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위키백과 ―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 다른 뜻에 대해서는 김 (동음이의) 글을 참조하십시오. |
김은 해조류를 말려서 먹는 음식이다. 마치 종이처럼 일정한 크기의 얇은 낱장 형태로 말려서 그냥 먹거나 소금을 치거나 참기름을 발라서 구워 먹는다. 주로 요리의 부재료로 쓰이며 흔히 김밥으로 말아 먹거나, 잘게 썰어 국이나 탕 위에 고명으로 뿌려 먹기도 한다. 해우, 해의(海衣), 해태(海苔)라고도 부르며 한국, 일본 사람에게 인기 있는 음식재료이다. 한국에서는 삼국시대부터 먹었으며 조선시대에는 진상품과 무역품으로 귀하게 여겨졌다. 17세기부터 양식되었으며 한국에서는 주로 경상남도와 전라남도 지역에서 만든다.
목차 |
[편집] 어원
1650년경 전라남도의 광양의 김여익(金汝翼 : 1606∼1660)이 처음으로 양식법을 찾아내서 보급했으며 이때 특별히 부를 이름이 없어서 김여익의 성을 따서 '김'이라 부르게 되었다.
김여익은 전남 영암출신으로 병자호란 때 의병을 일으켰으나 조정이 항복하자 태인도에 숨어살던 중에 소나무와 밤나무 가지를 이용한 김 양식 방법을 창안하여 보급하였다.
이후 광양 김은 왕실에 바치는 특산물로 인기가 높았는데, 하루는 임금이 광양 김을 반찬삼아 수라를 맛있게 드신 후 음식의 이름을 물었으나 아는 사람이 없어 한 신하가 "광양 땅에 사는 김 아무개가 만든 음식입니다."고 아뢰자, 임금이 "그럼 앞으로 이 바다풀을 그 사람의 성을 따서 김으로 부르도록 하여라"라고 분부하여 김이라고 했다고 전해 내려온다.
또한 전라남도 광양시 태인동에는 김여익을 기리는 유지가 있다. 전남기념물 제113호로 1987년에 지정되었다.
[편집] 생물학적 의미
김은 홍조식물 보라털목 보라털과의 해조로 한국, 일본, 중국의 바다에서 암초 위에 자라난다. 마치 이끼처럼 자라나며 길이는 14~25cm 너비 5~12cm 정도이다. 긴 타원 모양이며 가장자리에 주름이 있고 윗부분은 갈색 아랫부분은 푸른 녹색이다. 10월 무렵부터 보이기 시작하여 겨울에서 봄을 거치는 동안 자라나고 날이 따뜻해지면 보이지 않는다.
[편집] 문헌상의 역사
1429년 세종실록에 해의(海衣)가 중국으로 보낼 물건 중 하나로 나와 있다.[1] 조선시대 동안에는 충청도 태안군, 경상도 울산군, 동래현, 영덕현과 전라도 일부지역에서 김을 만들어 서울로 올리는 진상품의 하나였다. 이렇듯 귀한 먹거리여서 1650년에는 1첩의 값이 목면 20필까지 오른 적도 있었다.[1]. 김은 삼국유사에 처음 나와 신라시대 때부터 먹은 것으로 보이며 이 밖에 경상지리지, 동국여지승람 등에서 김을 토산품으로 소개하고 있다. 인조18년(1640년)에 전라남도 광양 태인도의 김여익이 처음 김을 양식하는 데 성공하였다고 전해 내려온다. 김의 양식법은 완도, 조약도의 김유봉, 완도 고금면의 정시원에 의해서도 시작되었다.
[편집] 김 만들기
처음에는 바닷가의 암초에 붙은 돌김을 뜯어서 말려 먹기 시작하였으며 이후에는 개펄에 섶을 꽂아 포자를 붙게 하여 채취하는 방법을 사용했다. 이후 대나무로 발을 짜서 바다에 말뚝을 박아 고정하여 양식을 하였다. 1960년대에 인공포자 배양기술이 개발되고 그물발이 보급되면서 김양식의 생산성이 높아졌다.
김양식장은 해안마을에서 허가된 구역안에서 김발을 설치한 곳이다. 추석전후로 설치하고 종자용 포자를 부착한 김발과 보통 김발 여러 개를 한꺼번에 바다에 넣고 포자가 붙도록 1주일 쯤 놔둔 다음 정식으로 설치한다. 설치한 지 한 달이 지나면 채취가 가능하며 이듬해 4월까지 7~8회 정도 채취한다.
채취된 김은 민물로 세척한 다음 잘게 자르고 물통에 넣고 풀어 김발장에 뿌린다. 규격에 맞는 크기를 만들기 위해 김틀을 발장 위에 올리고 작업을 한다. 너무 두껍거나 얇지 않도록 풀어진 김을 올린 다음 양지바른 건조장에서 말린다. 건조된 김은 40장을 한 톳으로 묶으며 20톳을 한 통, 20통을 한 척이라고 한다.
한편 바위에서 채취하는 자연산 돌김은 썰물 때 긁어 모아서 말려 먹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