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 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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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 평가(敎育評價)와 교육 측정(敎育測定)은 인간행동에 관한 증거를 수집하는 과정을 지칭한다.[1]

교육 평가의 의미[편집]

교육평가는 교육과 관련된 평가로, 교육의 목적이나 이념을 규준으로 하여, 일정한 교육계획이나 시설 및 지도로 얻은 성과를 나타내는 것이다. 평가의 근거로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학생의 신상에 일어나는 변화, 그리고 의식과 행동의 변화이다. 이러한 학생의 행동의 변화를 관찰·포착하여 평가자의 평가규준(評價規準)에 비추어 해석하고, 이를 금후의 행동에 피드백(feedback)하는 것이 교육평가이다.

교육평가에서는 관찰된 교육과 평가자의 가치규준의 2가지 요소가 포함된다. 이들 중, 교육의 상태를 관찰하고 평가의 근거를 만들어내는 일이 교육측정과 관계가 있다. 여기에서 평가규준에 비추어서 의미를 추출하는 일이 곧 협의적인 교육평가이며, 절대평가나 상대평가, 또는, 개인내평가 등은 '협의의 평가'의 한 예이다. 즉, 교육평가는, 관찰이나 측정에 의해서 평가 자료를 모으고 그 자료의 해석하는 것까지 포함시킨 넓은 의미의 평가로부터, 자료의 해석부분만을 말하는 좁은 의미의 평가로 구별된다.[2]

교육 측정[편집]

교육측정이란, 광의의 교육평가의 일부이며, 일정한 측정의 기준을 유지하여 교육과 관련된 현상의 수량적 자료를 구하는 조작을 말한다. 관찰법과 같은 주관적인 방법에 의한 것은 제외하고 비교적 엄격한 객관적 자료를 구한다. 신장·체중·중량 등은 자·저울 및 스톱워치 등을 사용하여 측정하듯, 지식·사상·사고력 같은 것은 테스트, 특히 표준화검사를 써서 수량적 자료를 구하는 것이다.

측정의 단위는 센티미터(cm)나 그램(g)이 되지만, 지식검사나 학력표준 검사의 편차치척도에서는 1/10S·D의 값을 측정단위로 삼고 있다. 길이나 무게의 측정에 있어서는 영점이 기점인데, 편차치척도에 의한 측정에서는 -5S·D의 점을 측정의 기점으로 여긴다. 학력이나 성격 등에 관한 교육측정은 물리학적 측정만큼 정밀하게는 할 수 없으나, 가능한 한도내에서 측정에 의한 자료를 사용함으로써 객관적·적극적인 평가를 하려는 발상이다. 이 교육평가는 19세기 말엽부터 금세기 초엽에 걸친, 이른바 교육측정운동에서 비롯되었다.[3]

역사[편집]

면접·구두시험 혹은 필기시험에 의해서 교육효과나 사람의 능력·학력을 평가하는 필요성은 예부터 존재하였다. 대표적인 예로, 1천여 년 전, 고대중국에서 시작된 과거제를 들 수 있다.

서양에서는 19세기 후반부터 과거의 평가방법이 주관적이어서 신뢰성이 희박하다는 반성이 일어나, 이후로 이를 객관화하기 위한 연구가 시도되었다. 1864년에는 영국의 피셔(G. Fisher)가 척도부(尺度簿)라는 것을 연구하였고, 1894년에는 미국의 라이스(J. M. Rice)가 영어의 스펠링에 관한 객관 테스트를 만들어 커리큘럼을 근대화시켰다.

20세기에 들어서 교육의 보급과 함께 커리큘럼 제작, 학생의 편성, 교육자료 등의 여러 과제와, 심리학의 진보 등을 배경으로 더욱 객관적인 측정의 필요성이 높아졌으며, 미국의 손다이크(E. L. Thorndike)가 '측정 운동'의 대표자였다. 교육의 측정운동은 이른바 표준화된 테스트를 요구하였고, 이로부터 지도효과를 되도록 객관적으로 측정하려 하였다. 스토어(C. W. Store)가 1908년에 만든 산수에 관한 표준화검사를 계기로 하여 교과에 관한 표준화검사가 속속 제작 공표되었다.

교육효과의 객관적 측정은 표준화검사에 의해서만 가능한 것은 아니며, 교사가 자작한 객관적 테스트로도 가능했다. 이는 적어도 그때까지의 논문체 테스트에 비하면 그 채점의 객관성과 여러 문제를 제시할 수 있는 점에서는 훨씬 뛰어났다. 이렇게 이른바 객관 테스트가 고안되었고, 그 보급·선전이 이루어졌다. 이에 관해서는 메콜(W. A. Mecall)의 공적이 높이 평가된다.

지능측정에 있어서도 1905년 프랑스의 비네(A. Binet)에 의해 처음으로 지능검사가 고안되었다. 그 후, 미국에서 지능검사는 다양한 발전을 이루었다. 성격분야에 있어서도 측정은 시도되었는데 퍼널드(G. G. Fernald)의 시도가 그 한 예이다.

1930년을 전후하여 교육측정운동에도 하나의 반성으로부터 새로운 교육평가의 사상이 대두하였다. 교육측정이 지난 날의 주관적 평가를 배격하고, 객관적인 평가를 위해 수량적인 자료를 구하려 하였던 점에서는 큰 발전이 있었으나, 다른 면에서 볼 때, 교육이 목적이나 가치를 추구하는 데만 그 의의가 있다는 인식이 결여되고, 오직 수량적 자료를 구하는 일에만 중점을 두었다는 느낌이 있었다. 교육의 목표에서 학생의 가치관·태도·감상 등과 같은 사항들을 객관적 측정이 용이한 목표와 동일하게 중요시하여 평가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측정하기가 어렵다는 이유로 무시하는 경향이 있었다. 또한, 1920년경이 되어 그 체제를 정비한 새로운 심리학의 탄생과 함께 발전한 신교육운동이 객관적 측정운동에 새로운 전기(轉機)를 마련하였다. 즉, 새로운 심리학, 새로운 교육의 탄생은 단순히 인간을 지적 존재로 파악하지 않고, 지적·사회적·적극적·신체적 종합체로서 파악하여 그 전체의 교육이 위치를 잡기 시작했다. 이러한 입장에서 보아도 수량적인 측정만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게 되어, 측정에서 평가로 기본구상을 전환하게 되었으며, 용어도 '교육측정'보다 '교육평가'라는 말이 더욱 적절하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4]

주석[편집]

  1. '교육의 측정과 평가[서설]', 《글로벌 세계 대백과》
  2. '교육평가의 의의 - 교육 측정과 평가의 의의', 《글로벌 세계 대백과》
  3. '교육측정의 의의 - 교육 측정과 평가의 의의', 《글로벌 세계 대백과》
  4. '교육평가의 역사 - 교육 측정과 평가의 의의', 《글로벌 세계 대백과》

참고 자료[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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