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익 (1938년)
김재익(1938년 11월 26일 ~ 1983년 10월 9일)은 전두환 정권 당시의 청와대 경제수석으로서 금융실명제, 물가안정화 정책, 정보화 정책, OECD 가입, 수입자유화 정책 등을 입안한 인물이다. 미얀마 아웅산 국립묘소 테러사건으로 사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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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경력
경기고등학교 2학년 때 검정고시를 거쳐 서울대학교 외교학과에 입학하였다.
졸업 후 한국은행에 재직하는 중에 도미하여 하와이대학에서 경제학 석사, 스탠퍼드 대학교에서 통계학 석사 학위를 취득하였고, 스탠퍼드 대학교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1973년 박사학위를 얻은 해에 귀국하여 한국은행에 적을 둔 채 청와대비서실로 들어간 김용환 경제수석 밑에서 자문역으로서 관계에 첫발을 내딛었다. 이때 부가가치세 도입의 이론적인 바탕을 마련하였다.
1974년 경제기획원으로 자리를 옮겨 비서실장, 경제기획관을 거쳐 경제기획국장이라는 요직을 차지하였다. 1980년 전두환은 김재익을 경제수석비서관으로 임명하였다.
김재익은 경기고 1년 후배인 오명을 청와대 경제비서실 과학기술 담당 비서관으로 임명하여 통신혁명의 기틀을 잡았다. 오명은 전기통신사업을 체신부에서 분리해 한국통신공사(현 KT)가 탄생하였으며, 전자교환기를 도입하였다.
[편집] 경제 정책
김재익은 미국에서 신고전파 경제학을 공부하였다. 1980년초기의 한국 사회의 인플레이션을 수습하기 위하여 금융과 재정을 긴축하고, 수입을 자유화하며, 임금상승은 생산성 증가의 범위 내로 억제하고, 환율과 금리는 시장에서 결정되도록 해야 한다는 기조를 유지하였다. 또한 경제의 능률 향상을 위해서는 개방과 경쟁이 필수적이고 정부의 간섭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원칙을 가졌다.
[편집] 재무부와 경제기획원 파벌
김재익은 청와대 경제수석비서관 재직시절, 재무부 관료를 배제한 경제기획원 관료에 편중한 인사를 기획. 일부 실행에 옮겨 여러가지 문제를 일으키기도 했다.[출처 필요] 전두환의 신임을 한몸에 받던 그의 이러한 인사철학은 그대로 통치권자에게 전해져서, 강경식 등 경제기획원 출신의 인사들이 재무부장관에 임명되어, 재무부 관료들에게 경제기획원출신 장관에 대한 불만을 품는 기회가 주어지게되는 계기가 되었다.[출처 필요] 그 결과, 현재 이명박정부에 들어와서까지도 경제기획원, 재무부, 상공부 출신이라는 꼬리표를 경제관료들에게 붙여주어 파벌을 형성하게 되는 결과를 초래했다.[출처 필요]
[편집] 사망
1983년 10월 미얀마(당시 버마) 아웅산묘역 폭탄테러사건으로 순직하였다.
[편집] 관련서적
- 80년대 경제개혁과 김재익 수석 - 20주기 추모 기념집, 2003-10-06, ISBN : 9788976332288
[편집]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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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 위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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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보위 | |
| 국보위 상임위원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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