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보타 번 (데와 국)
구보타 번(久保田藩, くぼたはん)은 일본 에도 시대의 번으로, 일반적으로 아키타 번(秋田藩, あきたはん)으로 불린다. 거점은 구보타 성이며, 번주는 사타케 가문이다.
[편집] 번의 역사
데와노쿠니 아키타 지역은 센고쿠 시대에는 아키타 가문이 다스리고 있었으나, 세키가하라 전투 이후인 1602년에 아키타 가문은 히타치 시시도 번으로 전봉되었고, 대신 사타케 가문이 들어오게 되었다. 본래 사타케 가문은 히타치노쿠니에 54만 석의 영지를 보유한 대형 다이묘였으나, 구보타 번의 고쿠다카는 20만 석이었다. (실제 고쿠다카는 약 40만 석 가량) 게다가 히타치에 있을 때부터 방대한 규모의 가신단을 계속 거느리고 있다보니 번의 재정은 만성적 어려움을 겪게 되었다. 이로 인해 호레키 4년에는 번찰 발행을 둘러싼 사타케 소동을 비롯하여 번 정치의 혼란과 영내 백성의 잇키가 빈발했다.
그 와중에도 역대 번주들은 문화 및 교육 사업에 열심히 주력하였는데, 3대 번주 사타케 요시즈미는 번의 역사를 편찬하는 '아키타 사관(秋田史館)'을 설립했고, 8대 사타케 요시아쓰는 '아키타 난화(秋田蘭画)를 창설했으며, 9대 사타케 요시마사는 번교 명덕관을 설립했다.
메이지 유신 즈음에는 오우에쓰 열번동맹에 참여하였으나, 원래 존왕론이 비등했던 지역이기도 해서 센다이 번의 사자를 처형한 이후 신정부측으로 돌아섰다. 이 때문에 열번동맹군의 공격을 받게 되지만 메이지 정부가 파견한 사가 번 군대의 도움을 받아 버틸 수 있었다. 이후 판적봉환과 폐번치현을 거치면서 구보타 번은 아키타 현으로 편입되었다.
[편집] 역대 번주
- 사타케 요시노부(佐竹義宣) 재위 1602년 ~ 1633년
- 사타케 요시타카(佐竹義隆) 재위 1633년 ~ 1672년
- 사타케 요시즈미(佐竹義処) 재위 1672년 ~ 1703년
- 사타케 요시타다(佐竹義格) 재위 1703년 ~ 1715년
- 사타케 요시미네(佐竹義峯) 재위 1715년 ~ 1749년
- 사타케 요시마사(佐竹義真) 재위 1749년 ~ 1753년
- 사타케 요시하루(佐竹義明) 재위 1753년 ~ 1758년
- 사타케 요시아쓰(佐竹義敦) 재위 1758년 ~ 1785년
- 사타케 요시마사(佐竹義和) 재위 1785년 ~ 1815년
- 사타케 요시히로(佐竹義厚) 재위 1815년 ~ 1846년
- 사타케 요시치카(佐竹義睦) 재위 1846년 ~ 1857년
- 사타케 요시타카(佐竹義堯) 재위 1857년 ~ 1871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