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 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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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광장(光化門廣場)은 광화문에서 세종로 사거리 및 청계광장에 이르는 세종로의 중앙에 설치된, 폭 34미터, 길이 740미터의 상시광장 및 평상시엔 차도이나 대규모 행사시 광장으로 활용가능한 왕복 10차선의 예비광장으로 이루어진 광장이다. 2009년 8월 1일 12시 일반시민에게 개방했다.

목차

[편집] 상세 설명

광화문광장 조감도

범위는 광화문에서 세종로사거리 및 청계광장에 이르며, 폭 34미터, 길이 740미터의 상시광장과 평상시에는 차도이나 대규모 행사시 광장으로 활용가능한 왕복 10차선 예비광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서울시는 세종로가 과거 조선시대 육조거리로 역사·정치·행정·업무가 결집된 곳이었으나 자동차 통행 위주의 아스팔트 공간으로 건설되어 있어 국가의 상징가로로서 또는 중심광장으로서의 역할에 미치지 못하는 공간이었기 때문에, 세종로를 차량중심에서 인간중심의 공간으로, 청계천경복궁을 연결하는 보행 네트워크 공간으로, 경복궁, 북악산 등 아름다운 자연경관 조망공간으로, 육조거리의 복원을 통한 역사·문화 체험 공간으로 재탄생시키기 위한 사업이라고 밝혔다.

[편집] 구성

광장 조성은 역사의 복원, 조망권 확보, 문화공간 창조에 주안점을 두었으며, 북쪽에서 남쪽으로『광화문의 역사를 회복하는 광장』,『육조거리의 풍경을 재현하는 광장』, 『한국의 대표 광장』, 『시민들이 참여하는 도시문화 광장』,『도심속의 광장』,『청계천 연결부』로 나누어 계획하였다.

『광화문의 역사를 회복하는 광장』은 광화문 전면부 구간(130미터)으로 북한산관악산으로 이어지는 국가상징축이자 경복궁의 생명축이 담긴 육조거리와 월대를 재현했다.

육조거리의 풍경을 재현하는 광장』은 세종로공원 주변 구간(210미터)으로 육조거리의 흔적을 재현했으며, 관악산의 화기를 막기 위해 비뚤어지게 만든 육조거리의 축인 황토현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고 또한 정조능행차 등의 프로그램을 계획하여 옛 풍경 재현과 더불어 역사문화 체험공간으로 계획했다.

『한국의 대표광장』은 세종문화회관 전면부 구간(130미터)으로 이곳에 세종대왕 동상을 이전하여 대한민국 중심공간으로서의 의미를 부여하였으며, 특히 분수를 이용한 워터 스크린(한글 미디어보드)을 통해 과학적이고 배우기 쉬운 한글에 관한 역사적 사실들을 형상화하는 공간으로 구상했다.

『시민들이 참여하는 도시문화 광장』은 세종문화회관이순신장군 동상 사이로 광화문광장과 지하철 광화문정거장을 연결하는 지하통로를 활용하여 조성하는 해치마당에는 광장 이용객을 위한 화장실 등 편익시설과 전시장 등 문화갤러리 공간으로 활용토록 하였으며, 엘리베이터를 설치하여 보행약자에 대한 통행불편을 해소하였다. 또한, 시민들이 편안하게 휴식할 수 있는 스텐드, 벽천, 만남과 약속의 장소를 제공하였으며, 스텐드 건너편 벽에는 IT 메시지 보드를 설치하여 핸드폰 메시지 등 유비쿼터스 기술을 접목하여 시민들의 의견이나 사연, 사진들을 담아낼 수 있는 공간으로 구상함은 물론 경사로를 광화문 탐방로로 이용토록 하였으며, 경복궁과 북한산을 바라보는 다이나믹한 자연경관의 변화를 체험할 수 있는 공간으로 구성했다.

『도심속의 광장』은 이순신장군 동상 주변으로 이곳은 세종로의 상징이자 도시경관축의 중심지로서의 상징성을 표출하고 세종대왕 동상과의 이질감을 완화하기 위해 인공연못 및 바닥분수 등을 설치하였다.

『청계천 연결부』는 세종로사거리와 청계광장 사이로 청계천과 광화문, 경복궁을 연결하는 보행 네트워트의 연결축이자 황토현과 중학천, 백운동천을 형상화하는 공간의 의미와 흥미를 부여하였으며, 서울시티투어 시발점이기도 하다.

광화문 광장은 문화, 교육, 이벤트, 퍼레이드, 휴식 등 다양한 방법과 형태로 이용이 가능하도록 공간계획을 수립하였다.

[편집] 논란

[편집] 광화문 분수명칭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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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각에서는 이순신 동상 밑에 있는 12·23 광화문 분수의 이름에 대해 논란을 제기했다. 이름에서 12는 이순신이 12척의 병선(兵船)으로 왜선(倭船) 133척을 격파한 명량대첩을 상징하며, 23은 스물세번 싸워 23회 모두 이겼다는 의미에서 붙인 것이었다. 하지만 '이순신 장군이 실제로 이끈 병선은 12척이 아니라 13척'이며, '일본 아키히토 천황의 출생일이 12월 23일이다'라는 사실 때문에 대한민국 네티즌들 사이에 분수 명칭이 적합한가에 대한 논란이 일어났다. 한 네티즌은 다음 아고라에 분수명칭 개명을 요구하는 청원을 올리기도 했다.[1] 많은 시민들이 서울시 측에 이 문제에 대해 민원을 제기했다. 시 측에서는 '일왕 생일과의 일치 여부는 모르던 사실이다'라고 했다. 현충사관리소 관계자는 '정확한 사료로 따지면 13·23이 맞겠지만 충무공의 장계에 12라는 숫자가 있기 때문에 큰 문제는 아닌 것 같다'라고 밝혔다.[2]

[편집] 광장 사용 논란

2009년 11월 29일에 드라마 아이리스에서는 대한민국 드라마로는 사상 최초로 광화문 광장과 세종로 일대에서 대규모 총격 장면이 촬영되었다. 오전 7시부터 오후 7시까지 시청 방향 차선이 통제된 채 촬영이 이루어졌다. 서울시청은 드라마를 통해 서울의 풍광을 널리 알릴 수 있는 좋은 기회라 판단하여 이례적으로 광화문 촬영을 허용하였다고 밝혔다 [3]. 그러나, 촬영으로 인해 주말동안 이 지역을 지나는 차량들이 소통에 어려움을 겪었으며 [4], '시위는 허용하지 않으면서 드라마 촬영은 되느냐' 는 형평성 논란도 있었다 [5][6].

[편집] 주석

  1. 다음 아고라 광화문분수 명칭 개명 청원
  2. 광화문광장 '12·23 분수' 이순신 명량해전 논란으로. 조선일보. 최인혁. 2009-08-03 입력, 2009-08-08 확인.
  3. 이향휘. “아이리스, 광화문 광장 접수”, 《매일경제》, 2009년 11월 29일 작성.
  4. 박성민. “`아이리스' 촬영 광화문 일대 교통정체 극심”, 《연합뉴스》, 2009년 11월 29일 작성.
  5. 박상규. “<아이리스>에게만? 광장 통제 명분 잃었다”, 《오마이뉴스》, 2009년 11월 29일 작성.
  6. 안성용. “"아이리스는 되고 우리는 안돼?"…광화문 광장은 논란중”, 《노컷뉴스》, 2009년 12월 9일 작성. 2009년 12월 9일 확인.

[편집] 같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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