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와이트 라이먼 무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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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0년경의 무디의 모습

드와이트 라이먼 무디(Dwight Lyman Moody,1837년 2월 5일 ~ 1899년12월 22일)은 미국침례교 평신도 설교자이다.

생애[편집]

유년시절[편집]

1837년 매사추세츠 노스필드(North Field)에서 소작농이자 석수인 에드윈 무디(Edwin Moody)와 베시 홀턴(Betsy Holton) 사이에서 여섯 번째 자녀로 태어났다. 초등학교 5학년때 아버지가 사고로 별세하면서 빚쟁이들이 와서 가구를 가져갈 정도로 극심한 가난에 시달렸으며, 무디도 어린나이에 농장에서 아동노동을 해야 했다. 유니테리언(단일신론)교회의 도움으로 온 가족이 흩어지는 일은 없었지만[1],초등학교5학년 이상의 공부를 하지는 못했다.

어린이 사역[편집]

17세 때인 1854년 시카고에 간 무디는 외삼촌 새뮤얼 홀턴(Samuel Holton)의 제화점에서 영업사원으로 일했는데,5년 만에 7,000달러를 모았을 정도로 억척스럽게 일했다. 1855년 주일학교 교사 에드워드 킴빌의 영향으로 기독교인이 된 그는 시카고 빈민가의 어린이들에게 전도하는 어린이 사역을 하였다. 당시 그는 어린이들에게 구두팔듯이 화려한 언변으로 전도하여, 술집을 빌려 주일학교 공과수업을 할 정도로 어린이들이 매우 많이 모였으나, 정작 그리스도를 믿는 어린이들은 없었다. 비로소 무디는 자신이 아이들을 대상으로 복음을 '영업'한 것이지, 전도한 게 아님을 알게 된다.[1]

전도[편집]

1875년 시카고 빈민가에 교회를 설립했는데, 구두판매원출신다운 쉽고 설득력있는 무디의 설교와 감성을 자극하는 가수 아이라 생키(1870년 무디의 전도사업에 참여)의 성가는 많은 이들이 신앙을 갖게 했다. 영국, 스코틀랜드, 아일랜드에서도 전도했는데, 자리가 모자를 정도로 그의 설교는 대중들의 사랑을 받았다.남북전쟁때는 전쟁터에서도 설교했는데 많은 군인들이 무디의 설교를 듣고 회개했다고 한다. 이러한 설교자로서의 활약상은 청년들이 해외선교 특히, 아시아조선선교에 관심을 갖게 했다. 무디성서학교(1886년)와 마운트 헤르몬 학교를 설립하는 업적도 남겼다.

설교집[편집]

  • 《견고한 성을 붙들다》(Holding the Fort)
  • 《기쁜 소식》(Glad Tidings)
  • 《복음을 깨달으라》(The Gospel Awakening)
  • 《위대한 구원》(The Great Redemption)
  • 《본향을 향하여》(The Way Home)
  • 《무디의 명상록》(Notes From My Bible and Thought from My Library)

어록[편집]

성서는 당신을 죄로부터 지켜줄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죄가 당신을 성서로부터 지켜줄 것이다.[2]
 
— 무디가 자신의 성서에 써 놓았다고 하는 글
언젠가는 무디가 죽었다는 소식을 신문에서 읽게 될 것입니다. 그 말을 한 마디도 믿지 마십시오. 그 순간 나는 지금 보다 더욱 생생하게 살아 있을 것입니다. 나는 1837년에 육신으로 태어났지만 1855년 영으로 태어났습니다. 육신으로 태어난 것은 죽겠지만 영으로 태어난 것은 영원히 살 것입니다.
 
1899년 뉴욕시 집회 때 한 설교
광부는 엘리베이터로 편리하게 에 가서 일하지만, 그 엘리베이터를 만들기 위해서 광산주는 많은 을 들여야했다. 마찬가지로 하느님은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서 외아들인 예수 그리스도를 희생시키는 대가를 치러야 했다.
 
광산에서 전도할 때 했다는 설교

비판[편집]

감정에 호소[편집]

무디는 전도집회때마다 인간의 이성이 아닌, 감정에 호소하는 방법을 사용하였다. 실제로 무디의 전도집회는 대형교회(Mega Church)들의 문제점들중 하나인 인간의 심리를 교묘하게 이용한 종교 이벤트의 원조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3] 따라서 청중들은 자신이 정말 그리스도복음에 복종할 수 있는가를 이성적으로 생각하는 자기 성찰없이,단지 분위기에 이끌린 일시적 그리스도인이 될 위험이 있었다. 20세기의 대표적인 복음주의 설교자인 마틴 로이드 존스는 성령강림절 설교에서 전도집회의 문제점을 다음과 같이 비판했다.

역사상 위대한 부흥의 때에는 이른바 '일시적 신자들',말하자면 부흥의 기세에 눌려 교회에 발만 거치는 사람들이 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오래 가지 못했습니다. 겉보기에는 그들도 괜찮은 신자같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습니다. 영향력도 사라지고 자극도 없어지면 금방 모든 열성을 잃고 맙니다. 그런 것은 피상적 역사에 불과합니다. 그런 사람들은 일정한 분위기가 유지되는 동안만 신자 행세를 할 뿐입니다.[4]

반지성주의[편집]

무디는 종교적인 열정만 중요하게 생각하고, 학문은 필요없는 것으로 잘못 생각하는 반(反)지성주의 기독교인이었다. 그 실례로 무디는 현대신학[6]과 현대과학에 대해 믿음이 없는 것으로 생각했으며, 기독교 근본주의를 고집하였다. 따라서 무디의 전도집회로 기독교인이 된 사람들은 자신들이 살아가는 현실을 이성적인 믿음과 풍부한 학식을 이용하여 비판하며 기독교적인 대안을 제시할 줄을 모르고 아예 관심도 없는, 한마디로 생각할 줄을 모르는 기독교인일수밖에 없었다.[3]

위 비판에 대한 반론[편집]

《감정주의 비지성주의 비판에 대하여》 비신앙인이 신앙인의 글을 비평할 수는 있다. 하지만 사람이나 글을 비판하는 것은 옳지 않은 자세다. 의견이나 이념이 다른 부분에 대한 평가는 가능 할수 있다, 하지만 비판은 다름 그 자체를 부정하는 기초에서 욕하거나 헐뜸음 그 이상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무디의 설교를 지식적 수준이 낮은 감정적 설교라는 비판은 아무래도 그의 학력수준이 낮음을 보고 이미 깔보는듯한 수준의 교만한 평가가 아닌가. 또한 신앙 즉 믿음이란 눈에 보이지 않는 대상에 대한 증거 그 자체로서의 것인데, 어찌 인간의 이성에 의존하여 학문과 지식으로 그것을 이해할려고 하는가, 신의 영역을 인간의 수준으로 낮추어 보고자 하는 미련한 의도에서인가?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 하나님을 체험해보지 못한 자의 눈에는 그것이 한낱 인간의 하챦은 감정에 의존한 설교라고 밖에 보여지지 않을 것이요, 초등학교 수준이라는 자가 어떻게 심리학을 알아 수많은 군중의 마음을 움직였으리요, 이 또한 하나님을 모르는 자에겐 최면술과 같은 한낱 눈속임과 같이 보이리라.

주석[편집]

  1. 신앙 인물 만화 06 - 드와이트 무디/이혜경 글, 그림/두란노
  2. 《주일학교 교사가 알아야 할 24가지 비결》/엘머 L. 타운즈 저/박민희 옮김/드림북 p.121
  3. 메가처치 논박
  4. 마틴 로이드 존스. 〈성령의 역사〉, 정상윤 옮김: 《승리하는 기독교》. 복있는 사람, 369쪽
  5. 살림지식총서《현대신학이야기》-현대신학:해방의 하나님, 출애굽의 하나님/박만 지음/살림
  6. 현대신학은 칼 바르트의 신정통주의 등장 이후의 모든 신학흐름을 말하며, 성서와 [전통]에 뿌리를 둔 역사와 사회인식을 특징으로 한다. 그 실례로 현대신학의 한 흐름인 해방신학정치적 억압과 빈부의 격차라는 부당한 현실을 하느님은 억압받는 사람, 가난한 사람을 편애하신다는 성서이해를 뿌리로 하여 개혁하고자 한다.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