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은행 (일제강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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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은행 (1913~1928)은 일제강점기 민족자본에 의해 설립된 지방은행이다. 대구 부호 정재학이 최대주주이자 두취(은행장)를 맡았다. 경남은행과 합병된 뒤 경상합동은행을 거쳐 조흥은행으로 흡수됐다. 해방 후 1967년 설립된 대구은행과 동일명이나 전혀 관련이 없다.[1] 박정희 정권시절인 1967년 10월 정부는 지방금융 활성화를 목적으로 1도 1행 원칙에 따라 총 10개의 지방은행을 설립했다. 이 과정에서 일제강점기 존재했던 대구은행의 역사적 가치에 대한 평가 없이 행명을 무단 사용한 것일수도 있다. 해방 전 15년간 존속한 대구은행은 정재학행장이 이끈 순수 민간 민족자본 기반의 은행이었다. 정재학 행장(1858~1940)의 3남인 정종원(1896~1977) 그리고 손자인 정운용(1904~1964)은 후일 조흥은행의 5대 행장과 2대 행장을 역임했다.

경북 최초 민족자본은행[편집]

대구은행은 대구지역 부호 정재학 주도로 1913년 7월7일 개업했다. 1928년 7월31일 경남은행과 합병, 경상합동은행으로 재출범했다. 경상합동은행은 1941년 한성은행에 흡수 합병된 뒤 1943년 출범한 조흥은행으로 그간 축적한 민족자본을 넘겨주게 된다. 1907년 일본인에 의해 대구 인근에 밀양은행이 설립된 데 이어 1912년 하반기에 일본인들이 선남은행 설립을 추진했다. 이에 자극받은 대구 지역 내 부호들이 결집, 민족상권의 보호를 목적으로 우리나라 자본을 바탕으로 한 민족은행인 대구은행의 설립을 추진하게 된다.[2][3][4][5]

1912년 7월 경북지역의 재력가인 정재학, 최준, 이이유, 배상락, 이종면, 이병학, 이병후, 장길상 등이 출자하여 대구은행 발기를 결의한다. 이중 정재학, 이종면, 이병학은 1906년 6월 설립된 경상농공은행 경영에 참여한 바 있다. 대구은행은 1913년 7월7일 대구부 대구면 본정 2정목 23번지에 본점을 내고 영업을 개시했다. 대구은행은 1919년까지 순항을 거듭했다. 초기 공칭자본금규모는 50만원이었으나 1919년에는 200만원으로 4배나 늘리면서 불입자본금 역시 12만5000원에서 87만5000원으로 대폭 증액했다.[6] [7]

경상합동은행 거쳐 조흥은행으로[편집]

1920년에 접어들며 일부 주주가 이탈하여 경일은행을 설립했다. 또한 경일은행 상담역으로 가담한 일본인 오구라 다케노스케(小倉武之助)가 대구은행의 영업을 방해하고 나섰다. 게다가 1차 대전 종전과 함께 경기둔화가 뚜렷해지면서 예금이 줄어드는 등 대구은행은 실적부진에 시달렸다. 조선총독부는 불황을 빌미로 지방은행에 대한 통폐합 정책을 적극 추진했다. 정재학은 이에 대응 경북의 주요 지역 경찰서장을 역임한 일본인을 본점지배인으로 영입하는 등 방어막을 쳤다. 그러나 경기불황을 피해갈수 없었다. 대구은행의 배당률은 1914년 연8%에서 1922년 무렵 10%까지 올라갔지만 이후 지속적으로 하락세를 보이면서 1927년 3%대로 추락하게 된다. [8][9] 이에 따라 경북의 대구은행과 경남의 경남은행 간 합병이 자의반타의반으로 추진됐다. 양 은행 간 협상도 있었지만 총독부와 조선은행도 합병을 강력히 요구했다. 당시 총독부의 합병조건이었던 조선은행 출신 일본인의 합병은행 대표취제역 선임은 사실상 경영권을 찬탈하려는 속내를 그대로 드러낸 것이었다.[10] 마침내 두 은행은 1928년 8월1일 통합돼 경상합동은행이란 행명으로 영업을 시작했다.[11] 경상합동은행은 1941년 서울 소재 한성은행에 흡수 합병된 뒤 1943년 조흥은행으로 통합된다. 조흥은행민족자본은행의 집결지라고 불리는 이유다.[12]

일제강점기 민족은행[편집]

행명 존속기간 비고
대구은행 1913~1928
구포은행* 1912~1915
한성은행 1887~1943 현:신한은행
주일은행 1918
해동은행 1920~1938
한일은행 1906~1931 현 :우리은행
호서은행 1913~1931
동래은행 1918~1933
호남은행 1920~1942
  • 구포은행은 1915년 경남은행으로 행명 변경

각주[편집]

  1. 네이버용어 지식백과 대구은행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649727&cid=2054&categoryId=2058
  2. <<조흥은행 100년사>>, (조흥은행, 1977), p.162
  3. 고승제, <<한국금융사연구>> (일조각, 1970) p.210~226
  4. 고승제, <<끝없는 도전 세기의 기업-기업가 이야기>> (한국경제신문, 1991), 제7편 2. 정재학/은행업의 개척자 p.351~367
  5. 매일경제 1982년 12월 8일~19일 9면 "재계산맥 대구은행 1~19편"
  6. <<조흥은행 100년사>>, (조흥은행, 1977), p.163
  7. 고승제, <<한국금융사연구>> (일조각, 1970) p.210~226
  8. <<조흥은행 100년사>>, (조흥은행, 1977), p.163~165
  9. 고승제, <<끝없는 도전 세기의 기업-기업가 이야기>> (한국경제신문, 1991), 제7편 2. 정재학/은행업의 개척자 p.351~367
  10. 동아일보 1928년 4월 21일 1면 사설
  11. 매일경제 1982년 12월 8일~19일 9면 "재계산맥 대구은행 1~19편"
  12. <<조흥은행 100년사>>, (조흥은행, 1977), p.1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