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이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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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이진
발해의 11대 국왕
재위 831년 ~ 857년
이전 왕 발해 선왕
다음 왕 대건황

대이진(大彝震, ? ~ 857년, 재위: 831년 ~ 857년)은 발해의 제11대 이다. 발해 제10대 왕 선왕의 손자이며 아버지는 대신덕(大新德)이다. 연호는 함화(咸和)를 사용하였다.[1] 시호는 미상이다.

생애[편집]

부(府), 주(州)의 확정과 중앙집권적인 행정 제도의 확립에 노력해 동시에 군사 기구를 발전시켜 모병제에 의한 상비군을 편성했다. 《당서》에는 발해의 군제로서 좌우신책군(左右神策軍)·좌우삼군(左右三軍)·일백이십사(一百二十司)를 설치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또 당과의 적극적인 문화 교류에 따라 당의 제도가 발해에 널리 전해져 일부 유학생이 과거에 급제 하는 등 발해의 학문도 상당한 경지에 이르렀음을 미루어 알 수 있다.


연호는 함화(咸和)이며 시호는 전하지 않고 있다. 대신덕(大新德)의 아들이며 할아버지는 제10대 선왕(宣王)이다.

즉위하자 여러 사신과 학생을 당나라에 파견하는 등 선왕에 이은 율령제국가수립에 노력하였고 당나라와의 경제 문화 교류에 힘썼다. 왕자 대명준(大明俊)을 832 836~837년 세차례에 걸쳐 수십인과 함께 당나라에 파견하였으며 왕자 대광성(大光晟) 대연광(大延廣) 대지악(大之萼) 등도 833~839~846년에 각각 당나라에 파견하여 당나라의 문화수용에 적극성을 띠었다.

이때 학생 해초경(解楚卿) 조효명(趙孝明) 유보준(劉寶俊) 이거정(李居正) 주승조(朱承朝) 고수해(高壽海) 등도 당나라에 유학하였고 당나라에서는 장건장(張建章)이 서적을 가지고 발해에 들어오는 등 발해당나라의 문화적 교류는 활발히 전개되었다.

한편 일본과도 빈번한 내왕이 있어 선왕 때 이어 왕문구(王文矩)가 계속 파견되었고 하복연(賀福延) 등도 파견되었는데 그 목적은 주로 신라 견제와 경제적 이해관계였을 것으로 생각된다.

가계[편집]

참고[편집]

주석[편집]

  1. 신당서》(新唐書), 渤海國志長編(金毓, 華文書局, 1934)
전 대
선왕
제11대 발해 국왕
831년 - 857년
후 대
대건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