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 위소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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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 무평제 완안영제(金 武平皇帝 完顔永濟, ?~1213년)은 금나라의 제7대 황제(재위: 1208년~1213년)이며, 즉위전 위왕의 직위에 시호를 따서 위소왕(衛紹王)이라고도 한다. 시호는 소(紹), 혹은 무평제. 소자(小字)는 흥승(興勝). 초명은 윤제(允濟)였으나 후에 영제(永濟)로 바꿨다. 세종의 일곱 번째 아들, 어머니는 이원비(李元妃). 자식은 황태자 양왕 종각(梁王従恪) 등이 있다. 형제로는 동복형 정왕 윤도(鄭王允蹈), 동복 동생 윤덕(允徳) 등이 있다. 세종 대정(大定) 11년(1171) 설왕(薛王)에 봉해졌다. 장종(章宗) 승안(承安) 2년(1197) 위왕(衛王)으로 고쳐 봉해졌다.

생애[편집]

마달갈(금 장종)이 죽었으나 아들이 없어 동생인 오도보가 응당 뒤를 이어야 했다. 그러나 오도보는 서형(庶兄)이어서 황위에 오르지 못하였다. 그리하여 숙부인 완안윤제가 황숙(皇叔)의 자격으로 후계자가 되어 황제의 위에 올랐다. 즉위한뒤 이름을 영제로 바꾸었다.

칭기즈 칸에게 군신의 예를 갖추기를 요구하였으나, 칭기즈 칸은 무능한 통치자인 영제의 명령을 거부하고 정복의 기회로 이용하였다. 네스토리우스파 기독교인이었던 투르크계 웅구트인들이 몽골에서 만리장성으로 가는 산서성 북부의 길을 금을 위해 방어하고 있었다.

1211년 웅구트의 알라쿠쉬 티긴은 금의 정복을 위해 칭기즈 칸에게 이 길을 열어주었다. 그는 북경의 옛 주인이었으나 금에 의해 쫓겨난 거란인들과 연합하여 금나라를 공격하였다.

1212년 거란의 옛 영토인 만주 서남부의 요하에서 야율유가가 반란을 일으켰다.

1213년에는 몽골이 선화를 정복하고 산서 중부를 돌파하여 태원평양을 빼앗았다. 이후 남으로 기수를 돌려 하북과 산둥 평원을 가로질러 하간과 제남을 함락시켰다. 게다가 화북(華北) 일대까지 밀고 내려와 중도(中都)가 한 차례 위험에 빠진 적도 있었다. 칭기즈 칸이 북경을 봉쇄작전으로 공격하려고 했을 때, 금 조정에는 궁정분란이 일어나 위소왕이 흘석렬호사호(紇石烈胡沙虎)에게 암살을 당하였고, 호사호는 위소왕의 조카인 오도보(금 선종)을 제위에 앉혔다. 공성전에 자신이 없던 칭기즈 칸은 오도보의 화의를 받아들이고, 막대한 전쟁 배상금을 받고 철수하였다.

전 대
금 장종
제7대 황제
1208년 ~ 1213년
후 대
금 선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