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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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남(金永南, 1928년 2월 4일~)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정치인으로 現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위원장이다.

생애[편집]

정치경력[편집]

중국 료녕성(遼寧省) 관전현(寬甸縣) 진강진(振江鎭) 서강촌(西江村)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김명삼(金明參)으로 김택세(金擇世)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형제로는 동생 김동삼(金東參,김기남(金基男?)) 그리고 여동생 한명이 있다. 그의 가족들은 광복 직전에 헤이룽장 성(黑龍江省) 목란현(木蘭縣) 농촌 지역으로 이주하여 그 후 상지현(尚志縣) 흑룡궁진(黑龍宮鎭)에 이주하여 생활하였는데 중학교를 상지현 상조 조선족 중학교를 재학 중에 한국 전쟁이 일어나자, 북한이 젊은이들의 참전할 것을 호소하자, 이에 참전하여 한반도로 향하였다. 휴전을 한 뒤에 귀국하여 북한의 복구와 건설로 가족들을 이끌고 재차 북한 지역으로 갔다. 김일성종합대학을 졸업하고 모스크바 대학교에 유학했다. 1970년 11월 당 중앙위원이 되었다. 1972년에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당 국제부 부부장, 외교부 차관을, 1975년에는 당 국제담당서기를 역임했으며, 1978년에는 당 정치국원이 되어 최고급간부가 됐다. 1983년에 부총리겸 외무부장관에 취임했다. 1994년에는 김일성 주석 추모대회에서 추모연설을 하였다. 1998년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위원장에 선출되었고, 2009년 4월 9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최고인민회의 제12기 제1차회의에서 위원장에 재선출되었으며,[1] 2010년 9월에는 조선로동당 정치국 상무위원에 선출되었다.

당내 서열은 2011년 12월 현재 김정일이 사망한 후 서열 1위에 오른 김정은에 이은 2위이다.[2]

약력[편집]

  • 중앙당학교 교원
  • 당중앙위 부부장
  • 외무성 부상
  • 당중앙위 제1부부장
  • 당 부장
  • 당 비서
  • 정무원 부총리 겸 외교부장
  • 現 최고인민회의 상임위 위원장
  • 現 당 정치국 상무위원

일화[편집]

  • 김영남은 문장력이 뛰어나 김일성의 연설문 초안을 대부분 작성했다고 한다. 이 때문에 비중이 그다지 크거나 권한이 막강하지도 않은 국제문제를 담당했던 당 서기였음에도 당 정치국 정식 위원으로 승격되는 등 김일성과 각별하고 돈독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었다.[3]
  • 김영남은 공적인 대화가 시작되기 전 서로 인사를 나눌 때는 매우 친절하고 편안한 사람으로 느껴지지만, 일단 본론으로 들어가면 냉혹할 정도로 자신의 각본에 따른다고 한다.
  • 북한의 외교관이자 김일성의 통역관으로 활동하다가 남한으로 망명한 고영환은 김영남을 북한 관리의 전형이라 하며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다. "김일성이 벽을 가리키며 '저것은 문이다'라고 한다면 김영남은 그 말을 믿고 기어이 벽을 뚫고 밖으로 나가려 할 것이다"[3]
  • 김영남의 동생 김두남은 당 중앙위원회 군사부장, 4성장군을 역임했다.

함께 보기[편집]

주석[편집]

  1. http://www.kcna.co.jp/calendar/2009/04/04-09/2009-0409-020.html
  2.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03&aid=0004249916 [김정일사망]김정은 맨 앞에 …국가장의위원회 명단 232명 공개"
  3. 돈 오버도퍼, 《두개의 한국》
전 임
양형섭
제5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위원장
1998년~
후 임
(현직)
전 임
허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부총리
1983년 12월~1998년
전 임
허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외무상
1983년 12월~1998년
후 임
백남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