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훈 (음악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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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훈
기본 정보
출생1903년
대한제국 함경남도 함주군 흥상면 흥상리
사망1951년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성별남성
직업바이올린 연주자,작곡가
장르서양 고전 음악
활동 시기1920년 ~ 1951년

김재훈(金載勳, 1903년 ~ 1951년)은 일제강점기의 바이올리니스트이며 작곡가이다. 일명 '니콜라이 김'으로도 알려져 있다.

생애[편집]

10대의 나이에 독일에 유학하여 바이올린 연주를 공부하고 1934년 돌아왔다.

서울에서 보성학교에 다녔으나 졸업하지 않았고, 이춘덕(李春德)과 결혼하고 약 1년 정도 살다가 바이올린 공부를 위해 동경으로 유학을 떠났다. 동경에서 다시 상해로 가 1920년 독일로 유학을 떠났다.[1]

1925년 귀국해 고향 함흥에 잠시 다녀갈 당시 '서양 며느리'로 칭했던 독일 여성과 함께 돌아왔으나 이 여성은 1년 후에 다시 독일로 돌아가게 되었다.

일제강점기 말기에 조선음악협회군국주의를 옹호하는 친일 성향의 음악회를 개최했을 때 참가했다. 1942년 부민관에서 열린 조선음악경연대회에서는 심사위원을 맡았다.

그는 이때 1938년에 설립되어 5년간 운영된 경성음악전문학원의 원장을 맡고 있었는데, 태평양 전쟁의 비상 시국에 어울리는 음악보국운동을 전개해야 한다는 친일 주장을 펴기도 했다.[2]

작곡한 작품으로는 1937년에 발표한 합창곡 《추억》, 바이올린 독주곡인 《비가》 등이 있다.[3]

2008년 발표된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 중 음악 부문에 선정되었다.


함흥의 유지였던 보포리집 아들이었으며, 국립중앙박물관장을 지낸 미술사학자 김재원과 친척이다.

참고자료[편집]

  • 한국예술종합학교한국예술연구소 (1999년 12월 25일). 《한국 작곡가 사전》. 서울: 시공사. 147쪽쪽. ISBN 8952705238. 
  • 반민족문제연구소 (1993년 4월 1일). 〈현제명 : 일제 말 친일음악계의 대부 (노동은)〉. 《친일파 99인 3》. 서울: 돌베개. ISBN 9788971990131. 

각주[편집]

  1. 김재원 (1992). 《박물관과 한평생》. 탐구당. 29-31쪽. 
  2. 노동은, 일제하 음악인들의 친일 논리와 단체 《디지털 웹진 Now Art》 (2002년 광복 57주년 기념 학술 심포지엄 - 문화예술의 친일 논리와 성격)
  3. “김재훈”. 두산 엔싸이버 백과사전. 2008년 1월 23일에 확인함. [깨진 링크(과거 내용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