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 위소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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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 소왕 완안영제(金 紹王 完顔永濟, ?~1213년 9월 11일)는 금나라의 제7대 황제(재위: 1208년 12월 29일~1213년 9월 11일)이다. 시호는 소(紹)이며 암살당하고 제위를 박탈당하여 소왕이라 칭하게 되었다. 혹은 생전의 작위인 위왕과 합쳐 위소왕이라고도 한다. 이름은 원래 윤제(允濟)였으나 황제로 즉위하고 나서 영제로 고쳤다. 자는 흥승(興勝)이다.

생애[편집]

세종의 일곱 번째 아들로, 어머니는 이원비(李元妃)이다. 세종 대정(大定) 11년(1171) 설왕(薛王)에 봉해졌다. 이어 장종 승안(承安) 2년(1197) 위왕(衛王)으로 고쳐 봉해졌다. 1208년 장종 사후 아들이 없고 형인 오도보가 있으나 서자였기에 작은 아버지인 완안윤제가 황숙(皇叔)의 자격으로 후계자가 되어 황제가 되었다. 새로 즉위한 위소왕은 장신의 미남으로, 검소한 인물이었지만 우유부단하고 어리석은 인물이기도 했다.

칭기즈 칸에게 군신의 예를 갖추기를 요구하였으나, 칭기즈 칸은 무능한 통치자인 위소왕의 명령을 거부하고 정복의 기회로 이용하였다. 네스토리우스파 기독교인이었던 투르크계 웅구트인들이 몽골에서 만리장성으로 가는 산서성 북부의 길을 금을 위해 방어하고 있었다.

1211년 웅구트의 알라쿠쉬 티긴은 금의 정복을 위해 칭기즈 칸에게 이 길을 열어주었다. 그는 북경의 옛 주인이었으나 금에 의해 쫓겨난 거란인들과 연합하여 금나라를 공격하였다.

1212년 거란의 옛 영토인 만주 서남부의 요하에서 야율유가가 반란을 일으켰다.

1213년에는 몽골이 선화를 정복하고 산서 중부를 돌파하여 태원평양을 빼앗았다. 이후 남으로 기수를 돌려 하북과 산둥 평원을 가로질러 하간과 제남을 함락시켰다. 게다가 화북(華北) 일대까지 밀고 내려와 중도(中都)가 한 차례 위험에 빠진 적도 있었다. 칭기즈 칸이 북경을 봉쇄작전으로 공격하려고 했을 때, 금 조정에는 궁정분란이 일어나 위소왕이 흘석렬호사호(紇石烈胡沙虎, zh)에게 암살을 당하였고, 호사호는 오도보를 옹립하니 이 이가 금 선종이다. 공성전에 자신이 없던 칭기즈 칸은 오도보의 화의를 받아들이고, 막대한 전쟁 배상금을 받고 철수하였다.

연호[편집]

  • 대안(大安) : 1209년~1211년
  • 숭경(崇慶) : 1212년~1213년
  • 지녕(至寧) : 1213년

가족[편집]

왕후는 종단씨(徒單氏)이며 자식은 황태자 양왕 종각(梁王従恪) 등이 있다. 형제로는 동복형 정왕 윤도(鄭王 允蹈), 동복 동생 윤덕(允徳) 등이 있다.

전 대
금 장종
제7대 황제
1208년 ~ 1213년
후 대
금 선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