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의 인터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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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문서에서는 대한민국인터넷에 대한 현상과 특색에 대해 다룬다

개요[편집]

대한민국의 인터넷 이용자 수

1982년 5월, 전길남 일본 게이오기주쿠 대학 석좌교수 겸 KAIST 전산학과 명예교수가 대한민국 내 처음으로 서울대학교 컴퓨터공학과와 구미 전자기술연구소(KIET)의 두 개의 중형 컴퓨터에 IP 주소를 할당받아 전용선으로 연결하고 이를 패킷 교환 방식으로 연결하는데 성공했다.[1]

데이콤(현 LG유플러스)이 1986년 PC 통신 '천리안' 서비스를 시작하고 1988년 유료 가입자를 유치하기 시작하면서 PC 통신의 대중화가 시작됐다. 이어 하이텔, 나우누리, 유니텔 등 4대 서비스가 등장하면서 PC 통신 가입자가 350만 명을 돌파하는 등 전성기를 맞았다.[1]

2000년대 초반은 PC 통신에서 인터넷 서비스로 급속히 전환되던 시기였다. 2003년 '하이텔'이 기존 VT(가상터미널) 기반 PC 통신 서비스와 단절된 완전 인터넷 기반 커뮤니티로 거듭난다고 선언한 게 화제가 됐다. PC 통신과 인터넷을 병행하던 '천리안'과 '나우누리'도 이어 인터넷으로 완전 전향하면서 PC 통신 시대가 막을 내렸다.[2]

연구 목적으로 일부만 사용할 수 있었던 인터넷은 1994년 한국통신(현 KT)이 코넷(KORNET)이라는 이름으로 인터넷 상용 서비스를 개시하면서 대중화의 발판을 마련하였다. 1997년에는 초고속 인터넷이 도입되면서 고속성장을 거듭하던 PC 통신은 2000년대 초반부터 급속한 내리막길에 들어섰고 그 자리를 포털 서비스가 대체했다. 초고속 인터넷 서비스는 1998년에 시작되었는데, SK브로드밴드에 합병된 두루넷이 시작했고 SK브로드밴드로 이름을 바꾼 하나로통신을 비롯해 한국통신, 드림라인, 데이콤 등도 ADSL 초고속 인터넷 서비스를 상용화하면서 1990년대 말에서 2000년대 초반까지 수많은 '닷컴 1세대' 기업들이 등장했다.[1]

1990년대 중반으로부터 1년 사이에 대한민국은 인터넷 인프라 구축에 있어서 세계적으로 선구적인 xDSL에 의한 초고속 인터넷 인프라 구축에 성공했지만 한 때 IMF 구제금융 요청 등 경제적 위기 때문에 접속 속도 부분에 있어서 저속 국가로 분류된 적도 있었다.(OECD의 브로드밴드 조사에서는 256kbps 이상이 브로드밴드로 보고 있다. 이 기준에 따르면 대한민국의 인터넷 보급률은 세계 4위)

2009년 6월 국제 전기 통신 연합(ITU)의 보고에 따르면 대한민국의 가정 내 인터넷 보급률은 2000년 49.8%으로 시작해 2001년 63.2%, 2002년 70.2%, 2005년 74.8%, 2006년 78.4%, 2009년 80.6% 등으로 나타나 해마다 증가해 왔다는 것을 알 수 있다[3]. 2010년 Strategy Analytics의 발표에 따르면 대한민국의 가정 내 인터넷 보급률은 95%인 것으로 나타났다.

무선 LAN의 보급에 있어서는 스마트폰의 사용량이 증가함에 따라 재검토가 이뤄지고 있으며 2010년 기준 대한민국의 무선 LAN 보급률은 세계 7위(1위 미국, 2위 영국, 3위 프랑스, 4위 독일, 5위 중국, 6위 러시아)이다.[2] 2010년 말 대한민국의 무선 인터넷 보급률은 89.8% 였지만 스마트폰 보급이 급증하면서 무선 인터넷 보급률도 가파른 상승곡선을 그렸다. OECD 브로드밴드 통계 보고서에 따르면 2011년 12월 기준 대한민국 초고속 무선 인터넷 보급률은 100.6%로 OECD 34개국 가운데 1위를 차지했다. 이는 OECD 국가 평균 보급률 54.3%에 비해 2배 가까이 높은 수준이었다.[4]

대한민국은 2007년 7월부터 일정 규모 이상의 사이트를 운영하는 정보통신서비스 제공자가 게시판을 운영할 때에 이용자의 본인 여부를 확인하도록 하는 제한적 본인 확인제를 시행했으나 2012년 8월에 이 제도는 위헌 판결을 받았다

IT진흥 정책과 그 현상[편집]

1990년대 후반~2000년대 중반 발전기[편집]

처음엔 대한민국은 1997년부터 1998년 아시아 통화 위기로 인해 경제가 큰 타격을 입음에 따라 김대중 정부는 IT 산업 진흥을 경제 진흥의 핵심으로 삼아 1999년 사이버 코리아21 계획을 책정해 인프라 정비 및 벤처 기업 육성 및 가정용 컴퓨터 보급을 적극적으로 추진했다.

각 학교의 전 직원, 전 교실에 컴퓨터가 도입되고 KT 등과 같은 기업에게 저액 고속 인터넷 접속 서비스를 제공하게 했다. 또 정부기관의 전산화도 급속도로 진행하게 했다.

이 덕분에 대한민국의 인터넷 사용자 수는 1998년 말 310만명에서 1999년말 1086만명, 2000년 말에는 1904만명으로 급격하게 증가하게 되었다. 또 IT기업 고용자 수도 1998년 10월 부터 2000년 10월까지 18만명을 증원했다. 2003년 6월 현재 인터넷 사용자 수는 3,000만명에 도달했으며 이윽고 1,000만명이 xDSL 고속 인터넷 서비스를 할 수 있게 되었다.

특히 한 가정 당 기본 1대 완비 인프라 덕분에 대한민국의 인프라 체계는 세계에서 제일이라 할 수 있을 정도로 큰 규모를 가지고 있다. 이러한 점 덕분에 대한민국의 인터넷 정보 공개성과 그에 대한 평가를 현저히 밀어 올리는 결과가 되었다.

현재[편집]

경제 위기

1997년부터 동남아시아 통화 위기가 시작되었다. 재벌이 연쇄적으로 도산하면서 1997년 12월, 외화 보유액이 약 15억 달러까지 침체한 시정에서 IMF에 긴급 융자를 요청한다.(20억 달러). 금융 위기에 의한 고현상 등 한국 경제 상황이 악화됨에 따라, 인프라 투자가 쇠약해지는 계기가 되었다.[5]

1998년 2월, 김대중 대통령 취임 이후 계속해서 IMF의 개입을 전면적으로 받아들이고 경제개혁에 착수했다. IT 산업 장려나 빅 거래 정책 (재벌간의 사업 교환, 통폐합)으로 경제 재건을 도모했다. 1998년 12월 IMF 긴급 보관 금융에 18억 달러를 상환한 것을 계기로, 금융 위기로부터 서서히 빠져나갔다. 이후 김대중 정부는 IT 산업 발전 및 인프라 투자에 힘을 쏟았다.

인터넷 문화[편집]

지적 소유권, 저작권 관련[편집]

방송국과 레코드 회사의 무료 음악과 동영상 콘텐츠가 보급하고 있다. KBS, MBC, SBS 등 주요 방송국뿐만 아니라, 일부 케이블 방송국까지 인터넷 방송국 스트리밍 방송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으며 인터넷 라디오의 청취자 수 또한 일반 라디오 청취자 수보다 많다.

하지만 2003년 7월 부터 저작권법이 개정됨에 따라 디지털 환경하에 방송 출연자 등 저작권자의 권리가 강화되어 지금까지 자유로이 전제할 수 있었던 벅스 뮤직이나 KBS 국제방송 오디오 등 뮤직 비디오가 2004년 10월 부터 11월까지 걸쳐 전제할 수 없게 되었다. 특히 벅스 뮤직은 새로운 저작권법을 위반해 서울 지방 재판소에 손해 배상 명령을 받은 바가 있다. 덧붙여, 2007년 4월 부터 UCC에 대해서도 규제가 시행되어 KBS, MBC, SBS등 지상파 방송국의 프로그램은 전부 인터넷 상에 업로드할 수 없게 되었다.

2009년부터 저작권법이 또 강화되어, 각 동영상 사이트와 공유 사이트에 대해 직접적으로 규제가 가해지기 시작했다. 특히 유튜브와 대형 검색 사이트에서의 공유, 자작 영상에 쓰인 BGM, 자작 영상에 우연히 쓰인 1차 저작물 영상이나 음악 또한 저작권 침해 대상이 일부 영상 제작자 및 인터넷 이용자로부터 반발을 사고 있다.

전자정부[편집]

대한민국에서는 주민등록번호 제도가 일찍이 뿌리를 내리고 있었으며 정부의 적극적인 전산화 정책에 따라 전자 정부화가 진전되고 있다. 또 대한민국에서는 일반적인 게시판이나 시/국회의원의 블로그에도 국민의 의견을 올리는 것이 일반적이며 정치면에서도 2002년 대한민국 대통령 선거에서는 노무현 후보를 지지하는 사람들을 중심으로 노사모를 설립하거나 노무현에 대한 집합적 보도를 한 오마이뉴스 등이 노무현의 당선에 큰 힘을 실어줬다. 이러한 요인들로 인해 노무현 전 대통령은 대한민국에선 사상 최초의 인터넷 대통령이라고도 불리기도 한다.

휴대전화[편집]

통신 인프라

2011년 말을 기준으로 대한민국 내 휴대전화 가입자가 5250만 명에 달해 휴대전화 보급률이 100%를 넘었다.[6] 2012년 8월, 대한민국 내 스마트폰 가입자는 3000만 명을 넘어 국민 60%가 스마트폰 사용자인 것으로 조사되었다.[7] 2012년 9월, 모바일을 통한 인터넷 사용이 PC를 통한 인터넷 사용의 30%에 근접했다.[8]

고속 무선 규격 와이맥스에 포함된 대한민국 중심으로 한 확장 규격인 와이브로의 개발과 국토의 좁음으로 인해 투자비용이 필요없는 TV의 지상파 디지털화 등이 진행되고 있다. 하지만 와이브로 도입으로부터 1년 반 경과한 2009년 5월 와이브로 서비스 가맹자가 대한민국 전체에서 21만 명이라는 실정이 공개되어[9] 와이브로 서비스 자체를 정지한다는 판단의 측면도 있지만 휴대전화로 인한 W-CDMA의 모바일용 확장 규격인 HSDPA에 의해 서비스에 기반한 접속 속도가 와이브로에 의해 느린 점 등이 평판이 좋지 않음을 불러 와이브로의 서비스에 대해 다시 보다는 의견이 있다. 특히 2007년 4월 부터 윈도 모바일을 기반으로 한 PDA과 고기능 단말이 제공되기 시작한 이후 사용자 수도 증가하기 시작했다. 이것으로 인해 서울뿐이였던 액세스 포인트도 서울 교외로 확장해 인구의 1/4에게 보급할 예정이다.

휴대기기 단말

2000년 봄부터 자바 애플리케이션의 실행 환경이 도입되어 동영상과 음악을 이용할 수 있게 되었다. 2004년 1월부터 번호 포터빌리티가 개시되어 KT, LG텔레콤, SK텔레콤의 거대 3사의 가입자 간에서 2004년에는 약 300만 명이 이동했다.

그 밖에[편집]

카페라 불리는 동호회 회원제의 게시판도 보급되어 있다. 간단히 친구 간 전용으로 개인의 사이트를 개설할 수 있는 싸이월드가 운영하는 miniHP(미니홈피) 서비스는 1,000만 명을 넘는 회원을 보유하고 있으며 정치가나 연예인도 이용한다. 이 서비스는 SNS의 전조라고 할 수 있다.

문제점[편집]

인터넷 사용에 있어 많은 문제가 내제된 면도 가지고 있다. 아래에는 대한민국의 인터넷 계가 가지고 있는 문제를 나열한다.

기술적, 정책적 문제[편집]

문화면 문제[편집]

  • 게임 및 멀티미디어
  • 인터넷 범죄
  • 인터넷 용어 혼란[10]

인용[편집]

  1. 심나영. 'PC통신-포털시대-스마트폰'을 거쳐온 30년史. 아시아경제. 2012년 5월 30일.
  2. 김현주. 'N세대' 엊그제 같은데 3천만이 '스마트폰'. 아이뉴스24. 2012년 3월 19일.
  3. UIT-Database
  4. 채수웅. 한국, 무선인터넷 보급률·유선인터넷 품질 OECD 국가중 최고. 디지털데일리. 2012년 7월 22일.
  5. 조해동. ‘번호이동 하루 2만2000명 넘으면 과열’ 규정에… “방통위 시대착오적 규제” 비판. 문화일보. 2012년 2월 17일.
  6. 이윤주. 스마트폰 실적, 제조사 ‘웃고’ 이통사 ‘울고’. 경향신문. 2012년 8월 5일.
  7. 김진욱. 모바일을 통한 인터넷 접속, PC 대비 30% 육박. 스포츠서울. 2012년 11월 14일.
  8. ソウル新聞(韓国語)
  9. IT용어 표준화·한글화, 이제 포기했나? 2010-12-12 노컷뉴스

관련 문서[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