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운동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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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운동연합
Union pour un Mouvement Populaire
약칭 UMP
당수 공석
창당 2002년 11월 17일
중앙 당사 55, rue La Boétie
75384 Paris Cedex 08
이념/정치노선 자유주의적 보수주의,
기독교 민주주의,
드골주의, 자유주의
국제조직 중도민주 인터내셔널,
국제민주연합
유럽정당 유럽 인민당
유럽의회
교섭단체
유럽 인민당
상징색 파랑, 빨강
상원 의석
151 / 343
하원 의석
194 / 577
유럽 의회
24 / 72
지방 의회
331 / 1,880
웹사이트
UMP

대중운동연합 (프랑스어: Union pour un Mouvement Populaire, 약칭 UMP)는 중도 보수의 성격을 가진 프랑스의 정당이다.

2002년에 창당되어, 현재 프랑스 하원 국민의회에서 과반수를 차지하고 있으며 상원에서는 다수당이다. 2007년의 대선에서는 니콜라 사르코지를 후보로 내세워 당선되었다. 현재 대중운동연합은 유럽 인민당에 가입되어 있으며, 중도민주 인터내셔널 (CDI)와 국제민주연합 (IDU)에도 가입되어 있다.

역사[편집]

서론[편집]

1980년대부터 프랑스의 우파 세력들은 유럽의 건설과 경제적 자유주의란 가치를 중심으로 세력을 형성해나가기 시작하였다. 사회당을 비롯한 그들의 이념적·정치적 경쟁자들은 1981년1988년의 총선에서 승리를 거두자, 몇몇 정치인들을 중심으로 우익 연합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목소리가 등장하였다.

1993년의 총선을 앞두고 드골주의 보수정당인 공화국연합 (RPR)과 중도정당인 프랑스 민주동맹 (UDF)이 프랑스를 위한 연합이란 이름의 선거연합을 결성하였다. 그러나 1995년의 총선 기간 동안, 이 선거연합은 다시 자크 시라크를 따르는 무리와 에두아르 발라뒤르를 지지하는 무리로 갈리게 된다. 결국 이들은 1997년의 총선에서 패배한 뒤에 공동 교섭단체인 '프랑스를 위한 동맹'을 다시 구성하게 된다.

창당[편집]

2002년의 대선 즈음에, 당시 현직 대통령이었던 시라크의 지지자들은 세 개의 우익 정당으로 갈라져 있는 상태였다. 이들은 시라크의 재선을 위해 행동하는 연대(Union en mouvement)를 조직한다. 시라크의 재집권 성공 이후에는 2002년의 총선을 위해, 이들을 중심으로 다시 여권(與權) 강화를 위한 연대(Union pour la majorité présidentielle)가 조직된다. 이 조직은 몇 달 후에 이름을 대중운동연합으로 바꾸고 단순히 자크 시라크 지지자들을 아우르던 우산 조직에서 벗어나 항구적인 조직으로 거듭난다.

대중운동연합은 드골-보수주의 정당인 공화국연합 (RPR)과 자유 보수주의 정당인 자유 민주주의 (DL), 중도 성향의 정당인 프랑스 민주동맹 (UDF)의 상당수, 더 정확히는 필립 두스트-블라지자크 바로와 같은 프랑스 민주동맹 내 기독교 민주주의자들을 흡수·합병하는 한편, 2002년까지 민주동맹과 연합관계였던 사회자유주의 성향의 급진당과 중도 성향의 정당인 프랑스 민주대중당과도 통합하였다.

대중운동연합의 창당에는 드골주의, 자유주의 (프랑스 내에서는 공화주의라 일컫기도 한다), 기독교 민주주의 그리고 급진주의 등 네 개의 프랑스를 대표하는 정치철학이 만났다는 데에 의의가 있다.

당의 첫 이름('여권 강화를 위한 연대')이 의미하듯, 대중운동연합은 자크 시라크 대통령의 정책을 일반적으로 지지하였다. 그러나 2004년에 대중운동연합은 시라크로부터 독립하려는 의미있는 움직임을 보이기 시작하였다. 대중운동연합의 당원들이 유권자들로부터 인기를 잃은 자크 시라크와 장 피에르 라파랭 내각보다 시라크의 라이벌이었던 니콜라 사르코지를 지지하고 나섰던 것이었다. 또한 시라크가 이전에 몇 번이나 공개적으로 지지한 터키유럽 연합 가입에 대해 반대표를 던지기도 하였다.

2004년까지[편집]

대중운동연합의 첫 당수였던 알랭 쥐페자크 시라크의 최측근 중 하나였으나, 2004년 1월에 있었던 부패 사건에 연루되어 같은 해 7월 15일에 사임했다. 2004년 11월 29일에는 니콜라 사르코지가 당수직을 이어받겠다 선언하였으나 재무장관에 임명됨에 따라 사르코지의 당수직 승계는 없던 일이 되고 말았다.

2004년의 프랑스 지방선거에서 대중운동연합은 알자스코르시카를 포함하는 프랑스 본토의 22개 선거구 중 단 2곳에서 겨우 승리하는 한편, 현(縣) 단위의 선거에서는 절반만을 건져 참패하고 만다. (이전에는 우익 정당들이 현 중 다수를 차지하고 있었다.) 이어 열린 유럽 의회 총선에서도 사회당의 득표율에 크게 못미치는 16.6%를 획득하고, 의석에서도 고작 16석만을 얻는 등 참패하게 된다. 2005년 5월 25일에 열린 유럽 헌법 인준을 위한 국민 투표의 부결은 장 피에르 라파랭 내각의 몰락을 가져와 UMP의 다른 정치인인 도미니크 드 빌팽의 새 내각이 구성되는 배경이 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2007년 4월 22일에 열린 프랑스 대선 1차투표에서 UMP의 후보로 나선 니콜라 사르코지가 승리한다. 이어 5월 6일에 열린 대선 2차투표에서는 사회당 후보 세골렌 루아얄을 맞아 53.1%를 획득해 대선에서 최종 승리하게 된다. 이에 따라, 사르코지는 대통령직에 오르기 이틀 전인 5월 14일 UMP의 당수직에서 물러난다. 6월 17일에 열린 총선에서 UMP는 하원 국민의회의 총 의석수인 577석 중 313석을 차지하여 다시 원내 제1당으로 복귀하게 된다.

2008년 3월에 열린 지방선거에서 대중운동연합은 다시 한 번 패배의 쓴 잔을 마신다. 시장선거에서 툴루즈스트라스부르 등 다수의 선거구와 현(縣) 들에서 좌파들에게 내주었던 것이다.

이후, 프랑수아 피용 내각 아래서 사회연대부의 장관이었던 자비에 베트트랑이 입각을 위해 당수직을 사임한 패트릭 드브지앙를 계승하여 2008년 말 임시 당수에 오른다.

2009년에 실시된 유럽 의회 총선에서 대중운동연합은 "여권의 강화" 시절처럼, 이제는 군소정당이 된 급진당중도좌파당과 함께 선거 연합을 구성한다. 이들은 27.9%를 득표하고 29명의 유럽 의회 의원을 내는등 아주 좋은 결과를 냈다. 이 결과는 2004년에 비해 비약적으로 성장한 대중운동연합의 모습을 실감하게 했다.

주석[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