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드 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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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드 비치 전투
(노르망디 상륙의 일부)
골드 비치에 상륙하는 영 50 군단
골드 비치에 상륙하는 영 50 군단
날짜 1944년 6월 6일
장소 북프랑스 노르망디 해안
결과 연합군의 승리
교전국
영국 영국 나치 독일 나치 독일
지휘관
영국 더글라스 A. 그레햄 나치 독일 디트리히 크라이스

나치 독일 윌헴 리히터



골드 비치(Gold Beach)는 1944년 6월 6일 연합국의 노르망디 상륙 작전의 두 번째 공격이다. 이 해변은 오마하 해변의 미군의 부담을 덜기 위해 지정된 지역으로 영 연방군이 이 곳에 상륙하기로 되어 있었다. 영국군 50보병사단이 참전한 이 해변 상륙의 주요 목표는 아르망슈라리에베르였다. 연합군은 7시 30분에 상륙을 시작해 자정이 될 때까지 해변 교두보를 확보하는 데 성공하였고, 이 전투에서 마이어 소장이 사망한다.

연합군의 공격[편집]

상륙과 공격[편집]

영국군은 7시 30분, 즉 오마하 해변에서의 전투가 개시된 직후 전투를 시작했다. 영국군 역시 미군과 마찬가지로 극심한 풍랑에 의해 고생을 겪었다. 전투에 참여한 영국군은 50보병사단의 251여단, 56여단, 69여단, 151여단, 영47해변특공대 등이었다. 전폭기들이 폭격을 시작한 이후 HMS 아이아스HMD 아르고너트가 로켓포를 발사하며 장사정포 진지를 공격했다. 영국군은 사전 공격이 끝난 후 해안으로 상륙을 개시했다. 기갑여단 2개는 해안에서 약 4.5km 떨어진 곳에 전차를 배치하라는 명령을 무시했다. 셔우드 레인저 기갑부대는 해안에서 900m 떨어진 곳에 전차를 배치했지만, 그들 또한 셔먼 전차 8대를 잃었다. 제4근위용기병연대와 제7근위용기병연대는 해안과 더욱 가까운 곳에 상륙할 수 있었고 이들은 이 덕분에 셔우드 레인저 기갑부대보다 더 적게 전차를 손실했다. 한편 영국 햄프셔 소속의 1대대가 르아멜의 동쪽으로 상륙하는 데 성공했다. 사단장과 몇몇 장교를 잃은 이들은 제2데번스보병연대의 지원을 받으며 전투를 이어갔다. 그린 하워드 보병연대 제 6대대 소속의 제69여단도 몽플뢰리로 진격하며 독일군의 항복을 받아냈다. 가장 치열한 전투를 벌인 대대는 이스트요크셔연대 소속의 제 5대대로, 이들은 라리비에르에서 콘크리트 방어진지 공격에서 엄청난 전차를 잃었다. 이 진지는 아브레 전차의 도움으로 간신히 격파되었다. 라리비에르 시가지에서도 수색작업을 하느라 영국군은 시간을 더 소비했는데 크로커다일 전차와 웨스트민스터 용기병부대의 도움으로 이들은 지뢰밭을 제거하며 시가지를 확보했다.

내륙으로의 진격[편집]

영국군은 상륙에 성공하자 세 도시를 향해 진격했다. 바이외, 몽플뢰리, 아로망슈가 그곳이었다. 그린 하워드 연대는 몽플뢰리를 향해 신속하게 진격하는 한편, 크레퐁 마을에서 독일군을 신속하게 진압했다. 중앙의 영국군도 바장빌을 탈환하기 위해 애썼는데 그곳에서 독일군 제352사단과 접전을 벌였다. 이 전투에서 마이어 중령이 사망했고, 독일군 사단도 거의 전멸했다. 에식스 연대와 셔우드 레인저 기갑부대도 신속하게 진격함으로써, 바이외 외곽에 이르렀다. 그러나 이들은 바이외의 방비가 허술함에도 불구하고 진격하지 않았는데, 그 이유는 연대장이 바이외로의 진입을 거절했기 때문이었다. 대부분의 영국군은 연합군이 설정한 한계선 근처까지 가는 것에 성공했다. 일부 영국군은 오마하 해변 동쪽에 위치한 롱그로 진격하며 포르앙베셍 일대를 공격하려고 하였다.

독일군의 반격[편집]

출처[편집]

  • Buckingham, William F. (2004). D-Day: The First 72 Hours. Tempus Publishing
  • Antony Beevor (2011). D-Day THE BATTLE FOR NORMAND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