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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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길
출생 1945년 5월 28일(1945-05-28)
일제 강점기 일제 강점기 경상남도 거제시 장목면
국적 대한민국 대한민국
직업 정치인
정당 민주당

김정길(金正吉, 1945년 5월 28일 ~ )은 대한민국 정치인으로 두 번의 국회의원민주당 원내총무, 최고위원, 부총재를 역임했다.

이력[편집]

김정길은 1971년 부산대학교 총학생장에 출마하면서 박정희 정권이 고착화 시킨 영,호남 지역감정 철폐를 공약으로 내걸고 당선되었다. 이후 김정길 정치인생 40년은 지역감정 철폐, 동서화합을 이루기 위한 노력으로 계속되어 왔다.

김정길은 12대, 13대 국회의원 총선거에서 당선되어 통일민주당의 원내수석부총무, 통일민주당 원내총무를 역임하는 등 정치인으로서 탄탄대로를 걷고 있었다.

하지만 3당합당 이후 정치인으로서 원칙과 소신을 지키기 위하여 3당합당을 거부하고 지역주의를 깨기 위해 줄곧 부산에서 국회의원에 출마했으나 노무현 전 대통령과 함께 계속 낙선의 고배를 마셨다.(사하구 보궐선거, 14대 총선, 15대 총선,16대 총선, 17대 총선, 부산시장선거, 19대 총선 7차례 연이어 낙선)[1] 이 과정에서 민주당의 초대 원내총무, 부총재, 최고위원을 지내며 민주당의 차세대 리더로서 역량을 보여주었다.

새정치국민회의의 부총재를 지내며 정권교체에 일익을 담당한 그는 이후 국민의 정부 초대 행정자치부 장관, 대통령 정무 수석 비서관 등을 역임했다. 그런 와중에도 부산에서 또 한번의 낙선을 치르기도 했다(2000년, 16대 총선). 행정자치부 장관 시절 공직사회의 개혁을 주도했으며, 인터넷을 기반으로 한 '장관과의 대화방'을 개설하여 '국민과의 직접소통'을 최초로 시도한 장관이기도 하다.

가장 절친한 노무현 장관이 대통령이 되었으나, 그는 공직을 맡기보다는 다시한번 영도에 출마하는 것을 택했다. 17대 총선에서 김정길은 탄핵 바람을 타고 여론조사에서 줄곧 선두를 달렸으나 정동영 의장의 노인폄훼발언 파문으로 낙선하였다. 공직에서 물러난 후 경희대 행정대학원, 미시간 주립대학교, U.C 센디에이고 국제관계대학원 객원교수로도 있었다. 이후 대한체육회 회장, 대한올림픽위원회 위원장에 선출되어 한국을 대표하는 국제적인 문화체육 행정가로 활동했다. 현재 북경대학교 동북아 연구소 객좌 연구원으로 있다.

2010년 6월, 김민석 예비후보를 꺾고 민주당부산광역시장 후보로 선출되었다. 야권 단일화가 합의되어 진보신당의 김석준, 민주노동당 민병렬 후보와 경선 끝에 야권단일 후보로 선출되었다.[2] 6.2 지방선거에서 44.57% 득표를 하였지만 석패했다.[3]

2011년6월 광주 김대중 컨벤션센터에서 2만여명의 지지자가 모인가운데 정권재교체의 발판을 위해 사실상의 대선 출마를 선언했으며, 2012년 19대 총선에서는 희망버스 참여, 한미 FTA폐기에 앞장서는 등의 적극적인 활동을 하면서 당선확률이 높은 영도구 출마를 야권단일후보 성사를 위해 자신의 지역구를 스스로 포기하고 해당 지역구는 통합진보당 민병렬 후보가 민주통합당-통합진보당 야권 단일후보가 되었다. 김정길은 부산의 중심인 부산진구을 선거구에 출마하여 40.5%의 득표를 얻고 또 다시 7번째의 뼈아픈낙선했다.

김정길은 2012년 7월 21일 대통령후보등록을 1시간 앞둔 시점 민주당의 대통령후보 등록을 마치고 익일인 2012년 7월 22일 해군기지 반대가 한창 진행 중인 제주 강정마을에서 중앙언론 기자들 조차 없는 가운데 "탕탕평평 인권국가"라는 구호를 내걸고 강정마을 주민과, 강정해군기지를 반대하는 활동가들 앞에서 "한미 FTA폐기, 강정해군기지 백지화, 비정규직 철폐"등을 약속하면서 대통령후보 출마선언식을 가졌다.

2013년 6월 5일, 정계 은퇴를 선언했다. [4]

학력[편집]

약력[편집]

저서[편집]

  • 우리의 가을은 끝나지 않았다 (1978)
  • 공무원은 상전이 아니다 (1998)
  • 삼인행 (2006)
  • 공무원은 상전이 아니다(개정판 및 중국어판) (2009)
  • 김정길의 희망 (2011)

역대 선거 결과[편집]

선거명 직책명 대수 정당 득표율 득표수 결과 당락
제10대 총선 국회의원(부산 중구·영도구) 10대 무소속 6.0% 8,284표 4위 낙선
제11대 총선 국회의원(부산 남구·동구·영도구) 11대 무소속 18.3% 43,554표 4위 낙선
제12대 총선 국회의원(부산 남구·동구·영도구) 12대 민주한국당 37.4% 97,688표 1위 중구·동구·영도구 국회의원 당선
제13대 총선 국회의원(부산 영도구) 13대 통일민주당 47.2% 47,433표 1위 영도구 국회의원 당선
제14대 총선 국회의원(부산 영도구) 14대 민주당 25.1% 25,492 2위 낙선
1993년 재보궐선거 국회의원(부산 사하구) 14대 민주당 22.3% 14,871표 2위 낙선
제15대 총선 국회의원(부산 중구·동구) 15대 통합민주당 22.6% 22,400표 3위 낙선
제16대 총선 국회의원(부산 영도구) 16대 새천년민주당 29.1% 25,396표 2위 낙선
제17대 총선 국회의원(부산 영도구) 17대 열린우리당 45.2% 36,695표 2위 낙선
제5회 지방 선거 부산광역시장 35대(민선 6기) 민주당 44.5% 619,565표 2위 낙선
제19대 총선 국회의원(부산 부산진구 을) 19대 민주통합당 40.5% 33,786표 2위 낙선

주석[편집]

  1. 추도사 친구 노무현을 보내며-김정길/전 대한체육회장
  2. "김정길·민병렬·김석준 중 '부산시장 야권단일후보' 나온다", 오마이뉴스, 2010-05-09
  3. <6·2 지방선거 ‘국민의 선택’>‘심상찮은’ 기록들 - 부산 김정길 44.5%…‘盧 득표율’ 넘어
  4. [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23&aid=0002529525 친노 김정길 전 장관 정계 은퇴 선언, 조선일보, 2013년 6월 5일]

바깥 고리[편집]

전 임
조해녕(내무부 장관)
심우영(총무처 장관)
홍사덕(제1정무장관)
초대 행정자치부 장관
1998년 3월 3일 ~ 1999년 2월 5일
후 임
김기재
Emblem of the National Assembly of Korea (1948-2014).svg 전 임
왕상은,안건일
제12대 국회의원(부산 중구·동구·영도구)
1985년 4월 11일 ~ 1988년 5월 29일
민주한국당
박찬종
후 임
(부산 중구)김광일
(부산 동구)노무현
(영도구)김정길
Emblem of the National Assembly of Korea (1948-2014).svg
Emblem of the National Assembly of Korea (1948-2014).svg 전 임
(중구·동구·영도구)김정길,박찬종
제13대 국회의원(부산 영도구)
1988년 5월 30일 ~ 1992년 5월 29일
통일민주당
후 임
김형오
Emblem of the National Assembly of Korea (1948-2014).sv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