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리우스 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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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리우스 미요

다리우스 미요(Darius Milhaud, 1892년 9월 4일 ~ 1974년 6월 22일)는 프랑스유대인 고전 음악 작곡가이다. 프랑스 6인조 가운데 하나였으며 20세기의 가장 영향력있는 작곡가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일대기[편집]

프랑스의 엑상프로방스에서 태어나 파리 시에서 Charles Widor와 뱅상 당디에게 음악을 배웠다. 그는 6인조가 생기기 전부터 에리크 사티와 친했으며 6인조 가운데 유일하게 사티와 반목하지 않은 작곡가였다.

미요는 1922년 미국에서 재즈를 접했다. 1939년 독일을 떠나 1940년 미국으로 이민을 갔다. 1947년부터 1971년까지 캘리포니아 주 오클랜드의 Mills College와 파리 콘소바토리를 오가며 음악을 가르쳤다. 말년에는 건강이 악화되어 휠체어 생활을 해야 할 정도가 되자 은퇴했다. 그가 가르친 제자 가운데에는 스티브 라이히(Steve Reich), 버트 바카락(Burt Bacharach), 데이비드 브루벡, 모턴 수보트닉(Morton Subotnick), 이안니스 크세나키스 등이 있다.

그의 작품은 복조의 쓰임이 두드러지며 재즈의 영향을 받았다. 그는 많은 작품을 썼는데, 《Le Boeuf sur le Toit》(발레), 《La Création du Monde》(재즈곡), 두 대의 피아노를 위한 《스카라무슈》, 《Saudades do Brazil》(춤곡) 등이 있다. 자서전인 《Notes Without Music》도 썼다.

1974년 여름, 제네바에서 81세를 일기로 생애를 마치고, 고향인 엑상프로방스에 묻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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