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동강 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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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낙동강 전투 (한국 전쟁의 일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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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동강 전투 당시의 보병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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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날짜 | 1950년 8월 ~ 9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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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소 | 낙동강 전역 | ||
| 결과 | 인천 상륙 작전으로 조선 인민군의 후퇴 전쟁의 주도권이 UN군으로 넘어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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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전국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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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도 | |||
낙동강 전투 당시의 지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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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동강 전투는 1950년 8월에서 9월 사이에 낙동강 지역에서 벌어진 전투이다.
목차 |
원인 [편집]
1950년 8월 3일 다부동 전투에서의 승리를 통해 한미 연합군은 낙동강 방어선을 구축했다. 당시 국토의 90%를 유린한 인민군에게 낙동강 방어선은 함락해야 할 돌파선이었고, 주요 도시를 잃은 국군과 미군에게는 인민군을 막아야 할 저지선이었다. 1950년 8월 달부터 국군과 인민군은 다양한 전투를 거치며 승리와 패배를 반복하였다. 당시 김일성은 8월 15일까지 부산을 점령해야 한다는 계획 하에, 포항, 왜관, 영천, 진주, 대구 등 주요 방어선의 요충지를 공격함으로써 낙동강 전투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경과 [편집]
1기 방어선의 붕괴 [편집]
당시 경상북도의 주요 전투지는 포항과 다부동이었다. 포항이 붕괴되면 7번 국도의 주도권이 공산군에게 넘어가서 부산이 점령당할 수 있었고, 다부동이 함락될 시 대구와 영천이 적의 수중에 넘어가게 되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8월 포항 전투에서 국군이 대패함으로써 포항이 수중에 넘어갔고 영천이 다부동과 함께 점령됨으로써 1기 방어선이 붕괴되었다. 국군과 UN군은 2기 방어선을 짤 계획을 세워야 만 했다.
2기 방어선의 성립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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