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 안전 보장 이사회 결의 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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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mall Flag of the United Nations ZP.svg
UN
안전 보장 이사회
결의 제82호
날짜: 1950년 6월 25일
코드: S/RES/82 (Document)

투표: 찬성: 9 기권: 2 반대: 0
주제: Complaint of aggression upon the Republic of Korea
결과: 채택

안전보장이사회 1950년 구성:
상임이사국:

중화민국 ROC 프랑스 FRA 영국 UK 미국 USA 소련 USSR

비상임이사국:
쿠바 CUB 에콰도르 ECU 이집트 EGY
인도 IND 노르웨이 NOR 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 연방 공화국 YUG

Korean Peninsula satellite.png
한반도 위성사진

UN 안전보장이사회 결의 82호는 1950년 6월 25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침략을 개시하자 마자 UN 안전보장이사회에서 채택한 결의이다. 한국 전쟁과 관련한 최초의 UN 결의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북위 38도선 이북으로 철군하고 대한민국에 대한 적대 행위를 중지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1][2] 모든 UN 회원국들에 결의의 이행과 관련하여, UN에 대한 지원을 제공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당시 안보리 상임이사국과 비상임이사국 11개국 가운데 9개국이 찬성하였으며, 회의에 참석한 유고슬라비아는 기권[3], 소련은 회의에 참석하지 않아 기권으로 처리되었다.

  1. 1. 유엔안전보장이사회 결의 82호 (United Nations Security Council Resolution 82), 1950. 6. 25

소령 남보람

유엔안전보장이사회 결의 82호는 6·25전쟁과 관련한 최초의 유엔 결의이다. 1950년 6월 25일 북한이 침략을 개시하자마자 유엔안전보장이사회에서 채택했다. 유엔은 이 결의의 표제를 “대한민국에 대한 침략의 규탄(Complaint of aggression upon the Republic of Korea)”으로 정했다. 당시 이사국 11개국 가운데 9개국이 찬성하여 통과되었는데, 소련은 회의에 참석하지 않았고 유고슬라비아는 기권했다.

유엔안전보장이사회는 제2차 대전의 승전국인 미국, 영국, 러시아, 프랑스, 중국의 5개 상임이사국과 10개 비상임이사국으로 구성된다. (6.25전쟁이 발발한 1950년 당시에는 5개 상임이사국과 6개 비상임이사국이 있었다.) 안전보장이사회의 안건은 그 종류에 따라 일정한 비율의 찬성을 얻어야 통과되는데, 상임이사국은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다.

이 결의는 북한에게 즉각 대한민국에 대한 적대 행위를 중지하고 38도선 이북으로 철군할 것을 촉구하면서, 모든 유엔 회원국들에게 결의가 이행되도록 지원을 제공해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미측이 작성하여 제안한 이 초안은 큰 변경 없이 받아들여졌는데 내용은 아래와 같다.

안전보장이사회는 유엔 대한민국임시위원회의 감독과 조언을 받았던 대한민국의 정부가 한국인의 대다수가 거주하고 있는 한반도의 일부에 대한 통치 권한을 가진, 유엔 대한민국임시위원회의 감시 하에 한국 일부의 유권자의 자유의지의 확실한 표현인 선거에 기반하여 합법적으로 수립된 대한민국의 유일한 정부라는 1949년 10월 21일의 유엔 총회 결의 제293호의 4항을 상기하면서, 유엔이 대한민국의 통일과 독립을 완수하기 위해 노력한 결과를 회원국들이 실추시키는 행위를 하지 않는 한 따라야 하는 유엔 총회의 1948년 12월 12일의 결의 제195호의 3항, 1949년 10월 21일의 결의 제293조 4항의 숙고된 관련 내용에 의거하여, 유엔 한국위원회에서 작성한 대한민국의 안전과 복지가 위협받고 있으며 조선인민민주주의공화국이 군사 분쟁을 개시한 것으로 보인다는 보고서를 주의 깊게 살피면서, 북한의 군이 대한민국을 무력 공격한 것에 대한 엄중한 우려를 표명하며 이 행동이 평화를 파괴하는 것이라고 규정한다. 그리하여,

I. 적대행위의 즉각적인 중단을 요구한다. 북한의 당국자에게 그들의 무장 군대를 38도선 위로 철수할 것을 요구한다.

II. 유엔 한국위원회에 요청한다. (a) 지체 없이 상황에 대한 전반적인 고려가 담긴 권고들을 통보할 것 (b) 북한군의 38도선으로의 철수를 감독할 것 (c) 안전보장이사회에 이 결의의 실행을 지속적으로 통지할 것

III. 이 결의를 실행함에 있어 북한 당국에 지원을 제공하는 것을 금하고 모든 유엔의 회원국들이 유엔에 모든 지원을 제공할 것을 요청한다.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소련은 표결에 불참했다. 소련 측의 유엔 대표 야코프 말릭(Yakov Malik)은 스탈린(Joseph Stalin)으로부터 직접 표결에 참석하지 말 것을 지시받았다고 한다. 의사결정 과정에 중화인민공화국(Red China)이 참석하는 것에 이의를 제기하면서 1950년 연초부터 각종 주요 회의에 불참해오던 터였다. 유고슬라비아가 기권한 것은 당시 미국, 소련의 어느 측에도 속하지 않는 독자적인 노선을 걸음으로써 국제사회에서 힘을 키우려던 당시 티토 정권의 정치적 목적 때문이었다. 유엔으로서는 이 6.25전쟁의 문제가 하나의 시험대였다. 이 문제를 주도적으로 잘 해결하지 못한다면 유엔은 창립된 지 5년 만에 그 신뢰성을 잃을 수도 있었다. 당시 유엔 사무총장 트리그브 할브란 리(Trygve Halvdan Lie)는 이를 잘 인식하고 있었으며 6.25전쟁과 관련된 유엔의 결의 및 개입의 강력한 지지자였다. 그는 미국 시각으로 6월 24일 한 밤 중에 자신의 집이 있는 롱아일랜드에서 북한의 침공과 관련된 보고를 받았다. 전하는 말에 의하면 그는 전화기에 대고 반복적으로 ‘이것은 유엔에 대한 전쟁도발이야’라고 말했다 한다. 미국(뉴욕) 시각으로 6월 25일 14:00시에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473번째 회의가 즉각 소집된 데에는 트리그브 할브란 리의 공이 컸다.

유엔안전보장이사회 결의 82호는 향후 계속해서 이어지는 결의안의 시점이자 토대가 되었는데 이로 인해 유엔 회원국의 구체적인 군사적 참여가 전쟁발발 즉시 이루어질 수 있었다. 또한 이러한 발 빠르고 강력한 조치로 인해 유엔 회원국과 전세계 국가들은 세계의 조정자로서의 유엔의 향후 역할에 대해 신뢰를 가질 수 있었다. 유엔이 국제평화와 지역 안정을 위해 오늘날까지 큰 역할을 하는 데에 중요한 밑거름이 되었다고도 평가할 수 있다.

주석[편집]

함께 읽기[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