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 베르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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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베르디
Tokyo Verdy
전체 이름 東京ヴェルディ1969
설립 연도 1969년
홈 구장 아지노모토 스타디움
수용 인원 49,970 명
구단주 일본 시마다 야스오
감독 일본 가와카쓰 료이치
리그 J리그 디비전 2
2010 J2 5위
홈경기
원정경기

도쿄 베르디(일본어: 東京ヴェルディ 도쿄 베루디[*])는 일본 도쿄 도를 연고지로 하는 J리그 소속 구단으로 1969년 요미우리 FC로 창단했다.

1990년대 초반 미우라 가즈요시, 루이 라모스, 데쓰지 하시라타니, 기타자와 쓰요시, 다카기 다쿠야일본 축구 국가대표팀 주축 선수들을 배출했으며, 김현석, 김도근, 이강진 등 국내 선수들과 재일동포인 이국수 감독, 장외룡 감독 등이 거쳐가 한국과도 인연이 깊은 팀이다.[1]

역사[편집]

모체는 일본의 대표 보수언론중의 하나인 요미우리 신문와 계열사인 니혼 TV (NTV)가 출자해 1969년 창단한 요미우리 FC이며 1969년 도쿄 지역 축구 리그 B에 최초로 참가한 이 후 그 해 우승으로 바로 다음해 리그 A로 승격 그리고 리그 A에서 또다시 우승으로 1971년 간토 지역 축구 리그로 승격 하였다. 간토 지역 축구 리그로 승격한 바로 그 해 3위를 차지하여 다시 1972년 일본 축구 리그 JSL 2부 리그로 승격하였다. 그 후 1978년 마침내 당시 일본 국내 축구 리그 최고 레벨인 JSL 1부 리그에 입성하였다.

이후 JSL 1부 3회(1982, 1983, 1987), 천황배 1회(1987), 아시안 클럽 챔피언십 1회(1988) 우승을 기록하며 당시 일본 최고 명문구단으로 자리매김 하였으며, 1992년 J리그의 전초전인 야마자키 나비스코컵 원년 대회에서 시미즈 에스펄스를 꺾고 우승을 차지한다.

요미우리 축구단은 홈경기를 국립 가스미가오카 육상 경기장도쿄 23구의 하나인 기타 구에 소재한 니시가오카 축구전용구장, 세타가야 구에 위치한 코마자와 올림픽 공원 종합운동장 육상경기장에서 개최했기 때문에 1993년 J리그 출범 당시 원래 연고지였던 도쿄 연고지를 그대로 가져가면서 와타나베 쓰네오를 비록한 구단 수뇌부는 일본 프로야구 요미우리 자이언츠처럼 요미우리 축구단 역시 일본 최대 시장인 도쿄 연고지를 발판으로 J리그의 전국구 인기 구단으로 만들고자 하였다. 반대로 당시 J리그 연맹 회장이었던 가와부치 사부로를 비롯한 J리그 수뇌부는 한 두개의 전국구 구단의 과도한 인기에 의존하기보다는 모든 구단들이 지역 밀착에 의거해 평등 구조로 리그를 운영하려던 이념을 가졌고 이 사이에 갈등이 생겼다.[2] 이런 갈등과 더불어 J리그 사무국에서는 도쿄 국립 경기장을 J리그 사무국에서 특정 구단이 독점적으로 사용할 수 없다는 명분을 내세워 도쿄 국립 경기장을 불허 하면서 당시 도쿄 국립 경기장 이외에는 J리그 규정을 만족하는 경기장이 없던 당시 사정에 따라 한국의 축구 커뮤니티 및 언론에서는 호칭하는 도쿄 연고 공동화 정책이 시행되면서[3]도쿄 인근인 가와사키를 연고지로 하여 J리그 출범 원년 리그에 참가하였다.

출범 후 J리그 원년인 1993년 J리그 2관왕(J리그 챔피언결정전, 야마자키 나비스코컵), 1994년 J리그 3관왕(제록스 슈퍼컵, J리그 챔피언결정전, 야마자키 나비스코컵)을 차지하는 구단의 최절정기를 맞았으며 이런 이런 여세를 몰아 출범시 좌절되었던 도쿄 연고지로 이전을 추진하였지만 도쿄 연고지 구단에 인기가 집중될 것을 우려한 J리그 연맹의 반대로 다시 한번 좌절되었다.[4]

1995년 J리그 챔피언결정전 준우승 및 1996년 천황배 우승을 마지막으로 팀이 쇠락기를 맞게 된다.

2001년 도쿄아지노모토 스타디움 개장과 때를 맞춰 도쿄 연고지로 복귀한 이 후 2004년 천황배에서 주빌로 이와타를 꺾고 우승을 차지했으나, 2005년 리그 17위를 기록하면서 J2리그로 강등되게 되었다. 하지만 2007년 J2리그에서 2위를 차지하면서 J1리그에 재승격했지만 2008년 17위를 기록, 1년 만에 강등되었다. 결국 강등으로 인한 경영악화로 올 시즌을 앞두고 선수 10명을 방출하는 아픔을 겪었다.

결국 이런 곡절 끝에 2009년 9월 16일(이하 한국시간) 임시 주주총회를 통해 보유주식 98.8%를 '도쿄 베르디 홀딩스'에 양도하기로 결정했다고 일본 언론들이 일제히 전했다.

최대주주였던 닛폰 TV는 팀 성적 부진으로 불거진 손실을 업무 위탁비 명목으로 보전해왔지만, 더 이상의 지원이 불가하다고 보고, 결국 주식을 양도하기에 이르렀다. 이번 주식양도를 통해 요미우리 그룹은 1969년 요미우리 축구단부터 현재까지 40년간 유지해 온 축구단 경영에서 완전히 물러나게 되었으며 도쿄 베르디 홀딩스는 구단 경영을 위해 2009년 7월에 설립된 회사로, 재일동포이자 베르디 유스팀 출신인 최창량씨가 회장을 맡고 있다.

도쿄 베르디 홀딩스는 2009년 9월 중순까지 닛폰 TV로부터 주식을 양도받은 뒤, 10월1일부터 최대 주주 지위에 올랐다. 그동안 'NTV FC주식회사'였던 베르디의 법인명도 도쿄 베르디 1969 풋볼 클럽 주식회사로 바뀌게 되었다. [1]

구단 명칭 변경사[편집]

구단 명칭 중 베르디(Verdy)는 포르투갈어녹색을 뜻하는 "베르데"(Verde)에서 파생되어 나온 것이며 구단 명칭 변경 내역은 다음과 같다.

  • 법인 명칭의 변경 내역
연도 이름 비고
1969년 ~ 1991년 요미우리 축구 클럽
1991년 ~ 1999년 1월 31일 요미우리 일본 축구 클럽
1999년 2월 1일 ~ 2009년 10월 20일 FC 닛폰
2009년 10월 21일 ~ 현재 도쿄 베르디 1969
  • 팀 호칭 변경 내역
연도 이름 비고
1969년 ~ 1991년 요미우리 축구 클럽
1992년 ~ 2000년 베르디 가와사키
2001년 ~ 2007년 도쿄 베르디 1969
2008년 ~ 현재 도쿄 베르디

역대 우승 기록[편집]

유명한 선수[편집]

바깥 고리[편집]

주석 및 참고 문헌[편집]

  1. 日NTV, 도쿄 베르디 주식 양도…재일동포 구단 인수(뉴시스 2009년9월17일자 - 2009년10월3일 확인)
  2. "J리그의 요미우리 자이언츠를 목표로 해라! 베르디의 야망-23페이지", 《J리그의 폭로 이야기》, 1994년 작성.
  3. "10년간 한국 축구 얼마나 발전했나?", 《엑스포츠뉴스》, 2012년 6월 1일 작성.
  4. 요시자키 에이지. "수도 연고지 프로팀은 흥행의 보증수표", 《베스트일레븐)》, 2000년 1월호 133P 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