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연합 총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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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연합 총회의 내부

국제 연합 총회(國際聯合總會, 영어: United Nations General Assembly, 프랑스어: Assemblée générale des Nations unies)는 5개의 중요한 UN 기구 중 하나이다. 모든 국제연합 회원국으로 구성되고 매년 정기적인 회기를 통해 소집된다.

기능[편집]

모든 가맹국들로 이루어진 총회에는 각국은 5명의 대표와 5명의 양자 택일의 대표들은 물론 많은 조언자들을 보낸다. 그러나 각각의 가맹국은 단 하나의 투표를 가진다.

총회는 해마다 열리는 회의가 시작될 때마다 새 의장과 부의장을 선출하며, 의장의 주요 임무는 총회의 논의와 그 일을 지시하는 데 이끄는 일이다.

권력[편집]

총회는 다른 국제 연합의 기관의 모든 것을 위한 어떤 길에 책임을 지고 있다. 다른 기관들의 회원들을 선출하거나 그 임무를 지니며, 국제 연합의 어떤 조직들의 운영을 지시한다. 또한 국제 연합의 예산을 조절하기도 한다.

총회는 국제 연합의 일에 근심을 둔 여러 의문을 논의하고 있다. 그 일은 가맹국들의 투표를 통한 결정들을 도달한다. 투표의 결과로 총회는 다른 조직들이나 가맹국들에 의하여 활동들이 취해지는 데 제안한다. 국제 연합 헌장에 의하면, 순종을 해야하는 가맹국들에 의해서만 내려진 결정들만이 국제 연합의 예산에 투표들이다. 총회에 의하여 내려진 모든 다른 결정들은 단순적으로 권고이다.

평화를 지키는 데 총회의 책임은 안전 보장 이사회의 비슷한 책임에만 두 번째이다. 총회가 취하는 평화 유지 활동은 헌장이 채택된 이래 증강하였다. 국제 연합의 초창기에는 안전 보장 이사회에서 뚜렷한 의견 차이가 많은 사건에 활동으로부터 이사회를 방지하였다. 1950년에 총회는 "평화를 위한 조화"라 불리는 결의를 인정하였다. 이 결의는 평화에 위협이 가해지거나 안전 보장 이사회가 활동에 실패할 때마다 총회에 단계를 내리는 권력을 주었다. 비상 사태의 경우에는 유엔군을 포함한 국제 연합의 활동을 추천한다.

회의와 투표[편집]

총회는 각해마다 정규적 회의를 열며, 9월의 세 번째 화요일에 시작하여 대략 3개월간 지속된다. 특별 회의는 안전 보장 이사회나 다수 가맹국의 의문이 있을 때 열고 있다. 몇몇의 특별 회의들은 평화 유지와 재정 같은 문제를 의논하는 데 열린다. "평화를 위한 조화"는 긴급 특별 회의를 위항 형성되었다. 평화에 위협이 가해지고 안전 보장 이사회가 활동에 실패하면 24시간 통보를 받으면서 회의가 열릴 수 있다. 여러 안전 보장 이사회의 9개국이나 국제 연합 회원국의 다수가 긴급 특별 회의를 열 수 있다. 이런 회의들은 중동, 헝가리와 세계의 다른 곳들의 상황을 위하여 열렸다.

2000년 9월에 "새천년 총회"라 불리는 55회 회의를 열었다. 150개의 지도자들이 국제 연합 본부에 모여 국제 연합의 역할과 향하고 있는 도전들을 논의하였다. 이 회의는 세계 지도자들이 모인 가장 큰 모임이었다.

총회에서 선출된 많은 의문점들은 단순한 다수결에 의하여 결정된다. 헌장에 의하여 "중요한 의문점"으로 불리는 어떤 주제들은 다수결 3분의 1을 필요한다. 이런 화제들은 평화, 안전과 새로운 가맹국들을 선출하는 일들을 포함한다. 총회의 단순한 다수결은 또한 중요한 일에 의문을 두고 있다.

위원회[편집]

국제 연합 헌장은 총회가 자기들의 일에 계속할 수 있는 도움을 필요하면서 많은 위원회를 창설할 수 있도록 허락하였다. 총회는 1·2·3·4·5·6회의 위원회와 특별 정치 위원회를 두고 있다. 모든 가맹국들은 이 모든 위원회에 대표를 두고 있다.

1회 위원회는 정치적과 안정적 의문들과 군사 조정을 논의한고, 특별 정치 위원회는 1회 위원회를 원조한다. 2회 위원회는 경제와 재정적 의문, 3회 위원회는 사회와 문화적 문제들, 4회 위원회는 자치정부가 아닌 나라들의 문제들을 처리하고 있다. 5회 위원회는 행정과 예산 문제를, 6회 위원회는 법률의 의문을 다룬다. 각각의 위원회는 지정된 문제를 공부하면서 총회에 추천한다.

총회는 다른 위원회들을 세우기도 한다. 그들은 각각의 회의를 결성하고 지휘하는 데 도움을 주면서 2회와 5회의 위원회들에 재정과 예산 일들을 조언하거나 핵에너지와 식민 정책, 평화 유지에 관련된 문제들을 다룬다.

국제 연합 총회 결의[편집]

총회에는 매년 수많은 결의안이 제출되고 결의로 채택된다. 가장 유명한 국제 연합 총회 결의는 세계인권선언이다. 결의는 권고적 효력만 있을 뿐 법적 구속력은 없는 것이 원칙이나, 압도적 찬성 또는 만장일치로 결의된 것은 국제관습법이 성립한 것으로 보아 비회원국을 포함한 전 세계 모든 국가에 대해 법적 구속력이 있다고 본다.

대한민국의 역대 총회 참석 현황[편집]

대한민국의 승인을 얻음 (찬성 48개국, 반대 6개국, 기권 1개국)
  • 제4차 (1949년) : 조병옥(단장), 장면
  • 제5차 (프랑스 파리, 1950년) : 임병직(단장), 장면, 장택상, 김동성, 임영신
  • 제6차 (프랑스 파리, 1951년 11월) : 장면(단장), 임병직, 장택상, 이묘묵, 전규홍, 안연생. 당시, 장면은 건강이 좋지 않았으나 “대한민국을 새로 수립하고 유엔의 승인을 받을 때에도 임자가 활약했고, 유엔 사정에도 다른 사람보다 정통하니, 이번에도 국무 총리 현직을 가진 채 수석 대표로 유엔 총회에 참석하라”[1] :42는 이승만의 간곡한 권유가 있었다. 실제로, 일행이 파리에 도착하게 된 직후 갑자기 대표단장인 장면이 지병인 황달로 자리에 눕게 되어 [조병옥]을 중심으로 하여 임병직, 전규홍, 이묘묵 등이 회의에 활약하게 되었다.[2] :112 당시 한국 대표들은 사명을 띠고 외국에 나가는 경우에도 하루에 8달러 밖에 받지 못하였는데, 이것으로는 실제 호텔 방값과 아침 식사 한 끼 밖에는 못할 형편이어서 대표들은 각자 사비를 좀 준비해 가기는 했지만 궁색하였고[2] :112, 손과 발과 입으로만 우방에게 설득, 양해, 동조를 구하였다.[2] :112
  • 제7차 (1952년) : 변영태(단장), 임병직, 양유찬, 한표욱, 이재항, 서재식, 전상진
  • 제8차(1953년) : 변영태(단장), 양유찬, 임병직, 한표욱, 최덕신, 이수영, 이재항, 한유동,
  • 제9차(1954년) : 변영태(단장), 임병직, 양유찬, 최순주, 윤치영, 이재항, 한유동
  • 제10차(1955년) : 임병직(단장), 양유찬, 한표욱, 최순주, 김의준,
  • 제11차(1956년) : 양유찬(단장), 임병직, 한표욱, 장경근, 김준연, 김활란, 김동조, 윤석헌, 장기붕
  • 제12차(1957년) : 양유찬(단장), 임병직, 한표욱, 김법린, 민관식, 김형근, 김활란, 김영주, 윤석헌
  • 제13차(1958년) : 양유찬(단장), 최덕신, 한표욱, 최규남, 나용균, 윤치영, 김활란, 이원경, 오중정, 윤석헌, 황호을
  • 제14차(1959년) : 조정환(단장), 양유찬, 임병직, 정운갑, 이병하, 김활란
  • 제15차(1960년) : 장이욱(단장), 고광림, 임창영, 임병직, 최희송, 박준규, 김재순, 윤재근, 고황경, 최두선, 차균희, 유진오, 이철승, 엄민영
  • 제16차(1961년) : 최덕신(단장), 정일권, 이수영, 김준엽, 김동환, 이창희, 임윤영, 윤호근, 임병직 [3]
  • 제56차: 의장 한승수

더보기[편집]

주석[편집]

  1. 장면, 《한알의 밀이 죽지 않고는》 (가톨릭출판사, 1999 증보판)
  2. 《상록의 자유혼》(장병혜, 창랑 장택상 기념사업회, 1992)
  3. "歷代유엔總會韓國代表團", 《경향신문》, 1962년 8월 8일 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