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쿠가와 나리아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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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쿠가와 나리아키

도쿠가와 나리아키(徳川斉昭, 1800년 - 1860년)는 제9대 미토 번주이자 제15대 쇼군 도쿠가와 요시노부(徳川慶喜)의 친아버지이다.

일생[편집]

1800년 3월 11일 제7대 미토번주 토쿠가와 하루토시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어릴 때부터 아이자와 세이시사이 문하에서 미토가쿠(水戶學, 주자학을 배경으로 존왕양이를 주장했다.)을 배웠다. 1829년 맏형인 제8대 미토번주 도쿠가와 나리노부의 뒤를 이어 제9대 번주가 된다. 아들인 도쿠가와 요시노부도쿠가와 이에사다(德川家定)의 후계자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으나, 다이로이이 나오스케(井伊直弼)가 일으킨 안세이 대옥에 연루되어 가택연금 중 심근경색으로 사망했다.

인물·일화[편집]

  • 시호인 烈公(열공)에서도 짐작이 가지만 거침없는 성격으로 난세를 헤쳐나가 살아남은 인물이었다.
  • 나리아키를 싫어하는 이들도 많았다. 여색을 밝혀 형수인 미네 공주(도쿠가와 이에나리의 딸)의 시녀인 가라하시(원래는 오오쿠의 시녀였다)까지 측실로 삼을 정도였다. 이 일의 영향으로 오오쿠의 여성들은 그를 싫어했고, 아들인 도쿠가와 요시노부의 쇼군 계승에도 어려움을 주었다고 한다. 나리아키는 37명의 자녀를 두었지만 대부분이 다른 집안의 양자가 되어나 다른 가문으로 시집을 보냈다.
  • 미토학파의 영향을 받아 개국에는 반대했지만, 서양 문물에는 흥미를 보였다고 한다.
  • 인재가 부족했던 막부말의 토쿠가와가에서 카리스마와 행동력을 겸비한 유일한 인물이었다고 한다. 그렇기에 그의 죽음은 막부의 큰 타격이었고, 그가 죽은 후 미토 번에는 내분이 일어나고 그가 발굴해낸 인재도 모두 자멸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