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마모토 시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이동: 둘러보기, 검색
구마모토 시
구마모토 시의 위치
한자 표기 熊本市
가나 표기 くまもとし
나라 일본 일본
지방 규슈 지방
도도부현 구마모토 현
분류코드 43201-6
면적 389.53 km²
인구 740,139명
(2014년 9월 1일)

구마모토 시(일본어: 熊本市, くまもとし, 웅본시)는 구마모토 현 중부에 있는 이자 현청 소재지이다.

구마모토 현에서는 가장 큰 도시이자 인구는 72만 명 정도로 규슈 섬에서는 후쿠오카 시, 기타큐슈 시에 이어 3번째로 많은 인구가 분포하고 있다. 규슈 관광의 중추로서 구마모토 성스이젠사 공원 등의 명소를 이용한 관광 시설의 정비를 행하고 있다.공업은 식료품(40%)·기계(2%)·섬유(8%)·목재 제품(8%) 등의 도시형 공업(都市型工業) 중심이다.

2012년 4월 1일 일본의 20번째 정령지정도시로 승격되면서 주오 구, 히가시 구, 니시 구, 미나미 구, 기타 구 의 다섯 구가 설치되었다.[1]

지리[편집]

후쿠오카 시에서 남쪽으로 약 110km, 가고시마 시에서 북쪽으로 약 180km, 구마모토 현의 중앙부보다 약간 북쪽에 위치하고 있다.

옛 성시를 중심으로 시가지가 발전해 왔으며 구마모토 성의 동쪽에는 가미토리, 시모토리, 산로드 신시가로 불리는 중핵시 최대 규모의 아케이드 거리가 1km 이상에 걸쳐서 늘어서 있고 그 주위에 중심 시가지가 형성되어 있다. 중심 번화가인 도리초스지·가라시마 정 근처에는 시청, 일본 우정 주식회사 규슈 지사, 일본 최대 규모의 버스 터미널인 구마모토 교통센터, 2개의 백화점 등이 있다. 구마모토 역은 중심가에서 남서쪽으로 2km 정도 떨어져 입지하고 있어 시영전차나 노선버스로 이동한다.

구마모토 성에서 바라본 구마모토 시의 전경

아소 외륜산으로 이어지는 시의 북동부와 동부는 일부 기복이 있는 지형도 있지만 전체적으로는 아소의 화산재로 이루어진 완만한 농지나 주택지에 적절한 구릉지이기 때문에 국도 57호선을 따라 주택지가 펼쳐져 있다. 구마모토 시의 인구는 중앙부와 함께 동부에 모여 있다.

시의 남동부~남부는 구마모토 평야의 일부를 이루어 평탄한 풍경이 펼쳐진다. 시의 서쪽은 아리아케 해(시마바라 만)에 접한다. 시의 북서쪽에는 긴포 산 (665m)·니노다케(685m) 등이 우뚝 솟아있고 그 동쪽 기슭에는 중심부로부터 뻗어있는 주택지와 삼림이 뒤섞여 나쓰메 소세키의 "숲의 도시"라고 불린 풍치를 지금도 보이고 있다.

기후[편집]

연평균 기온은 대체로 16℃전후, 연 강수량은 대체로 약 1,500mm~2,000mm이다. 아리아케 해에 접하고 있지만 내륙성 기후로 사가와 함께 여름과 겨울의 기온 차이가 크다. 특히 여름철은 저녁에 바람이 불지 않아 더위가 심하고 최고기온이 가고시마나 오키나와보다 높은 날도 적지 않다. 겨울철은 영하까지 내려가기도 하지만 강설 날짜는 적다. 봄은 벚꽃의 개화가 고치 등과 함께 빠르다.

인접한 자치체[편집]

역사[편집]

구마모토 성
에도 시대의 구마모토(모형)

시의 역사[편집]

도요토미 히데요시와 동시대 인물인 가토 기요마사1588년히고 국에 입봉하였고 1607년구마모토 성을 세웠다. 많은 혁신적인 방어 설계 덕분에 구마모토 성은 난공불락(難攻不落)으로 여겨졌고 기요마사는 일본 역사에서 가장 정교한 성을 세운 사람 중 하나라는 명성을 얻었다. 1611년에 기요마사가 사망한 후에 그의 아들인 가토 다다히로가 뒤를 이었으나 1632년에 영지를 몰수당하고 호소카와 씨로 대체되었다. 예전에 일본 총리였던 호소카와 모리히로는 구마모토의 호소카와 씨의 직계 자손이었고, 총리 되기 전에는 구마모토 현 지사로 역임하기도 했다. 또 한 명의 유명한 정치인으로 한 때 페루의 대통령이었던 알베르토 후지모리 또한 구마모토에 뿌리를 두고 있다. 후지모리의 아버지는 20세기 초에 구마모토에서 페루로 이주했다.

  • 1889년 4월 1일 - 구마모토 시가 성립하였다.
  • 1891년 7월 1일 - 구마모토 역이 개업하였다.
  • 1921년 6월 1일 - 호타쿠 군내의 11정촌을 편입하였다.
  • 1933년 - 구마모토 시의 인구가 후쿠오카 시에 추월당해 규슈 최대의 자리를 빼앗겼다.
  • 1945년 7월 1일 - 구마모토 대공습으로 사망자 469명, 부상자 552명이 발생하고 가옥 약 11,000호가 소실되었다.
  • 1960년 - 구마모토 공항이 개항하였다(현재는 마시키 정으로 이전).
  • 1971년 6월 30일 - 규슈 자동차도가 개통하였다.
  • 1991년 2월 1일 - 호타쿠 군 호쿠부 정, 가와치 정, 아키타 정, 덴메이 정을 편입하였다(호타쿠 군 소멸).
  • 1996년 4월 1일 - 중핵시로 지정되었다.
  • 2008년 10월 6일 - 도미아이 정을 편입하였다.
  • 2010년 3월 23일 - 조난 정, 우에키 정을 편입하였다.

구마모토와 울산(한국)[편집]

구마모토의 성주였던 가토 기요마사임진왜란정유재란 때 주로 울산 지역에 주둔하였다. 가토는 울산성(오늘날 학성공원)에서 조명 연합군의 공격을 받아 구사일생으로 살아나 태화강 하구를 통해 일본으로 달아났다. 가토는 한국에서 가장 규모가 큰 왜성인 울산 서생포왜성을 울산의 조선인들을 동원하여 쌓았고, 많은 울산 사람들을 강제로 구마모토로 끌고가 살게 했다. 오늘날 구마모토 중심가에 '울산정 역'이 있는데 '울산정(蔚山町駅 うるさんまち)역' 안내 소개문에는 역의 이름이 '조선의 울산'에서 유래하였다고 쓰여져 있다. 울산정 역 인근에는 가토 기요마사가 끌고온 울산 사람들이 살았다고 알려져 있다. 구마모토에서는 '울산 간장'이라는 이름의 간장도 특산품으로 생산한다. 구마모토에는 가토가 왜성을 쌓았던 울산 지역의 지명과 동일한 서생(西生, nishio にしお)이라는 성을 가진, 끌려간 조선인의 후예라고 알려진 사람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구마모토의 명물이자 일본 2대 성 중의 하나인 구마모토성은 가토가 울산 서생포 왜성을 축성한 경험을 바탕으로 쌓여졌다고 알려져 있으며 실제로 구조와 축성법에서 매우 유사하다. 두 도시는 2010년 4월 26일 우호협력도시 체결을 맺으면서 과거의 앙숙 관계를 넘어 교류 관계를 확대하고 있다.

교육[편집]

스포츠[편집]

교통[편집]

구마모토 역

철도[편집]

도로[편집]

자매 도시[편집]

바깥 고리[편집]

각주[편집]

  1. "熊本市の政令市移行を決定、来年4月1日、全国20番目 (일본어)", 2011년 10월 18일 작성. 2012년 4월 1일 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