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오훈 (191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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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오훈(權五勳, 1911년~1951년 1월 26일[1][2])은 대한민국의 정치인, 국회의원이었다. 6.25 전쟁 중 주한미군의 총기 오발 사고로 사망하였다.
해방 정국에서 우익 정치인으로 활동하여 독립촉성국민회 창당에 참여, 충남도지부 부위원장을 지냈다. 그 뒤 1950년 5월 10일 경상북도 달성군에서 제2대 국회의원 총선거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6.25 전쟁 중 현역 국회의원의 신분이었으나, 주한미군의 총기오발사고로 사망하였다. 그러나 미군은 어떠한 사과도 하지 않았다.
목차 |
약력[편집]
- 대학교졸업
- 독촉국민회 충남도지부 부위원장
가족 관계[편집]
- 첫째 아들: 권혁주[2]
참고자료[편집]
| 전 임 김우식 |
제2대 국회의원(달성군) 1950년 5월 31일 - 1951년 1월 26일[2] 무소속 |
후 임 배은희(보궐) |
주석[편집]
- ↑ 전대열 (2000년 12월). 월간조선, 6·25중 拉北된 국회의원 78명을 외면해 온 대한민국 國會. 2007년 8월 31일에 확인. “피난길에 원인불명으로 사망한 사람도 5명이나 된다. 부산 출신 崔元鳳(최원봉), 달성 權五勳(권오훈), 구례 李判烈(이판열), 공주 金明東(김명동), 연기 李肯鍾(이긍종) 의원 등이 그들이다.”
- ↑ 가 나 다 이상준 기자 (2007.1.26). 매일신문, (독자와 함께)맏아들 권혁주 씨 56년 '통한의 세월'. 2007년 9월 4일에 확인. “1951년 1월 26일 한국전쟁 때 대구에 주둔하던 한 미군 병사가 쏜 총탄에 경북 달성군 제2대 국회의원이던 아버지(권오훈·당시 39세)를 여의고 지난 56년간 통한의 세월을 보내고 있는 맏아들 혁주(71)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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