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일 (1948년)
김홍일(金弘一, 1948년 1월 21일 - )은 대한민국의 군인, 정치인이다. 아버지는 김대중 전 대통령이고 어머니는 차용애이다. 동생은 김홍업, 이복동생은 김홍걸이며, 기업인 장영자는 그의 생모 차용애의 외사촌이었다. 전라남도 출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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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생애
[편집] 생애 초반
대한민국 제 15대 대통령 김대중의 장남이다. 1948년 전라남도 목포에서 태어났다. 유달초등학교, 배재중학교, 대신고등학교, 경희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했다. 이후 1975년 같은 대학에서 정치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그뒤 군에 입대하여 공군 중위로 복무했다.[1] 그러나 야당 정치인의 아들이라는 이유로 군사 정권 시절 이유없는 인사 불이익을 여러번 당했다. 1974년 8월 15일 윤경빈의 딸 윤혜라와 결혼하였다.
[편집] 정치 활동
1980년 5월 17일, 보안사에 의해 끌려가 24시간 동안 고문당하였다. 고문 도중 견딜 수 없어 책상 위에 올라가 그대로 땅바닥에 머리를 박으며 떨어져 자해를 기도하기도 했고, 그 때 목을 다쳤다. 당시 그의 표현에 의하면 "그렇게 죽고 싶을 만큼 고통스러웠다고 한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죽지 않았다.[1]"는 것이다.
1980년 6월, 김대중 내란음모사건 연루로 구속되고, 사법고시와 행정고시 응시권이 박탈되었다. 1988년 평화민주당의 외곽조직인 민주연합청년동지회를 만들면서 정계에 발을 들였고, 1996년 15대 총선에서 권노갑으로부터 지역구인 목포시를 승계받아 국회의원에 당선되었다.
[편집] 생애 후반
2004년 17대 총선에서 탄핵역풍에도 불구하고 새천년민주당 소속 비례대표 4번으로 출마하여 아슬아슬하게 당선되었다. 그러나 2006년 9월 28일 대법원 확정판결로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 및 추징금 1억5천만원을 선고받음에 따라 의원직을 상실했으며, 김송자 전 노동부 차관이 의원직을 이어받았다.
파킨슨병을 앓고 있다.
[편집] 저서
- 자서전 <나는 천천히, 그러나 쉬지 않는다>
[편집] 가계(家系)
- 조부: 김운식(金雲植, ? ~ 1974년)
- 조모: 장수금(張守錦, 1893년 ~ 1972년)
- 부 : 김대중(金大中, 1924년 ~ 2009년)
- 모 : 차용애(車龍愛, 1927년 ~ 1959년)[1]
- 계모(繼母) : 이희호(李姬鎬, 1922년 ~ )
- 인척 : 장영자(張玲子[2], 1944년 ~ )
[편집] 김홍일을 연기한 배우
[편집] 같이 보기
[편집] 관련 항목
[편집] 주석
- ↑ 가 나 다 "동생들이 얼마나 힘들게 컸는데...'홍걸 구속' 큰형으로서 기가 막힌다" :: 네이버 뉴스
- ↑ 생모 차용애의 고종사촌
| 전 임 (목포시)권노갑 (신안군)한화갑 |
제15대 국회의원(목포시·신안군 갑) 1996년 5월 31일 - 2000년 5월 30일 새정치국민회의 (목포시·신안군 을)한화갑 |
후 임 (목포시)김홍일 (무안군·신안군)한화갑 |
| 전 임 (목포시·신안군 갑)김홍일 (목포시·신안군 을)한화갑 |
제16대 국회의원(목포시) 2000년 5월 31일 - 2004년 5월 30일 새천년민주당 |
후 임 이상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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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천년민주당 제17대 국회의원 비례대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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