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희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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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원된 광희문의 모습

광희문(光熙門)은 조선시대 서울의 사소문 중 하나로 동남쪽에 있었던 문이다. 광명(光明)의 문이라는 뜻에서 광희문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태조 5년(1396) 8월부터 9월까지 행한 2차 도성 수축 공사 때 다른 문들과 함께 누각을 올려 완성했다. 일제강점기에 문루가 망가졌다가 1975년 문을 남쪽으로 옮겨 문루와 함께 복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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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다른 이름

광희문을 수구문(水口門)이나 시구문(屍口門)이라고도 불렀다. 청계천(오간수문)·이간수문이 가까워 수구문이라고 했고, 도성의 장례 행렬이 통과하던 문이어서 시구문이라고도 했다.

[편집] 문루

다른 서울성곽의 문과 달리 광희문의 원래 문루는 약간 특이했다. 보통의 문은 홍예와 붙어 있는 반면, 광희문의 문루는 나무 기둥으로 연결되는 형식이었다.

[편집] 시체문

광희문에는 도성의 시체 행렬이 종종 통과하곤 했다. 그 이유는 도성의 장례행렬이 통과할 수 있는 문이 사소문(四小門)중에서도 소의문과 광희문밖에 없었기 때문(창의문은 산에 있는데다 출입이 불편했고, 혜화문은 닫혀있는 숙정문을 대신해 북문으로 쓰였다)이다.

[편집] 돌가루

조선시대 '수구문 돌가루'라고 하여 이 광희문의 돌을 갈아 만든 돌가루가 만병통치약으로 통했었다. 그렇지만 이는 '아무리 지독한 병마라도 수많은 원귀에 단련된 수구문에는 꼼짝도 못 할 것'이라는 상상력이 만든 미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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