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화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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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장면, 일반적으로 '공화춘'을 그 시초로 여긴다.
인천 선린동 공화춘
대한민국등록문화재
지정번호 등록문화재 제246호
소재지 인천광역시 중구 선린동 38-1
제작시기 1908년
2006년 4월 14일 지정

공화춘(共和春)은 인천광역시 중구 북성동주민센터 옆에 소재했던 차이나타운중화요리 가게이다. 현재는 영업하지 않으며, 사용되던 건물만 남아있다.

목차

[편집] 공화춘의 시작

1883년 인천의 개항과 더불어 형성된 청나라 조계지에는 청나라 관원, 상인, 노동자들이 넘쳤다. 그리고 이들을 상대로 한 숙박업과 요식업이 급속히 발전하였다.

1905년 22세의 청나라 청년인 우희광이 청나라 조계지에 음식점과 호텔을 겸업하는 '산동회관(山東會館)'의 문을 연다. 그리고 1911년 신해혁명으로 1912년 2월 청나라 황제 선통제가 폐위되고, '중화민국'이 건립되는데, 우희광은 이를 기념하여 산동회관을 공화춘으로 개명하는데 '공화춘'은 공화국 원년(元年, 1912년)의 봄(春)이라는 뜻 이었다.

[편집] 공화춘의 영업중단

공화춘은 1984년 문을 닫았으며, 당시 사용되던 건물(인천시 중구 북성동사무소 옆 소재)은 2007년 인천광역시 중구의 지역특구 개발정책에 따라 조만간 '자장면 박물관'으로 증개축(리노베이션)될 계획이다.

[편집] 공화춘의 상표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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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으로 자장면의 시초로 여겨지는 까닭에 현재 여러 사업자들이 공화춘을 상표등록하여 음식점을 운영하거나, 중화요리 관련 식제품을 내놓고 있다.

현지 화교들의 말에 의하면 자장면의 시조는 공화춘도 아니고, 현재 공화춘을 상표로 쓰는 사업자들은 원조 공화춘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고 한다. 그러나, 대중적인 인식에 기인하여 상표로써의 공화춘의 가치는 상당한 것으로 여겨진다.

[편집] 같이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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