 지진으로 인한 쓰나미로 사망하였으며, 우본라따나 공주의 아들이었다.

업적[편집]

푸미폰 왕은 입헌 군주이지만, 가장 최근 정치적인 위기를 포함하여 수차례 타이 정치에서 결정적인 중재를 했다. 초창기에는 군부 정권을 옹호하기도 했지만 1990년타이민주화를 촉진하여 많은 공헌을 하였다. 직접 타이의 여러 곳을 시찰하며 민정을 살폈고, 왕실의 많은 재산을 시골 지방의 발전을 위한 자금으로 제공하였다. 타이에서 국왕은 인기는 매우 높아서, 거의 신적인 인물로 존경받으며 타이 곳곳에서는 그와 왕비의 초상화가 수없이 걸려 있다.

대리청정 체제[편집]

푸미폰 아둔야뎃은 1946년부터 현재까지 재위하기까지 4번의 대리청정 체제를 거쳤는데 그 대리청정 역할을 맡은 섭정은 다음과 같다.

같이 보기[편집]

바깥 고리[편집]

전 임
라마 8세
제9대 타이 국왕
1946년-현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