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테 마사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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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테 마사무네(伊達政宗) | |
|---|---|
| 1567년 9월 5일~1636년 6월 27일 | |
| 별명 | 독안룡 |
| 태어난 곳 | 요네자와 |
| 죽은 곳 | 센다이 |
| 최종 계급 | 증 종2위 |
| 주요 참전 전투/전쟁 |
세키가하라 전투 오사카 전투 |
| 기타 이력 | 센다이 번주 |
다테 마사무네(伊達政宗. 1567년 9월 5일 ~ 1636년 6월 27일)는 일본 센고쿠 시대 오슈의 센고쿠 다이묘이자 에도 시대 센다이번(仙台藩)의 시조이다. 다테 가문 제16대 당주 다테 데루무네(輝宗)와 모가미 요시모리의 딸 요시히메(義姬, 모가미 요시아키의 여동생)의 장남이다.
어릴 적 이름은 본덴마루(梵天丸)이고, 자(字)는 도지로우(藤次郎)이다. 시호는 데이잔(貞山), 본성은 후지와라 씨(藤原氏)이다. 신호(神號)는 다케루히코노미코토(武振彦命)로써 아오바신사(青葉神社)에서 제사를 지내고 있다. 어릴 적에 앓은 천연두의 후유증으로 오른쪽 눈을 실명하여 후에 독안룡(独眼竜)이란 이명을 얻게 되었다.
휘(諱)인 “마사무네”는 다테가 중흥의 선조라고 알려진 무로마치 시대 제9대 당주 다이센다이부(大膳大夫) 마사무네와 똑같기 때문에 구별하기 위해 도지로우 마사무네라고 부르는 경우도 많다.
목차 |
[편집] 생애
에이로쿠 10년, 데와노쿠니 요네자와 성에서 태어났다. 겐키 2년(1571년), 천연두를 앓아 오른쪽 눈을 잃었다. 이후 그의 어머니는 몰골이 추하다 하여 마사무네를 멀리했고 대신 동생인 고지로가 어머니의 사랑을 받았다.
덴쇼12년(1584년), 아버지에게 가문을 물려받았다. 그러나 이듬해인 덴쇼13년(1585년) 니혼마츠 요시쓰구가 아버지와 회견 후 그를 납치하여 인질로 내세우자 아버지 데루무네를 포함하여 요시쓰구 일행을 몰살시켜버렸다. 이에 불안을 느낀 사다케 요시시게가 아시나, 소마, 이와키, 유키, 니카이도 씨 등을 규합하여 쳐들어 온 히토토리바시 전투에서 승리하며 독안룡이라는 별명까지 얻었다.
하지만 그는 노부나가가 죽은 1582년 이후 가문을 물려받은 탓에 독자적인 세력을 크게 펴지 못하고 도요토미, 도쿠가와 양대 정권에 굴복하고 이후 에도 막부에 협력하였다. 그래서 그는 툭하면 “10년만 빨리 태어났으면 천하는 내 것일 텐데.”라는 말을 했다.
[편집] 임진왜란
다테 마사무네는 애초에 임진왜란에 참전하기 싫어했다. 하지만 아무리 다테 마사무네가 오슈의 패권을 장악했다 할 지라도 도요토미 히데요시에 대항할 만큼의 세력은 구축되어있지 않았고 실제로 당시 도요토미 히데요시에게 대항할 만한 세력을 가진 대다이묘는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유일했다. 결국 그렇게 다테 마사무네는 억지로 전쟁터에 끌려갔다.
NHK 대하 드라마 독안룡 마사무네에 따르면 다테 마사무네가 집으로 보낸 편지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 明国との和睦もならず (명나라와의 화친도 되지 않고)
- 我が軍は南へ押し返され致し方なく海辺付近に城を築きて (우리 군은 남쪽으로 쫓겨나서 어쩔 수 없이 해변 부근에 성을 짓고)
- 篭城も止むを得ざる仕儀かと存知おり候。(농성도 불가피한 상황이라고 생각합니다.)
- あるいは正宗、母上より賜りし水晶の数珠を抱きて (어쩌면 마사무네, 어머니가 주신 수정 염주를 끌어안고)
- 異国の地に骨を埋むるやも知れず。 (이국의 땅에 뼈를 묻을지도 모르겠습니다.)
- これが最後の御挨拶と覚悟の上、いついつまでも (이것이 마지막 인사라는 각오로 언제까지나)
- 御健勝にお過ごしあらん事を希い奉り (건강하게 지내실 것을 바라마지 않사오며)
- 取り急ぎ一筆認め申し上げ候。 (급히 한 자 적어 보냅니다.)
임진왜란에 강제로 끌려와서 참전하게 된 것에 불만을 갖고 있던 다테 마사무네는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지지하여 동군에 가담하게 된다.
[편집] 세키가하라
세키가하라 전투당시 동군에 붙어 도쿠가와 이에야쓰의 편이 되고 도쿠가와 이에야쓰의 요구사항을 잘 들어주면 도쿠가와 이에야쓰가 다테 마사무네에게 만은 고쿠다카 100만석을 보증해 줬으나 다테 마사무네가 이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고 세키가하라 전투기간 내내 고쿠다카에 대한 욕심을 버리지 못하고 상부의 명령과 상관없이 제멋대로 병력을 일으키는 등 허술하게 처신하여 결국 전투 후 다테 마사무네는 상벌상쇄가 되어 고쿠다카 100만석 보증 약속은 백지화되버렸으나 그래도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다테 마사무네의 고쿠다카를 57만석에서 62만석으로 약간 인상해 주는 선에서 일단락되었다.
그는 천주교 신자였으나, 1614년, 오사카 여름의 진에서 천주교 신부를 무력으로 위협하고 심지어 자신의 진영으로 온 천주교 신자를 학살했다. 그래서 진짜 천주교 신자인 것보다 정치적으로 이용했던 것 같다. 《간양록》에서는 눈이 외눈이고 왜장 중 가장 음흉하고 사악한 자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는 임진왜란 참전용사로서 임진왜란에 해당되는 전투 중 많은 조선인이 불타 죽은 진주성 전투에 그도 있었다.
[편집] 인물
다테 마사무네는 잠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는 전형적인 까불이 스타일의 인물이였다. 물론 24살때 이런 기질 덕분에 오슈의 패권을 장악하긴 했지만 반면 세키가하라 전투때에는 도쿠가와 이에야스에게 협력하면서도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의도하는 대로 행동하지 않고 스스로 봉지(封地)를 획득하려고 무리하게 군대를 일으켜 결국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약속했던 100만석은 이런 다테 마사무네의 행동과 상쇄되어 없어져 버렸다. 게다가 툭하면 '내가 10년만 일찍 태어났더라면 내가 전국의 패자(覇者)가 되었을 텐데...'라고 한탄해서 도쿠가와 이에야스나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심기를 건드리기도 했다. 심지어는 자신이 대다이묘의 신분으로서 마에다 도시이에의 조카 마에다 도시마스에게 그런 점으로 훈계를 듣고도 이렇게 천방지축으로 날뛰는 버릇을 고치지 못했다.
| 전 임 없음 |
제1대 센다이 번 번주 1600년 ~ 1636년 |
후 임 다테 다다무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