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가하마 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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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박물관

나가하마 성(일본어: 長浜城 (ながはまじょう) 나가하마조[*])은 시가 현 나가하마 시 고엔 정에 있었던 평성으로,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거성으로 알려져 있다. 시바 료타로의《공명의 갈림길》의 주인공 치요의 남편 야마우치 가쓰토요의 거성이기도 했다.

역사[편집]

아즈치모모야마 시대[편집]

1573년 하시바 히데요시(후일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오미 북부의 다이묘 아자이 나가마사 공격의 공으로 오다 노부나가로부터 아자이 가문의 옛 영지를 배령 받은 후, 비와 호 호변 이마하마(今浜)에 새로이 성을 쌓고 나가하마(長浜)라 명명했다. 이때 성의 부재는 아자이 가문의 거성인 오다니 성의 자제를 사용했다고 한다. 또, 은밀히 지쿠부 섬에서 목재를 벌목해 사용했다고 한다.

1575년 ~ 1576년 무렵 성이 완공되었고, 성하 마을 조성을 위해 오다 성 주변의 마을 주민을 이주시켰다. 나가하마 성은 히데요시가 처음 축성한 거성이었고, 성하 마을 조성에 대한 그의 안목을 눈여겨 볼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혼노지의 변 이후, 오다 가문의 후계자 및 영지 재분배를 위해 열린 기요스 회의 결과, 나가하마 성은 시바타 가쓰이에의 조카 시바타 가쓰토요에게 돌아가게 된다. 하지만, 곧 시바타 가쓰이에와 하시바 히데요시는 대립하였고, 시즈가타케 전투 이후, 정권을 장악한 히데요시에 의해 성은 그의 가신 야마우치 가쓰토요에게 주었다. 1590년 히데요시의 오다와라 정벌 후, 야마우치 가쓰토요는 가케가와 성주로 부임해 이 지역을 떠난 뒤, 성은 사용되지 않았다.

에도 시대[편집]

1605년 나이토 노부나리가 성주 부임하여 입성한다. 이후, 그의 아들 나이토 노부마사 대까지 성이 존속했지만, 1615년 성은 폐성되고 성의 부재는 이이 가문의 히코네 성 축조에 사용되었다. 히코네 성의 덴빈 망루(天秤櫓)는 나가하마 성의 것을 이축한 것이라고 한다. 이름 그대로 천칭처럼 망루는 양쪽에 배치되어 균형이 잡힌 모습니다. 그 외에도 나가하마 성문은 나가하마 시내 사찰 여기 저기에 이축되어 있다. 오테 문다이쓰지의 다이도코로 문, 가라메테 문지젠인의 정문으로 사용되고 있다.

현재[편집]

1983년 이누야마 성, 후시미 성의 천수를 모델로 천수 재건해 시립 나가하마 성 역사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관광[편집]

교통
  • JR 서일본 나가하마 역에서 하차, 도보로 5분소요.
  • 호쿠리쿠 자동차 도로, 나가하마 나들목에서 차로 15분소요.
주변 문화시설 및 관광명소

관련 항목[편집]

바깥 고리[편집]


좌표: 북위 35° 22′ 39.65″ 동경 136° 15′ 40.87″ / 북위 35.3776806° 동경 136.2613528° / 35.3776806; 136.26135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