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호석유화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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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호석유화학
Kumho Petrochemical Co., Ltd.
금호석유화학 로고.jpg
산업 분야 합성고무 제조 등
창립 1970년 12월
시장 정보 한국: 011780
국가 대한민국 대한민국
본사 서울특별시 중구 청계천로100
핵심 인물 박찬구(대표이사 회장)
김성채(대표이사 사장)
매출액 5,883,690(백만원) (2012년 12월)
영업이익 223,803(백만원) (2012년 12월)
주요 주주 금호석유화학 자사주 18.36%
박찬구 6.67%
박철완 9.98%
박준경 7.17%
박주형 0.05%
한국산업은행 14.05% (2012.12)
종업원 약 1,358명 (2012.12)
웹사이트 http://www.kkpc.com/

금호석유화학(錦湖石油化學, Kumho Petrochemical)은 금호그룹이 일본합성고무(현 JSR)의 기술을 도입해 1970년 설립한 대한민국 석유화학기업. 1973년 울산에 합성고무공장(울산고무공장)을 준공, SBR(스타이렌부타디엔고무)을 시작으로 한국 최초로 합성고무를 생산했다. 이후 1980년 여수에 두 번째 합성고무공장(여수고무공장), 2011년에 세 번째 합성고무공장(여수고무제2공장)을 준공해 2013년 기준으로 세계 1위 합성고무 생산능력(범용합성고무인 SBRBR 기준)을 보유하고 있다. 합성고무와 합성수지를 주력사업으로 하며 정밀화학, 전자소재, 열병합, 건자재 등 사업을 전개하고 있다.

1사 3노조임에도 26년간 무분규 협력을 이어가고 있어 노사상생 모범사례로 평가받고 있다. 2010년부터 3년간 이어진 경영정상화 기간 중에는 2년간의 임금동결을 통해 고통을 분담하기도 했다. 2010년 노사문화대상(고용노동부장관상), 2012년 고용창출우수기업을 각각 수상한 바 있다.

2011년 Forbes 선정 ‘The Global 2000’ 중 1806위 기업에 랭크되어 있으며, 2013년에는 KOSPI 100에 신규 편입되었다.


주요 사업[편집]

2011년 준공한 금호석유화학의 세 번째 합성고무공장 '여수고무제2공장'
  • 합성고무 : 범용 합성고무제품 SBR(스타이렌부타디엔고무, 세계 1위)과 BR(부타디엔고무, 세계 3위) 세계최대 생산능력과 기술력 보유. 높은 에너지효율과 친환경성을 제공하는 차세대 합성고무 SSBR과 NdBR, 의료용 장갑소재 NB 라텍스, 중온화 아스팔트 첨가제 등 광범위한 합성고무 제품라인 보유 (제품: SBR, HBR, LBR, SSBR, NdBR, NBR, HSR, NB 라텍스, SB 라텍스, SBS -- 세계일류상품(4): SBR, BR, NB 라텍스, NBR)
  • 합성수지 : 자동차, 가전제품, 식품용기, 건자재 등 산업용 및 생활용 플라스틱 수지 제품 보유. 열효율성이 가장 우수한 단열재 소재 블랙 EPS(에너포르) 보유 (제품: GPPS, HIPS, ABS, EPS, PPG)
  • 정밀화학 : 고무 제품의 안정성과 내구성을 높이는 고무약품. 합성고무 제품군과 함께 세계 2~3위 정밀화학 생산능력 보유 (제품: 노화방지제, 가황촉진제 -- 세계일류상품(2): K-13, KUMANOX 5010L)
  • 전자소재 : 반도체 미세회로 형성 및 코팅에 필요한 핵심 전자화학재료. ArF 포토레지스트는 국내 최초로 생산기술을 개발해 세계 5위 생산능력을 보유 (제품: ArF 포토레지스트, PSPI, BARC, 코팅제)
  • 에너지 : 열병합발전소 운영을 통해 스팀 및 전기 생산. 이 밖에도 태양열, TDF, 바이오 매스 연료생산 등을 추진 중
  • 건자재 : 친환경 주거문화 확산에 대응해 친환경 창호 제품 개발 및 공급. 유해 중금속과 독성 물질이 없는 ABS창호가 대표 제품 (브랜드: 휴그린)


주요 연혁[편집]

환하게 웃는 금호석유화학 직원들

1970. 12. 한국합성고무공업 설립 (삼양타이어 50%, 미쓰이물산 50%)

1973. 06. 합성고무공장 준공(울산), SBR(스타이렌부타디엔고무, 25만t) 생산

1976. 08. 세계합성고무생산자협회(IISRP) 가입

1976. 12. 금호화학 설립(금호피앤비화학 전신)

1980. 06. 두 번째 합성고무공장 준공(여수고무제1공장), 부타디엔고무(BR) 생산 개시

1980. 09. SBR 최초 수출(싱가포르, 21t)

1985. 06. 금호화학과 한국합성고무공업 합병, 금호석유화학으로 상호 변경

1985. 06. 금호EP고무 설립(금호폴리켐 전신)

1987. 06. 금호몬산토 설립(정밀화학 사업)

1987. 12. 기업 공개(IPO)

1989. 03. 금호미쓰이도아쓰 설립(금호미쓰이화학 전신)

1993. 07. 첫 해외사무소 개소(인도네시아 자카르타)

1997. 07. 열병합발전소 준공(에너지 사업)

1998. 10. 아산 전자화학공장 준공(전자소재 사업)

2001. 01. 금호케미칼 흡수합병(합성수지 사업)

2005. 11. 금호개발상사 계열사 편입(2000.9. 설립)

2008. 06. 금호석유화학상해무역유한공사 설립

2009. 09. 금호티앤엘 설립

2011. 02. 세 번째 합성고무공장 준공(여수고무제2공장)

2011. 03. 예산건자재공장 준공(건자재 사업)

2011 .04. IISRP(세계합성고무생산자협회) 서울총회 개최 (전 세계 61개 기업 참여)

2011. 12. 무역의날, 30억불 수출의 탑 수상

2012. 05. 금호석유화학 기업신용등급 BBB+에서 A-로 상향

2012. 09. 금호석유화학 및 화학계열사, 본사 이전(수표동 시그니쳐타워)

2012. 12. 금호석유화학, 채권은행 공동관리 종료


경영 이슈[편집]

형제의 난 (2009.6.15)[편집]

대우건설(2006년)과 대한통운(2008년) M&A를 통한 금호아시아나그룹의 무리한 외형 확장에 대해 박찬구 금호석유화학 회장은 책임자 엄중 문책과 대한통운 매각 등을 수 차례 건의하나 박삼구 그룹회장은 이를 모두 묵살. 2009년초 금호아시아나그룹의 유동성 위기가 금호석유화학에까지 미칠까 우려한 박찬구 회장은 박삼구 그룹회장과 결별하기 위해 계열분리 준비 착수. 6월 12일 박찬구 회장은 박삼구 그룹회장에게 공동경영합의 해지를 통보하고, 6월 15일 박인천 창업회장 기일에 맞춰 금호산업 지분을 매각(장내매매)하고 금호석유화학 지분을 장내매수(10.01% -> 18.47%). 박삼구 그룹회장 부자도 그룹 계열사들에게 금호산업 지분을 떠넘기며(시간외매매) 금호석유화학 지분을 추격 매수. 7월 28일, 박삼구 그룹회장은 2009년 7월 28일 임시이사회를 소집하고 박찬구 대표이사 해임 안건을 추가 안건으로 상정하여 박찬구 회장의 대표이사직을 박탈하고 본인 또한 그룹 회장직을 사임하는 동반 퇴진 발표. 동시에 전문 경영인체제로 전환하며 박찬법 부회장을 제5대 그룹회장으로 선임. 박삼구 회장은 그룹 회장직에서는 물러났다고 발표하면서도 채권단과의 관계를 고려하여 6개 계열사의 대표이사직은 그대로 유지하겠다고 하여 사실상 경영권을 포기하지는 않은 셈. 본 형제의 난은 박삼구 회장의 승리로 끝나는 듯 하였으나 대우건설 매각발표에도 불구하고 금호그룹의 유동성 위기는 계속되어 2009년 12월 말 부도설이 돌면서 결국 2010년 1월 5일 금호아시아나그룹은 워크아웃을 선언하게 됨. 이후 채권단은 금호석유화학의 경영권을 박찬구 박준경 부자 및 고 박정구 회장의 장남 박철완에게 인정함으로서 사실상 박찬구 회장의 판정승으로 일단락 됨. 2011년 박찬구 회장에 대한 검찰 수사가 시작되면서 세간에서는 2009년의 본 사건을 제1차 형제의 난으로 칭함. [1]


채권단 자율협약 (2010.2 ~ 2012.12)[편집]

2009년 6월 금호아시아나그룹이 유동성 위기로 채권은행들과 재무구조개선약정을 체결한 후, 금호그룹은 대우건설을 산업은행에게 되팔기로 결정하였으나 유동성 위기와 신용하락이 지속되어 2009년말 사실상 워크아웃에 들어가게 된다. 2010년 1월 5일 산업은행은 금호그룹의 워크아웃 주관은행으로서 금호그룹 워크아웃을 선언하고 워크아웃에 들어갈 계열사 선별작업과 대주주와의 합의를 진행하게 된다. 2010년 2월 초 재무상태가 나았던 금호석유화학과 아시아나항공은 '채권단 자율협약'으로 분류되고 부실이 제일 심했던 금호타이어와 금호산업은 워크아웃에 들어가면서 대주주 및 계열사간 지분은 100:1 감자(사실상 대주주 지분 소각)를 결정한다. 또한 박삼구 박세창 부자는 금호타이어의 대표이사를 맡도록 하고, 박찬구 박준경 부자 및 고 박정구 회장의 장남 박철완은 금호석유화학을 공동 경영하도록 한다. [2] 금호산업과 아시아나항공은 박삼구 회장에게 경영권을 위임하여 사실상 그룹을 2개로 분리 경영하도록 결정. 금호석유화학은 채권단의 결정에 따라 3월 박찬구 회장이 이사회에서 대표이사로 재선임 됨에 따라 정식으로 경영에 복귀하고, 2년 간의 노사 임금동결, 자산 매각, 세 번째 합성고무공장 준공, 新 비전(Vision 2020) 발표 등으로 2012년말 금호아시아나그룹 중에서 가장 먼저 자율협약을 졸업한다. 경영정상화를 통해 부채비율은 2009년말 498%에서 2012년말 166%로 낮아지고, 신용등급은 BBB-에서 역대 최고 등급인 A-로 상향된다.[3]


계열제외소송 (2011.3)[편집]

2011년 3월, 금호석유화학은 공정거래위원회에 대주주가 계열사 지분을 소유하지 않고 있던 금호타이어금호산업금호아시아나그룹으로부터 제외해달라고 '계열제외'신청을 한다. 2010년 2월 워크아웃 당시 채권단과의 합의에도 불구하고 박삼구 회장은 당시 약 10%의 금호석유화학 지분을 보유하고 있었고 이 때문에 금호석유화학은 금호아시아나그룹에서 분리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같은해 6월, 공정위는 금호타이어 금호산업 두 회사가 계열제외를 위한 지분율 조건은 충족하나 계열주인 박삼구 회장이 사실상 지배하고 있다고 판단하여 금호아시아나그룹의 계열사에서 제외할 수 없다고 발표한다. 7월, 금호석유화학은 공정위의 판단에 불복해 서울고등법원에 '공정거래위원회 계열제외 신청 거부처분 취소' 행정소송을 제기했으나 재판부는 공정위의 손을 들어주었고, 현재 대법원 상고하여 심리가 진행 중이다. 금호석유화학 측은, 채권단이 대주주이고 워크아웃 하에서 지배력의 행사가 기업구조조정촉진법(기촉법)에 의하여 제한되어있는 경영자인 박삼구 회장의 사실상 지배력을 공정위와 법원이 인정한 부분에 대하여 강력 항의하며, 대법원의 판단을 기다리고 있다. 만약 대법원이 계열제외 소송에서 금호석유화학의 손을 들어준다면, 금호아시아나그룹의 계열주(동일인)은 박삼구 회장에서 금호산업 또는 금호타이어가 되고 그룹 회장으로써의 지위는 무색해 질 수 있다. 2014년 금호타이어와 금호산업의 워크아웃 졸업 여부가 관건인 상황에서 본 사건은 워낙 이례적인 케이스라 재계와 언론계, 법조계 등 세간의 주목을 받고 있다. [4]


검찰 압수수색 (2011.4.12)[편집]

"제 2차 형제의 난"으로 불린다. 2011년 4월 12일, 서울남부지방검찰청 형사 6부(차맹기 부장검사)는 수십억원대 비자금 조성 의혹을 수사하기 위해 금호석유화학 본사(당시 종로구 신문로가) 및 협력업체를 압수수색했다. 이 날은 박찬구 회장이 협회장 자격으로 전 세계 61개 합성고무기업을 초청해 제52차 IISRP(세계합성고무생산자협회) 서울총회를 개최한 첫 날이기도 했다. 압수수색 당시 혐의는 ‘비자금 조성’이었으나 소환 당일 ‘미공개 정보이용을 통한 주가조작’혐의가 추가되며, 검찰 소환조사 과정에서 박삼구 그룹회장측의 차명계좌가 발견되기도 했으나 남부지검은 이에 대해 무혐의 처분을 내린다. 박삼구 회장 측에 의한 기획수사 논란 속에서도 검찰은 이례적으로 압수수색을 한지 약 8개월 만인 12월 2일 구속영장을 청구하였으나 영장실질심사에서 증거불충분과 범죄혐의에 대한 소명부족 등의 이유로 영장은 기각되었다. 2011년 12월 18일 검찰은 박찬구 회장을 불구속 기소했으며, 2012년 6월 25일 서울남부지방법원에서 1차 공판이 시작됐다. [5] 2014년 1월 16일, 1심 선고 판결에서 재판부는 횡령과 내부정보이용에 대해 무죄를 선고하고, 일부 배임 혐의를 인정해 징역 2년 6개월, 집혱유예 4년을 선고했다. 집행유예 선고와 함께 재계에서는 두 형제의 화해 가능성을 조심스레 점치고 있다. [6]

상표권 분쟁 (2012.5)[편집]

2007년 금호아시아나그룹은 지주회사로 전환하기 위한 작업을 시작한다. 금호산업과 금호석유화학을 그룹의 양대 지주회사로 하기로 하고 금호종금을 우리PE에 매각하고, 계열사간 지분구조와 상표권 등을 정리한다. 금호산업과 금호석유화학은 '금호아시아나'와 소위 윙마크'^'를 공동 상표권자로 등록한다. 하지만 양대 지주회사에 공동 상표권자의 지위를 가진 채, 금호아시아나그룹은 그룹의 지주회사 본부를 금호산업의 본부체제 하에 두기로 하고 '전략경영본부'를 신설, 산하에 회장비서실, 법무, 전략기획, 홍보 등의 팀들을 배치한다. '전략경영본부'는 그 활동에 따른 비용을 각 계열사로부터 갹출하기로 하고, 상표권 사용료로 각 계열사로부터 전년도 매출액의 0.1%를 징수하기로 한다. 그러나 금호아시아나그룹의 그룹본부가 금호산업 내에 소속되다 보니 그 비용처리에 대해서 문제가 발생할 소지가 생겼다. 금호석유화학이 공동 상표권자이기 때문에 금호산업에 상표권료를 낼 수가 없었던 것. 금호석유화학으로부터 상표권료를 받지 않을 수도 없는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양사는 금호 브랜드의 실소유권은 금호산업에 있다는 합의서를 작성한다.

대우건설 M&A에 고무된 금호그룹이 2007년 지주회사 체제로 성공적으로 전환한 이후 2008년 대한통운 M&A까지 손을 대다 유동성 위기에 빠져 2009년 말 '워크아웃'에 돌입하고, 2010년 초, 금호아시아나그룹이 <박삼구 회장의 금호타이어>와 동생 <박찬구 회장의 금호석유화학> 2개 그룹으로 경영권을 정리하면서부터 '상표권' 문제가 대두 된다. 2010년 경영에 복귀한 금호석유화학 박찬구 회장은 모든 문서서식과 명함 등에서 그룹 윙마크'^'를 떼고 금호아시아나그룹과 차별화한다. 금호라는 브랜드를 계속 사용할 것이냐는 논란도 있었지만, 2011년 2월 여수 제2공장 준공식에서 있었던 기자간담회에서 '금호'라는 브랜드는 아버지의 유산으로 계속 사용할 것임을 천명했다.

하지만 그 당시 금호석유화학에 대한 국세청 정기 세무조사에서 금호석유화학은 1) 2009년까지 금호아시아나그룹에 공동 상표권자이면서도 지급했던 상표권료에 대한 손비 불인정, 2) 공동 상표권자로써 현재까지 각 계열사(금호타이어, 아시아나항공 등)로부터 받지 않은 상표권료에 대한 매출 누락, 2가지 처분을 받게 되고 막대한 세금을 추징당한다. 금호석유화학 측은 1번 손비불인정에 대해 국세청에 '합의서'를 제출하면서 까지 막으려 했으나 국세청은 이를 인정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2번의 항목은 금호석유화학으로써도 나쁠 것은 없는 듯 하다. 국세청의 이러한 처분은 금호석유화학을 상표권자로써 인식하게끔 하는 조치였던 것 같다. 하지만 이와 같은 일련의 과정을 겪으면서도 상표권 분쟁이라 부를 만한 양측의 싸움은 아직 촉발되지 않았다.

2012년 5월 금호아시아나그룹 박삼구 회장은 금호석화 주식을 처분한 돈으로 금호타이어와 금호산업에 제 3자배정 유상증자 형식으로 오너 주주로써 정식 복귀한다. 2012년 6월 금호산업은 ‘금호’ 브랜드와 관련 아시아나항공, 금호타이어, 금호석유화학 등에 상표권 사용료를 종전 매출액의 0.1%에서 0.2%로 높여 징수하겠다고 공시하였고 이에 금호석화는 브랜드 사용료를 낼 수 없다고 반박하며 '상표권 분쟁'이 시작된다.

금호석유화학은 곧바로 보도 자료를 내어, 2009년 이후 윙마크와 금호아시아나그룹이라는 명칭을 사용하지도 않았고 '금호'라는 상표는 창업주 '박인천'회장의 아호로 사용하지 못하게 할 아무런 명분도 없고, 대법원 판례에도 비슷한 경우 형제들이 공유하도록 되어 있으며, 또한 당시 금호석유화학은 이사회 절차를 거쳐서 상표권 자산을 매각하지도 전체를 양도한 바도 없다 라고 주장하였다. 그 해 2012년 말 금호산업과 금호타이어 등은 2009년 워크아웃 돌입 직전 금호석유화학 및 계열사에게 떠넘겼던 CP(기업어음) 만기 대금과 본인들이 공시했던 상표권료를 상계처리 하였고, 계열사인 금호피앤비화학은 이에 대해 지난 6월 금호산업을 상대로 '어음금 반환 청구 소'를 제기한 상태이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은 이에 대해 '상표권료 청구의 소' 정도로 대응할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7]

계열사[편집]

금호피앤비화학: 석유화학, 1976년 설립, 금호석유화학(78.2%)/신일철화학(21.8%), BPA 생산능력 세계 5위, 페놀 생산능력 세계 9위(2013년 기준)

금호폴리켐: 석유화학, 1985년 설립, 금호석유화학(50%)/JSR(50%), EPDM 생산능력 세계 4위(2013년 기준)

금호미쓰이화학: 석유화학, 1989년 설립, 금호석유화학(50%)/미쓰이화학(50%), MDI 국내 시장점유율 1위(2012년 기준)

금호개발상사: 무역상사, 2000년 설립, 금호피앤비화학(56.25%)/금호알에이시(43.75%), 무역 및 도로관리운영 사업

금호티앤엘: 항만운영, 2009년 설립, 금호석유화학(85%)/남해화학(10%)/청해소재(5%), 유연탄 하역/보관/운송 사업


참조[편집]

  1. "형제의 난, 제 2막", 《MBC <시사매거진 2580>》, 2011.6.12 작성.
  2. 장원재, 김현지 기자. "금호, 3개이상 소그룹으로 쪼개질듯", 《동아일보》, 2010.2.9 작성.
  3. 김현상 기자. "독립경영 날개 단 금호석유화학", 《서울경제신문》, 2012.12.13 작성.
  4. 문병선 기자. "금호, 전례 없는 '주인' 가리기 다툼 왜?", 《더벨》, 2011.6.27 작성.
  5. 김승욱 기자. "수십억 금호 비자금 주인은 누구", 《연합뉴스》, 2011.4.28 작성.
  6. 이진혁 기자. "박찬구 금호석화 회장 "금호아시아나그룹과의 악연…과거 굴레에 연연 말자"", 《조선비즈》, 2014.01.16 작성.
  7. 양길모 기자. "금호家 브랜드 사용료 분쟁, 법정으로 가나?", 《뉴시스》, 2012.7.14 작성.


바깥 고리[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