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석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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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석주
羅錫疇

출생 1892년
조선 조선 황해도 재령군
사망 1926년 12월 28일 (34세)
일제 강점기 일제 강점기 경성부
국적 대한민국 대한민국
학력 신흥무관학교 졸업
중화민국 한단 군관학교 졸업
직업 독립운동가
자녀 2남 2녀
부모 나병헌(부)
상훈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 추서

나석주(羅錫疇, 1892년 ~ 1926년 12월 28일)는 대한민국독립운동가이다.

생애[편집]

황해도 재령 출생이다. 국내에서 부호들을 상대로 반강제적으로 독립운동에 필요한 군자금을 모집하여 상하이대한민국 임시정부로 송금하고, 평산의 경찰 주재소를 습격하여 경찰관과 면장을 살해한 뒤 중국으로 피신했다.

신흥무관학교를 졸업한 후 중국에서 하북성 한단에 있는 중국 한단 군관학교 육군 제1군사강습소의 군관단을 졸업해 한동안 중국군 장교로 중국 군대에서 복무한 경력이 있었다. 그 후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 김구(당시 경무국장)의 경호관, 의열단에 가입하였고, 1926년 의열단의 고문이기도 했던 김구, 김창숙 등과 논의한 뒤 동양척식주식회사일제의 식민지 수탈 기관의 파괴를 목적으로 중국인으로 위장한 채 국내에 밀파되었다. 그해 12월 28일 조선식산은행, 동양척식주식회사폭탄을 투척하고 일본 경찰과 대치하던 중에 가지고 있던 으로 자결을 시도하다 총상을 입고 일경에 의해 병원으로 후송되어 고등계 미와 경부에게 심문을 받던 중 자신이 나석주임을 밝히고 사망했다.[1] 진남포에서 살던 나석주의 장남 나응섭은 잠적한 뒤 중국으로 망명했으나, 일경에 체포되어 다시 진남포로 압송되었다.[2][3]

나석주 열사의 상, 서울 중구 명동, 외환은행 본점 옆에 있다.
나석주 의사 의거 기념터. 서울 중구 명동, 외환은행 본점 앞에 있다.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이 추서되었다. 명동의 동양척식주식회사 자리(현 외환은행 본점)에 동상이 건립되어 있다.[4]

가족 관계[편집]

  • 부친 : 나병헌(羅秉獻)
  • 모친 : 김해 김씨(金海 金氏)
  • 아들 : 나응섭(羅應爕 ~ 일명 백운학)
    • 손자 : 나효수(羅孝壽)
    • 손자 : 나효복(羅孝福) - 행방불명
  • 아들: 나응선(羅應善 ? ~ 1951)
  • 딸: ? - 평양으로 출가
  • 딸 : 나응서(羅應瑞, 1918)

평가[편집]

나석주는 종로경찰서에 폭탄을 던졌다가 역시 일경과 대치 끝에 자결한 김상옥과 함께, 1920년대의 무장 투쟁 즉, 의열단식 항일 운동을 상징하는 인물이다.

나석주를 연기한 배우들[편집]


주석[편집]

  1. 「경성 자살 클럽」 전봉관 저 살림
  2. 나석주의 장남 진남포에서 잠적 1927년 6월 18일 동아일보
  3. 나응섭압송 재녕경찰서로 1927년 7월 3일 동아일보
  4. 서영훈. "[나의 이력서/서영훈] <49> 김상옥 나석주열사 기념사업", 《한국일보》, 2004년 5월 31일 작성. 2008년 6월 2일 확인.

바깥 고리[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