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영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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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영예상(일본어: 国民栄誉賞 (こくみんえいよしょう))은 일본내각총리대신에 의해 수여하는 상의 하나이다. ‘널리 국민에게 경애를 받아, 사회에 밝은 희망을 주는 데에 현저한 실적이 있는 경우에 대해 그 영예를 칭송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라고 하여 후쿠다 다케오 총리 재임 당시인 1977년 8월에 제정되었다.

목차

[편집] 역대 수상자

국민영예상 수상자 일람[1]
수상자 성명
(예명 등)
수상 당시
연령
수상 연월일
(수여 내각)
직업 수상 사유
1
오 사다하루 37세 1977년 9월 5일
(후쿠다 다케오 내각)
프로 야구 선수 개인 통산 홈런 세계 신기록 달성(756호)
2
고가 마사오 고인 1978년 8월 4일
(후쿠다 다케오 내각)
작곡가 ‘고가 멜로디’로 불리는 수많은 악곡 작곡에 대한 공로
3
하세가와 가즈오 고인 1984년 4월 19일
(제2차 나카소네 내각)
배우 연기에 정진하여 영화 및 연극계에 탁월한 공헌
4
우에무라 나오미 고인 1984년 4월 19일
(제2차 나카소네 내각)
모험가 세계 5대륙 최고봉 등정 등
5
야마시타 야스히로 27세 1984년 10월 9일
(제2차 나카소네 내각)
유도 선수 유도에 있어 진지한 정진과 전인미답의 기록 달성 등
6
기누가사 사치오 40세 1987년 6월 22일
(제3차 나카소네 내각)
프로 야구 선수 연속 경기 출장 세계 신기록 달성
7
가토 가즈에
(미소라 히바리)
고인 1989년 7월 6일
(우노 내각)
가수 진지하게 정진한 가요를 통해 일본 국민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었다(여성으로서는 첫 수상).
8
아키모토 미쓰구
(지요노후지 미쓰구)
34세 1989년 9월 29일
(제1차 가이후 내각)
스모 요코즈나 사상 제2위의 연승 기록, 스모계에 현저한 공헌
9
마스나가 다케오
(후지야마 이치로)
81세 1992년 5월 28일
(미야자와 내각)
가수 가요를 통해서 일본 국민들에게 희망과 격려를 준 공로, 아름다운 일본어 보급에 공헌.
10 하세가와 마치코 고인 1992년 7월 28일
(미야자와 내각)
만화가 가정 만화(《사자에상》)를 통해서 사회에 윤택함과 평온함을 주었다.
11 핫토리 료이치 고인 1993년 2월 26일
(미야자와 내각)
작곡가 수많은 가요곡들을 만들어 일본 국민들에게 희망과 윤택함을 주었다.
12 다도코로 야스오
(아쓰미 기요시)
고인 1996년 9월 3일
(제1차 하시모토 내각)
배우 영화 《남자는 괴로워》 시리즈를 통해 인정미가 풍부한 연기로 일본 국민들에게 기쁨과 윤택함을 주었다.
13 요시다 다다시 고인 1998년 7월 7일
(제2차 하시모토 내각)
작곡가 ‘요시다 멜로디’로 불리는 수많은 악곡들을 작곡하여 일본 국민들에게 꿈과 희망과 윤택함을 주었다.
14 구로사와 아키라 고인 1998년 10월 1일
(오부치 내각)
영화 감독 수많은 불후의 명작을 통해 일본 국민들에게 깊은 감동을 주고, 세계 영화사에 훌륭한 족적을 남겼다.
15 다카하시 나오코 28세 2000년 10월 30일
(제2차 모리 내각)
육상 선수 2000년 시드니 올림픽 여자 마라톤에서 우승해 육상 경기에서는 일본 여자 선수 첫 금메달을 획득해 일본 국민들에게 깊은 감동과 용기를 주었다.
16 엔도 미노루 고인 2009년 1월 23일
(아소 내각)
작곡가 세대를 넘어 길고 애창되는 정감으로 가득 넘친 많은 명곡들을 내보내어 일본 국민들에게 꿈과 희망과 윤택함을 주었다.
17 무라카미 미쓰
(모리 미쓰코)
89세 2009년 7월 1일
(아소 내각)
배우 오랜 세월에 걸쳐 예능 분야의 일선에서 활약을 하여 특히 연극 《방랑기》에서 무려 2,000회를 넘는 주연을 맡아 일본 국민들에게 꿈과 희망과 윤택함을 주었다.
18 모리시게 히사야 고인 2009년 12월 22일
(하토야마 유키오 내각)
배우 예능 분야에 있어 오랜 세월에 걸쳐 제1선에서 수많은 활약을 하는 등 뛰어난 연기와 가창력으로 일본 국민들에게 사랑을 받으면서 꿈과 희망과 윤택함을 주었다.
19 2011년 FIFA 여자 월드컵
일본 여자 축구 국가대표팀
(단체) 2011년 8월 18일
(간 내각 제2차 개조내각)
여자 축구 2011년 FIFA 여자 월드컵에서 우승을 차지하면서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한결같은 자세로 일본 국민들에게 감동을 안겨 주었으며 특히 동일본 대지진 등으로 인해 실의에 빠진 일본 국민들에게 용기를 주었다.
  • 수상자 18명 가운데 11명은 사후에 수상한 인물이다(실종 선고된 우에무라 나오미를 포함).
  • 일본 여자 축구 대표팀은 단체로는 처음으로 국민영예상을 수상한 단체이다. 2011년 FIFA 여자 월드컵에 출전했던 선수와 코칭 스태프를 포함할 경우 수상자 수는 35명이 된다.

[편집] 상의 의의에 대한 논의

첫 수상자인 오 사다하루가 중국계 일본인이라 훈장을 수여하는 대신에 고육지책으로 만들어진 상은 아닌가 하는 의혹이 돌았다. 그러나 외국인에게도 훈장을 수여한 예가 많았으므로, 이 의혹은 신빙성이 낮다고 할 수 있다. 오히려 1977년 당시에는 문화 훈장 등도 70세부터 후보가 되는 것이 통상적인 사례였으므로, 당시 37세였던 오 사다하루가 훈장 수여자의 평균 연령을 크게 밑돌만큼 젊었다는 것이 새로운 상을 마련한 이유로 추측되고 있다.

또한 이 상은 제정 당초부터 ‘지지율 침체로 고민하는 중인 내각이 인기를 얻기 위한 행동의 도구가 아닌가’하는 비판이 있었다. 또한 사후 수여자가 많은 것에 대하여 ‘왜 살아있을 때 수여하지 않는 것인가’하는 비판도 많다. 이것은 수상 기준이 명료하지 못한 것이 최대의 원인으로 보인다. 예를 들어 《사자에상》의 만화가 하세가와 마치코가 수상했는데, 만화 문화의 선구적 존재인 데즈카 오사무가 수상하지 않은 것이나 시드니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획득한 다카하시 나오코가 수상했으니, 유도로 금메달을 획득한 다니 료코아테네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획득한 노구치 미즈키, 대회 3연속 금메달을 획득한 유도의 노무라 다다히로 등도 수상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등이다. 하지만 국민영예상 수여를 부추기는 것은 결국 국민영예상을 비판하는 언론이라는 지적도 있다.

[편집] 수상을 거부한 사람

프로 야구 선수 후쿠모토 유타카는 1983년 6월에 당시 세계 신기록이 된 통산 939도루를 달성해 나카소네 야스히로 총리로부터 국민영예상 수여가 타진되었지만 본인은 이를 거부해 수여가 무산되었다.
고이즈미 준이치로 내각은 2001년 10월 메이저 리그에서 수위 타자가 된 스즈키 이치로에게 국민영예상 수여 의사를 타진했지만, 스즈키 이치로는 “아직은 젊기 때문에 할 수 있으면 사퇴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히면서 수여를 거부했다. 2004년 10월에도 메이저 리그 시즌 안타 기록을 갱신한 것과 관련해 국민영예상 수여를 재검토했지만 스즈키 이치로는 다시 거부했다.
1989년에 수상자로 선정되어 수여(사후)가 예정되어 있었지만 유족이 이를 거부했다.

[편집] 주석

  1. 국민영예상 수상자 일람(PDF) - 내각부 홈페이지

[편집] 바깥 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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