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연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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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연수(具然壽, 1867년 10월 8일 ~ 1925년 5월 6일)는 조선대한제국의 군인, 관료, 정치인으로 을미사변 관련자이자 을미사변 당시 조선인 출신 고위 협조자의 한사람이며 일제 강점기에 경찰 간부를 지냈다. 친일파 송병준의 사위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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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생애

한일 병합 조약 체결에 큰 몫을 한 을사오적의 한사람인 송병준의 사위이다.

을미사변 당시 훈련대 제2대대 소속으로 제2대대장 우범선의 부하로 일본인 낭인들의 안내에 협조했다.

1895년 을미사변 당시 살해된 명성황후의 시체에 석유를 뿌려서 불태우는 작업을 감독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1] 사건 후 같은 을미사변 관련자들인 이두황, 우범선 등과 함께 체포령을 피해 일본으로 피신했다. 처음에는 히로시마, 교토로 도망쳤다가, 명성황후 시해 주범인 미우라 고로 등이 석방되어 일본으로 돌아오자 도쿄로 이동하여 일본 정부의 비호 아래 망명 생활을 하였다.

1906년 한성부통감부가 설치되고 이듬해 대한제국 순종의 즉위로 특사가 단행되면서 명성황후 시해범들도 사면되었다. 귀국한 그는 통감부 경시, 조선총독부 경무관, 경무국 칙임사무관에 차례로 임명되었다. 경찰 최고 직급인 경무관에 임명된 조선인은 구연수 외에 아직까지 알려진 인물이 없어, 일제의 강한 신임을 얻은 것으로 추정된다.[2][3] 조선총독부 중추원 참의도 지냈다.

2002년 발표된 친일파 708인 명단2008년 민족문제연구소에서 친일인명사전에 수록하기 위해 정리한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의 중추원, 경찰, 친일단체 부문에 선정되었다.

아들은 한국은행 초대 총재를 지낸 구용서이다.

[편집] 같이 보기

[편집] 참고 자료

  • ‘친일인명사전’ 주요인물과 행적”, 《한겨레(연합뉴스 인용)》, 2005년 8월 29일 작성. 2008년 3월 23일 확인.
  • “초대 韓銀.産銀총재는 `매국노' 송병준의 외손자”, 《연합뉴스》, 2004년 8월 22일 작성.

[편집] 주석

  1. 반민족문제연구소 (1993년 2월 1일). 〈송병준 : 이완용과 쌍벽을 이룬 친일매국노 제1호 (강창일)〉, 《친일파 99인 1》. 서울: 돌베개, 63쪽쪽. ISBN 9788971990117
  2. 반민족문제연구소 (1993년 2월 1일). 〈이두황 : 이토 히로부미의 총애 받은 친일 무관 (강창일)〉, 《친일파 99인 1》. 서울: 돌베개. ISBN 9788971990117 “통감 이토 히로부미가 대역죄인인 이들을 중용하게 된 것은 그 누구보다도 신뢰할 수 있는 자들이기 때문이었다.”
  3. 김경화 (2008년 6월). 일제 경찰 자료로 본 식민지 경찰 - '공로가 뛰어나고 일반에 귀감'이 된 이들. 《민족사랑》: 18~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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