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제국의 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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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제국의 국장

대한제국의 국장(大韓帝國의 國章) 또는 이화문(李花紋)은 대한제국의 나라 상징 중 하나로 원래는 황실의 문장이나 사실상 국장의 용도로 사용되었다. 조선 왕조(전주 이씨)를 상징하는 꽃인 이화(李花, 오얏꽃)를 도안화하였다. [1][2]

대한제국의 탄생[편집]

황제가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제단인 원구단은 고종 34년(1897) 조선이 황제국인 대한제국이 되었으므로 독자적인 제천의식이 있어야 한다는 대신들의 주장와 연명상소에 의해 재건되었다. 원구단이라는 이름은 단이 둥글게 쌓았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지신(地神)에 제사 드리는 사직단(社稷壇)이 음양론(陰陽論)에 따라 방형으로 쌓는 것과는 달리 원구단은 고대 중국의 전통적인 의례와 원이상천(圓以象天)이란 관념에 따라 둥근 모양으로 만들어져 있다. 대한제국이라는 국명을 선포하면서 국민국가 탄생을 알리는 대표적인 증좌로 국기(國旗)와 함께 조선 왕조(전주 이씨)를 상징하는 꽃인 이화(李花, 오얏꽃)를 도안화하였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대한제국의 나라 상징 중 하나로 원래는 황실의 문장이나 사실상 국장의 용도로 사용되었다.

대한제국의 규모와 체제는 역대의 예전(禮典)을 기초로 하여 영선사(營繕使) 이근명(李根命) 등을 시켜 길지인 남교(南郊) 회현방 바로 지금의 소공동으로 건립지를 선정한 후 단(壇)을 건립하였다. 원구단 건립과 더불어 조선은 대한제국이 되었다. 새로운 국가와 새로운 정치가 요구되었다. “누가 새로운 시대의 주체가 되어야 하는가”라는 질문은 제국주의를 겪어온 대한제국의 정치가들에게 현실적인 맥락에서 읽혀졌고, 독립을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황제권의 강화라고 인식되었다. 그러므로 대한제국은 민권의 신장보다는 황제권의 강화와 위상제고사업에 많은 관심을 기울였다.[1][2]

오얏꽃 문장[편집]

대한제국에 들어와 황실의 문장(紋章)처럼 쓰이게 되었다. 대한제국의 훈장 가운데 두번째 높은 등급이 이화(李花, 오얏꽃) 대훈장이기도 하다. 일본 왕실이 국화를 문장으로 쓰고, 유럽의 서양 왕실이나 귀족가문들도 각각 꽃을 문장으로 쓰는 데 대해 대한제국 황실에서도 문장을 사용할 필요를 느껴 이화를 쓰게 된 것으로 이화가 건물의 장식으로도 등장하게 된 것이다.[2]

사진[편집]

같이 보기[편집]

주석[편집]

  1. 《문화원형백과》, 대한제국, 한국콘텐츠진흥원(2004년판)
  2. 「꽃으로 보는 한국문화」, 대한제국 황실문장, 이상희 저, 넥서스BOOKS(2004년, 75~79p)

참고 자료[편집]

  • 「우리 궁궐 이야기」, 외전(오얏꽃 황실문양), 홍순민 저, 청년사(1999년, 210~260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