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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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곤(1925년 ~ 2009년)은 '한국대학생선교회'(CCC)를 설립하고 국가조찬기도회를 시작한 목사이다.

학력[편집]

김 목사는 1925년 전라남도 신안군에서 태어나 무안농업실수학교(현 무안중학교)를 졸업한 후 만주에서 일본군 징집을 피해 장기간 도피생활을 하는 동안 민족구원과 기독교사상에 심취했다, 1948년 서울 남산의 장로회신학교를 제1회로 졸업하고 미국 풀러신학교에서 공부했다.

경력[편집]

1951년 대한예수교장로회 전남노회에서 목사안수를 받은 후 조선대학교 문학과를 졸업하고 광주숭일중·고등학교 교목, 교장을 지냈다.

뉴라이트 기독교 연합 상임고문

CCC와 김준곤[편집]

김 목사는 풀러신학교 유학시절 CCC 설립자 빌 브라이트 박사를 만나 한국에서도 대학생선교회를 시작하라고 지도 받고 귀국, 한국 CCC를 창설하고 서울대학교, 고려대학교, 이화여자대학교 등을 직접 다니며 전도에 나섰다. 김 목사는 대학 동아리형식으로 모여 선교와 봉사활동을 하는 한국대학생선교회를 1958년 11월 서울 정동제일교회에서 창설해 오늘 날 330개 대학에 1만6천500명의 회원을 거느린 단체로 길러냈다.

김준곤의 활동[편집]

김 목사는 또 '민족'과 '봉사'의 개념을 선교에 도입해 민족복음화 운동에 앞장섰으며, 미국 유학시절 접한 조찬기도회를 모방하여 1965년 국회조찬기도회, 1966년 국가조찬기도회를 창설했다. 김 목사는 1968년에는 민족복음화를 위한 '나사렛형제들'을 창단했고, 지역단위 전도를 위한 사랑방운동을 펼치기도 했다. 아울러 1998년부터 2006년까지는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상임공동대표를 맡아 북한주민 돕기에도 나섰고, 2002년에는 이웃종교 지도자들과 함께 직접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방문했다. 김 목사는 1974년 8월 30만여명이 5박6일간 여의도 광장에서 집회를 하고 철야기도를 한 '엑스플로 74' 대회를 통해 CCC에 대한 인지도를 높였다.

김준곤의 영향[편집]

김 목사가 2003년 2월 CCC 국가대표직에서 물러날 때까지 CCC를 거쳐간 대학생은 약 30만명에 이른다. 남서울은혜교회 홍정길 목사는 CCC총무 출신,온누리교회 하용조 목사도 CCC간사 출신이고, 정운찬 총리, 이광자 서울여대 총장, 주수일 칠성섬유 회장, 박세환 예비역 육군대장 등이 대표적인 CCC 출신인사들이다.

비판[편집]

국가조찬기도회에서 박정희 정권과 결탁, 10월 유신을 축복하는 선전도구로 활동한 것[1]에 대한 비판 등이 있다.

참고문헌[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