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석진 (184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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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진(金奭鎭, 1843년 ~ 1910년)은 조선 말기의 문신이다. 본관은 안동이다.

초기 생활[편집]

1843년에 태어났다. 어릴 때부터 학문을 익혔다. 그리고 1867년, 문과에 급제하여 벼슬길에 나아갔다.

제1차 관직 생활[편집]

종친부사, 음성현감, 진도군수, 고부군수를 거쳐 사과, 전적을 거쳐 홍문관의 수찬, 교리, 박사, 정자를 거쳐 지평, 장령, 집의, 헌납, 정언, 감찰, 사성, 사간 등을 연이어 지냈다.

제2차 관직 생활[편집]

그 뒤 호조좌랑, 예조좌랑, 형조좌랑, 공조좌랑을 거쳐 대사성에 이르고 대사간을 지내고 이조, 병조, 형조, 호조의 참의를 거쳐 한성부우윤, 한성부좌윤을 연이어 지냈다. 그리고 형조참판, 공조참판, 호조참판, 병조참판, 이조참판, 전라우도수군절도사, 전라좌도수군절도사, 경상우도수군절도사, 경상좌도수군절도사, 충청도수군절도사, 전라도수군절도사, 경상도수군절도사, 경상우도병마절도사, 경상좌도병마절도사, 경상도병마절도사, 전라우도병마절도사, 전라좌도병마절도사, 전라도병마절도사, 충청도병마절도사 등을 연이어 지냈다.

제3차 관직 생활[편집]

형조판서, 병조판서, 예조판서, 의정부우참찬, 의정부좌참찬, 광주부유수, 광주유수, 삼도수군통제사, 삼도육군방어사, 삼도육군통어사를 지내고 공조판서, 궁내부특진관, 장례원경, 대사헌, 장례원판결사, 대제학, 의정부우찬성, 의정부좌찬성, 한성부판윤, 비서원경, 귀족원경을 거쳐 판돈녕부사, 어영대장, 수어대장, 충용대장, 금위대장에 이르렀다.

제4차 관직 생활[편집]

1904년, 우의정, 좌의정을 거쳐 1905년, 영의정으로 승진하여 의효전향관과 세자부, 세자사를 겸임했지만 을사조약이 일어나자 벼슬에서 물러나고 1910년, 한일합병이 일어나자 아편을 먹고 자결하였다.

사후[편집]

1962년, 건국훈장이 추서되었다.

가족 관계[편집]

  • 양고조부 : 김학순(金學淳)
    • 양증조부 : 김연근(金淵根)
      • 양할아버지 : 김병주(金炳疇)
        • 양아버지 : 김도균(金道均)
        • 양어머니 : 정해상(鄭海尙)의 딸
          • 부인 : 윤치보(尹致輔)의 딸
            • 아들 : 김영한(金甯漢) - 생부 김홍진(金鴻鎭)
            • 자부 : 박가양(朴嘉陽)의 딸
        • 친아버지 : 김낙균(金樂均)
          • 동생 : 김덕진(金悳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