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제국
| 존속 기간: 1868 - 1947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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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가: 기미가요 | |||||
| 수도 | 교토 → 도쿄 (사실상) 35°41′N 139°46′E / 35.683°N 139.767°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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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용어 | 일본어 | ||||
| 정부 형태 | 의원 내각제 입헌 군주국¹ 메이지 천황(1868년 ~ 1912년) 다이쇼 천황(1912년 ~ 1926년) 쇼와 천황(1927년 ~ 1945년) 히가시쿠니노미야 나루히코(1945년) 시데하라 기주로(1945년 ~ 1946년) 요시다 시게루(1946년 ~ 1947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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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부수립 • 건국신화 • 메이지 유신 • 헌법 제정 • 포츠담 선언 • 일본국 헌법 발효 |
기원전 660년 2월 11일 1868년 1월 3일 1890년 11월 29일 1945년 9월 2일 1947년 5월 3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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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면적 • 면적 • 내수면 비율 |
675,000 km² 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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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구 • 1935년 어림 • 인구 밀도 |
97,770,000명 144.8명/km²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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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통화 | 엔(JPY, ¥) | ||||
| 1. 제2차 세계 대전 이후에는 사실상 군사통치 기간이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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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일본제국(구자체: 大日本帝國, 신자체: 大日本帝国 (だいにっぽんていこく 다이닛폰테이코쿠[*] / だいにほんていこく 다이니혼테이코쿠[*]))은 1868년 1월 3일부터 1947년 5월 3일 사이의 일본과 그 점령지를 의미한다. 흔히 일본 제국(구자체: 日本帝國, 신자체: 日本帝国 (にっぽんていこく 닛폰테이코쿠[*] / にほんていこく 니혼테이코쿠[*])), 제국주의 일본, 특히 줄여서 일제라고도 한다. 제2차 세계 대전 이전은 일본에서 "전전 일본"(戰前日本)라고 불리며 이후는 충일황국(忠日皇國)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1868년 1월 3일 왕정 복고의 큰 호령에 의해 메이지 정부가 설립되고 1947년 5월 3일 일본국 헌법이 발효되기 전까지의 79년간을 가리키며 일본 천황을 국가 원수로 받드는 제국주의 시대였다. 급속한 서구 문명을 받아들이는 개방 정책을 통해 아시아에서 가장 부유하고 군사적으로 강한 나라로 만들자는 부국강병의 기치 아래 근대화와 발전을 이룩하였다.
1895년 4월 17일 청일 전쟁에서 승리하면서 타이완을 합병했다. 1905년 러일 전쟁에서 승리했고 1910년 8월 29일 대한제국을 병합했다. 1930년대 만주와 중국 대륙을 침략하였으며 나치 독일, 이탈리아 왕국과 함께 추축국의 일원으로서 제2차 세계 대전에 참전하여 베트남, 싱가포르, 필리핀 등 동남아시아 지역을 점령하였다. 그러나 미국과의 태평양 전쟁에서 전세가 바뀌어 결국 1945년 8월 초에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이 투하되고 소비에트 연방이 만주를 침공하게 되자 8월 14일 포츠담 선언 수락을 선언했다. 8월 15일 연합국에 공식적인 항복 선언을 했고 9월 2일 포츠담 선언을 체결했다. 연합군으로서 일본을 점령한 미군이 연합군 최고사령부를 설립한 뒤 군정을 실시함으로써 일본 제국은 사실상 패망하었다. 그로부터 2년 뒤인 1947년 5월 3일에 일본국 헌법이 시행되고 공식적으로 소멸했다.
목차 |
[편집] 국호 제정과 변경
정식 국호인 “대일본제국”은 1889년 2월 11일에 발포(發布)된 “일본 제국 헌법”에서 “대일본제국”이라고 칭하고 있는 것에 유래한다. 영문으로는 ‘The Empire of Japan’(직역하면 ‘일본 제국’)으로 표기했으며 ‘Great Japan’(직역하면 ‘대일본’)으로는 사용하지 않았다. 정부에서는 제국(구자체: 帝國, 신자체: 帝国 (ていこく) 또는 황국(구자체: 皇國, 신자체: 皇国 (こうこく))이라는 칭호를 사용하였다.
당초 일본 제국 정부는 국호에 그리 연연하지 않았고 법률이나 공문서 등에서 일본(구자체: 日本, 신자체: 日本 (にほん)), 일본국(구자체: 日本國, 신자체: 日本国 (にほんこく)), 일본 제국(구자체: 日本帝國, 신자체: 日本帝国 (にっぽんていこく)), 대일본국(구자체: 大日本國, 신자체: 大日本国 (だいにっぽんこく)) 등으로 표기했지만 1936년 일본 외무성은 외교 문서에 사용되는 자국의 국명 표기를 “대일본제국”으로 통일하였다.
제2차 세계 대전에서 패한 뒤에도 “대일본제국”이라는 호칭은 계속 사용되었지만 1946년 2월 13일 연합군 최고사령부가 일본 제국 헌법 개정 초안을 제시한 뒤부터 헌법 초안에서의 국명은 ‘일본국’(구자체: 日本國, 신자체: 日本国 (にほんこく))이 되었다. 1947년 5월 3일에 시행된 일본국 헌법에서는 주권 재민을 명시했으므로 이후에는 일본 제국이 공식적으로 사라지게 되었다.
[편집] 제2차 세계 대전 패전
일본 제국의 제2차 세계 대전 패전은 일본 제국주의에 의해 주변국을 강제 병합하고 침략하는 전쟁을 일으켜 제국의 확장을 꾀하고 독일제국 및 이탈리아 왕국과 추축국 동맹을 체결하여 제2차 세계 대전을 일으킴으로써 시작되었다. 일본이 미국의 진주만을 습격함으로서 태평양 전쟁으로 확대된 전쟁은 결국 전세가 역전되어 해군이 전멸하고 오키나와 섬까지 점령됨으로써 막판으로 몰렸다. 하지만 일본 제국 정부와 군부는 불리한 전세에도 불구하고 결사적인 항전을 결심했다. 결국 미국이 원자폭탄을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투하하고 소련이 만주를 침공함에 따라 쇼와 천황이 1945년 8월 15일 라디오 담화를 통해 무조건 항복을 선언하였다. 1945년 9월 2일 도쿄 만에서 연합군 측의 대표와 일본 천황 측의 대표가 공식으로 항복 문서에 서명함으로써, 일본 제국은 제2차 세계 대전에서 패전하였다.
[편집] 일본 제국의 영역
일본 제국은 유럽이나 미국의 식민지 정책과 유사하게, 군비를 확충하여 아시아 지역으로 영토나 식민지 침략을 하였다. 이러한 제국의 확장에는 대한제국의 강제합병 경우처럼 군사력에 바탕을 둔 강압적 방법으로 실행한 경우도 있고, 만주와 같이 전면전을 통한 경우도 있었다. 침략한 지역에는 식민지 정책으로 현지 주민들을 제국 본토인과 동화시키려는 정책을 실시했지만, 차별 정책도 병행했다.
제국이 확대되면서 일본 본토는 내지(內地, 나이지)로, 식민지는 외지(外地, 가이지)로 구분했다. 내지는 정부가 관할하지만, 외지는 총독부(總督府)와 같은 식민통치기관이 정책을 수행했다. 사할린 섬 이외의 식민지에서는 총 인구에서 내지인(제국 본토인)이 차지하는 비율이 절반 이하였다. 그밖에 여러 이유로 가라후토 청 이외의 식민통치기관은 독자적인 입법권을 수행했으며, 관동주와 남양 군도는 형식적으로는 제국의 영토가 아니었으므로 일본 제국 헌법의 효력이 미치지는 않았다.
제2차 세계 대전 당시에 팽창한 국토는 제국이 패망하면서 급격히 줄어든다. 쇼와 시대에 확장된 영토의 대부분과 이전에 확장한 영토의 일부가 독립하거나, 미국, 중화민국 등에 의해 점령되었고, 일부는 이전의 국가로 흡수되었다.
[편집] 내지 (본토)
내지의 범위는, 쿠릴 열도와 가라후토 청을 제외하면, 현재의 일본의 실제 주권을 행사하는 영토와 비슷하다.
- 오야시마(大八洲): 고사기에 기재되어 있는 8개의 섬이며, 규슈와 시코쿠, 혼슈, 사도가 섬, 쓰시마 섬, 아와지 섬, 이키 섬이다.
- 홋카이도 : 1855년에 이투루프 섬과 우루프 섬의 사이에 러시아-일본 국경이 확정되었다.
- 류큐 제도(류큐 왕국 영토) : 1872년에 류큐를 침공하여 국왕을 일본의 다이묘로 독단으로 격하시키고(제1차 류큐 처분), 그 뒤 1879년 그 영토를 일본 영토로 독단으로 흡수하였다(제2차 류큐 처분).
- 쿠릴 열도(지시마 열도): 1855년에 상트페테르부르크 조약으로 우루프 섬 이북의 섬들을 영토에 편입하였다. 다만 그 땅이 러시아의 관할이었는지는 다른 의견이 있다(당시 영국 지도에는 청나라의 영토(오늘날 연해주의 일부)였다. 러시아가 연해주를 획득한 때는 1858년 이후이다).
- 가라후토 청 : 1942년 내지로 편입되었다.
- 오가사와라 제도 : 1876년 실효 통치를 각국에 통지하여 자국의 영토로 확정하였다.
- 일본 제국의 내지로 편입된 섬
[편집] 외지 (식민지)
외지는 통치 형태에 따라 4종류로 나뉜다.
[편집] 식민통치기관이 설치되었던 지역
- 타이완 (1895년 4월 17일~1945년 10월 25일) : 청일 전쟁에서 승리한 뒤, 시모노세키 조약으로
청나라에게서 타이완 성 관할 지역을 할양받아 획득하였다. 1938년 스프래틀리 군도를 편입하였고, 통치 조직은 타이완 총독부이다. 패망 후
중화민국에 반환되었다. 자세한 내용은 일제 시대 (타이완)을 참조. - 사할린 섬 남부(미나미가라후토/南樺太, 1905년 9월 5일~1945년 8월) : 러일 전쟁에서 승리한 뒤,포츠머스 조약으로 러시아 제국에 사할린 섬 북위 50도 이남 지역을 할양 받아 획득하였다. 1907년 이후 가라후토 청이 통치했지만, 1942년에 내지로 편입하였다. 자세한 내용은 가라후토 청을 참조.
- 한국 (1910년 8월 29일~1945년 8월 15일) : 1905년
대한제국에 제2차 한일 협약(일명 을사조약/을사늑약)의 체결을 강요하여 외교권을 양도받은 후 통감부를 설치하여 내정에 간섭하였다. 1910년에 한일 병합 조약을 통해 강제 병합하여 식민지로 삼았다. 이에 따라 같은 해 칙령 제318호 “한국의 국호를 조선으로 바꾸는 건”을 통해 ‘조선(朝鮮)’으로 이름을 격하시켰다. 통치 기관은 일본군 현역 대장이 총독으로 지배하는 조선총독부였다. 패망 후
미국,
소비에트 연방을 비롯한 연합군에 의해 분할점령 되었으며 군정기를 거쳐 1948년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수립되었다. 자세한 내용은 조선의 일제 강점기를 참조.
[편집] 괴뢰 국가
‘-’옆에 있는 국가는 일제 패망 이후 해당 영토를 접수한 국가이다.
만주국 (1932년 3월 1일 ~ 1945년 8월 18일) -
중화민국 →
중화인민공화국
몽강국 (1936년 ~ 1945년) -
중화민국 →
중화인민공화국
베트남 제국 (1945년 3월 11일 ~ 1945년 8월 30일) -
프랑스가 탈환하여
프랑스령 인도차이나에 재편입 되었으나
북베트남,
남베트남 ,
라오스 ,
캄보디아 순으로 연방에서 이탈함.
난징 국민 정부 (1940년 ~ 1945년) -
중화민국 →
중화인민공화국
캄보디아 왕국 -
프랑스가 점령하여
프랑스령 인도차이나에 재편입 되었으나 독립함.
필리핀 제2공화국 (1941년 ~ 1943년) -
미국이 반환받고 이후 독립함.
[편집] 조차지
- 관동주(1905년 9월 5일~1945년 8월 19일) : 러일 전쟁에 승리함에 따라, 러시아 제국이 가지고 있던 랴오둥 반도의 조차지를 계승하였다.[1] 통치 기관은 관동청(關東廳)으로, 관동군이 상주하였다.
[편집] 위임통치구역
국제 연맹에게서 통치를 위탁 받은 위임통치구역(委任統治區域)은 다음과 같다.
- 남양 군도(1920년 1월 10일 ~ 1945년) : 제1차 세계 대전에서 승리하면서, 옛 독일 제국의 식민지였던 태평양 섬들의 일부(미크로네시아) 섬을, 국제연맹 위임 통치령으로서 영유하였고, 통치 기관은 남양청(南洋廳)이다. 다만 제1차 세계 대전 중이었던 1914년부터 독일군을 패퇴시키고 사실상 점령하여 통치하고 있었다.
[편집] 기타 전쟁 중 점령한 지역
일본 제국의 괴뢰 정권이나 식민통치기구가 설치된 곳은 제외하며 순수하게 전쟁 중에 점령된 지역만을 기술한다.
중화민국 일부 지역(1937년 7월 7일~1945년 9월 9일) - 일부 지역은 남경을 중심으로
난징 국민 정부를 수립함.
중화민국에 반환되었으나 국공 내전 후
중화인민공화국의 영토가 되었다.
영국령 홍콩 -
영국에 반환됨. 1997년을 기해
중화인민공화국에 편입됨.
포르투갈령 마카오 -
포르투갈에 반환됨. 1999년을 기해
중화인민공화국에 편입됨.
프랑스령 인도차이나 연방(1940년 9월 5일~1945년 8월 15일) -
프랑스에 반환되었으나
베트남
캄보디아
라오스로 해체됨.
타이 - 일제 패망 후 해방.
영국령 버마 -
영국에 반환됨. 후에
미얀마로 독립함.
영국령 말레이 연방 -
영국에 반환되었으나
말레이시아와
싱가포르로 독립함.
네덜란드령 동인도 -
네덜란드에 반환되었으나
인도네시아로 독립함.
오스트레일리아령 뉴기니 -
오스트레일리아에 반환되나
파푸아 뉴기니로 독립함.
[편집] 일본의 전쟁 범죄
이 부분의 본문은 일본의 전쟁 범죄입니다.
일본 제국은 20세기 초반 한국을 강제 병합하는 등 이웃 나라에 대한 침략을 일삼아 식민지로 삼았으며, 결국 태평양 전쟁을 일으켜 미국을 도발한 뒤 패망하였다. 이러한 전쟁 기간 중 일본군은 일본 자국, 식민지, 점령지를 포함한 아시아 지역에서 제2차 세계 대전의 동맹국인 나치 독일과 비슷한 조직적인 반인륜적 전쟁 범죄를 자행하였다. 1937년에서 1945년까지 일본군이 학살한 사람은 약 3백만 명에서 1천만 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 중 연합군 포로에 대한 학대나 학살 등은 전후에 도쿄에서 열린 극동국제군사재판에서 폭로되었지만, 피고용인으로 포로소장이나 포로소 직원으로 근무한 조선 사람들까지 B급 전범으로 몰려 처형되거나 징역형을 받는 일도 있었다. 다음은 대표적인 일본 제국의 대규모 전쟁 범죄이다.
[편집] 731 부대
이 부분의 본문은 731 부대입니다.
일본 제국 관동군 소속의 731부대는 생화학 무기 개발과 연구 과정에서 1만 명에 가까운 중국인과 한국인을 비롯한 식민지 주민과 전쟁 포로를 반인륜적인 생체 실험을 통해 살해하였다. 이외에도 중국과 동남아시아 지역의 여러 일본군 특수 부대에서도 비슷한 생체 실험이 이루어졌다. 731부대에서 개발한 무기로 수십만의 중국인이 학살되었다. 전후의 일본제약 산업 기술의 원동력이 되었다.
[편집] 난징 대학살
이 부분의 본문은 난징 대학살입니다.
난징 대학살은 중일 전쟁 도중 난징을 점령한 일본제국 육군이 중국인을 대량 학살하고 부녀자 강간 등을 자행한 사건이다. 약 5만 명에서 30만 명의 중국인이 학살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편집] 숙칭 대학살
숙칭 대학살은 1942년에 싱가포르를 점령한 일본군이 2월 18일에서 3월 4일 사이에 싱가포르에 거주하던 중국인을 조직적으로 학살한 사건이다. 이후에는 중국계 말레이시아인으로 확대되었다. 약 2만5천 명에서 5만 명이 학살된 것으로 추정된다.
[편집] 베트남 대량 아사
1944년 가을부터 1945년 봄에 걸쳐 당시 프랑스 식민지였던 베트남 일대에서 기아가 덮쳤다. 이 때 일본 제국 군대와 프랑스 총독부가 베트남인들이 보유하고 있던 음식들을 대량으로 강탈당했으며 그로 인해 200만 명의 사람들이 굶어 죽었다.
도쿄 대공습 다음날인 1945년 3월 11일 프랑스 총독은 일본 제국 군대에 항복했고 응우옌 왕조의 마지막 황제였던 바오다이가 일본 제국의 괴뢰 정권인 베트남 제국을 세웠다. 그러나 8월 9일 일본 제국이 나가사키에 원자폭탄 투하를 받은 데에 이어서 8월 13일 호찌민의 주도로 베트남 8월 혁명이 발발했고 9월 2일에는 일본 제국이 공식적으로 항복하면서 바오다이가 이끌던 베트남 제국도 소멸된다.
[편집] 위안부
이 부분의 본문은 위안부입니다.
일본군 위안부는 제2차 세계 대전 동안 일본군이 자신들의 성적 욕구를 해소하기 위하여, 강제·집단적으로 수용시켜 성적인 행위를 강요받은 여성을 말한다.
위안부는 외지인이었다 조선과 대만인, 그밖에도 중국 (당시 중화민국), 필리핀, 타이, 베트남,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등 일본제국이 점령한 국가 출신의 여성도 일본군에게 희생되었다. 극소수이긴 하지만 네덜란드인을 비롯한 서양인들도 일부 희생되었다.[2]
[편집] 강제 징용과 징병
이 부분의 본문은 징용입니다.
일본 제국은 제2차 세계 대전 중 인력 확보를 위해 많은 한국인과 중국인 들을 강제로 동원하여 노예처럼 부려먹었다. 미쓰비시 중공업은 징용 인력으로 군수 물자를 생산 하기도 하였는데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한국전쟁 당시에도 군수물자 생산으로 높은 소득을 올렸다. 1938년 국가총동원법을 공포하고 한국에서 실시하였다. 이에 따라 징용 제도로서 노동력 부족을 보충하였다. 징병된 인력 외에 전쟁을 위한 노동자로 강제로 징용된 이들은 탄광에서 강제 노역을 하거나 군속으로 차출되어 동남아시아 지역의 군사 기지 건설에 동원되었다. 그들은 임금 없는 강제 노역에 시달렸으며, 많은 징용자는 일본군이 후퇴하면서 징용 지역에 내버리고 돌아갔기 때문에 결국 고국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그곳에서 포로가 되거나 그전에 굶주림, 질병, 가혹한 사형(私刑)으로 별세하였고, 일부만이 탈출하여 귀국하였다. 현재 사할린 섬에 남아있는 한국인은 사할린 한민족으로 현재 약 3만 2천 5명으로 추정된다.
한편 전투력 약화를 보충하기 위해 조선인 학생을 대상으로 강제 징병을 실시하여 학도병이란 이름으로 전쟁에 동원하였다. 1965년 한일국교정상화 당시 한국 정부에 따르면 노동자, 군인, 군속으로 강제 동원되었던 한국인 피해자는 103만 2684명이라고 하였지만, 위안부 등이 포함되지 않아 실제는 이보다 훨씬 많다. 현재도 징용 보상 책임 문제가 한일 양국간 현안 중 하나이다.
[편집] 현재에 미치는 영향
일장기 (1870년), 기미가요 (1880년), 진무 천황, 야타가라스, 야스쿠니 신사 (1869년), 신전 결혼식 (1900년). 이들은 모두 제국 시대가로 만들어진 짧은 역사 밖에 없는 물건이다.
일본 천황이 남성에 국한되는 것도 천황이 "만세일계의 신"을 칭한 것도 제국 시대 이후이다. 전 제국 시대 (1868년 이전)에는 여성 천황도 존재했지만, 제국 시대 1889년에 제정된 황실 전범은 천황이 남성에 국한되었다.
또한 천황의 생사가 달라진다 "원호"도 천황의 생사 시대 구분하는 역사 교과서도, 제국 시대 이후이다.
[편집] 함께 보기
- 일본의 전쟁 범죄
- 일본군
- 제국주의
- 일본제국주의
- 사할린 한민족
- 동아시아 근대사 연표
- 황민화정책
- 일억옥쇄
- 신주불멸
- 내선일체
- 일본의 핵무기 개발
- 국민정신총동원(ja: 国民精神総動員)
- 반일 감정
[편집] 참고자료 및 링크
- 일제강점하강제동원피해진상규명위원회
- 일제 당시 징용 관련 사진
[편집] 주석
| 아시아의 역사 | ||
|---|---|---|
| 이전 시대 | 일본 제국 1868년 ~ 1947년 |
다음 시대 |
| 에도 막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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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역사 | |
| 천황 | |
| 식민지 | |
| 정치 | |
| 상징 | |
| 사상 | |
| 군대 | |
| 민족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