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 (성씨)
구(丘, 具)씨는 한국의 성씨 및 중국, 동남아의 성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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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덕 구 丘[편집]
구(丘)씨의 연원은 중국 제나라의 제후 강태공의 후손이며 3남인 구목공(丘穆公)에서 비롯되었다. 즉 구씨(丘氏)는 강씨(姜氏)에서 파생된 성씨이다. 구씨는 현재 중국과 한국, 동남아, 태국, 타이완, 말레이시아 등지에 분포되어 있다. 태국의 인물로는 전 총리인 탁신 친나왓(丘達新)과 그의 여동생인 현 37대 태국총리 잉락 친나왓(丘英樂)이 있다. 강태공망 이후로 강씨에서 갈라져 나간 고씨, 노씨, 구씨 등에서 큰 업적을 이룬 인물들이 많다. 한국 구씨의 본관은 평해(平海)이며 시조는 당나라에서 신라에 동래한 구대림(丘大林)이다. 인구수는 2000년 기준 약 13,241명이 있다.
갖출 구 具[편집]
시조는 고려 때 벽상삼한삼중대광검교상장군(壁上三韓三重大匡檢校上將軍)을 지낸 구존유(具存裕)로, 신안주씨(新安朱氏)의 시조인 주잠(朱潛)의 사위이다. 주잠은 중국 송(宋)나라의 한림학사(翰林學士)를 지낸 인물로, 1224년(고려 고종 11) 몽골의 침입을 피하여 고려로 망명한 8학사의 한 사람이다. 구존유도 이때 동행한 것으로 추정하는 설도 있지만, 중국 사료에는 고려인으로 기록되어 있으며 삼한 시대 고려국에 토착 구(具)씨가 있다고도 기록하고 있다. 주잠이 능성(綾城)에서 살며 2남 1녀를 두었는데 딸이 구존유(存裕)에게 출가하여 능성에서 살게되자 구존유가 능성을 관향으로 하였다.
본관: 조선씨족통보에는 본관이 33개 나타났고, 능성(綾城)과 창원(昌原)을 제외하고는 자세하지 않고 개별적 연원을 전하지 않는다. 구존유의 7세손대에 이르러 판사파(判事派)·시랑중파(侍郞中派)·좌정승파(左政丞派)·판안동파(判安東派)·도원수파(都元帥派)·낭장파(郎將派)·감무파(監務派)·참판파(參判派)·문천군사파(文川郡事派) 등 9개파로 분화되었다. 이중 좌정승파·판안동파·도원수파가 번창하여 현재 주종(약 90%)을 이루고 있다.
창원 구씨[편집]
창원 구씨는 고려 혜종조의 인물 구성길(仇成吉)을 1세조로 하고 있다. 시조 구성길(仇成吉)은 본래의 성이 구(仇)씨로 고려시대에 찬성사(贊成事)를 지냈으며, 의창군(義昌君)에 봉해졌다. 세종 때 홍문관 직제학을 지낸 종길(宗吉)을 중시조로 하고 있다. 조선 후기 정조는 1791년에 왕명으로 구(仇)씨의 뜻이 좋지 않다고 하여 구(具)씨로 성을 변경하여 쓰도록 하였다. 인구수는 2000년 기준 약 14,035명이 있다.
창녕 구씨[편집]
능성 구씨에서 떨어져 나와 독립해온 성씨이다. 인구수는 2000년 기준 약 1,226명이 있다.
기타[편집]
구(具, 俱)씨는 주나라 공족의 후손 진(晉)나라의 대부(大夫) 구병(具丙)이 있다. 당조 관료 구문진(俱文珍)은 초나라 공족 후손이다. 정나라 자손이 일부 구(具)을 성으로 하였고, 창족 구라(俱罗)씨가 구(俱)씨로 변경하였다. 선비족 독발부가 남량에서 구(俱)씨로 변경했다고 한다. 고대 부터 도래계 사람들이 있었으나 기록은 남아 있지 않은 경우가 많고 본관은 유명 본관으로 통합되는 과정이 조선 후기에 있었다. 많은 세거지들이 있었으나 현재에는 연원이 남아 있지 않다.
고대 구(顧)씨 가운데는 한자가 다르지만 월나라 성씨가 있다. 한국에서는 고씨로 발음되지만 고대와 현재는 발음의 차이가 있어 왔고, 삼국 시대에는 고와 구를 혼용한 사례가 많아 삼국사기 등에 병기하는 경우가 많다. 발음이 같은 경우 통합되는 과정이 고려, 조선 시대 일부 있었다.
구(仇)씨는 동국여지승람에 21개 본관으로 되어 있는데 조선씨족통보, 세종실록 지리지에 따르면 동래계와 토착계가 공존하다가 조선 후기 사라진 것으로 되어 있다. 본관이 대부분 한반도 남부에 위치하여 토착계가 더 많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