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젠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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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젠카 (呉善花)
출생 1956년
대한민국 대한민국 제주도 남제주군 성산면[1]
직업 교육자, 사회운동가, 작가, 언론인, 소설가
국적 일본 일본
학력 일본 도쿄 외국어대학 대학원 영문학석사과정 수료
장르 언론, 소설, 문학, 시사평론

고젠카(일본어: 呉善花, 1956년 ~ )는 일본의 작가이자 평론가, 언론인, 교육자, 영문학자이며, 제주도 출신이다. 일제 강점기 식민통치를 부정하는 칼럼 활동으로 논란이 되었으며, 1994년 정식으로 일본에 귀화하였다. 그녀는 대구대학교를 졸업했다고 주장하지만 대구대학교 졸업은 거짓으로 확인되었다. 이후 다이토 문화 대학교 영어과에 편입학하여 졸업하였다.

1994년부터는 일본의 언론과 방송에 칼럼 기고 활동 및 방송 패널 등으로 활동하기 시작했으며, 다이토 문화대학의 영어학과를 졸업한 이후 도쿄 외국어대학 석사과정을 수료했으며 대학 강사와 교수로 활동하다 2004년 이후 도쿄 도 분쿄 구에 있는 다쿠쇼쿠 대학(拓殖大學)의 국제 개발 학부 교수로 재직 중이다. 1994년일본으로 귀화한 것으로 알려졌다. 본명은 오승일(吳勝一)이고, 나중에 개명한 이름은 오선화이나 일본 귀화 이후 대한민국에서는 오선화 대신 일본식 명칭인 고젠카로 부르고 있다.

목차

[편집] 생애

[편집] 생애 초반

고젠카는 1956년 제주도 남제주군 성산면[1](현 서귀포시 성산읍[2])에서 태어났으며 본명은 오승일 이었다가 뒤에 오선화로 개명했다. 유년기는 알려지지 않았으며, 고등학교 졸업 후 1978년 대구의 한 전문대학의 임상병리과로 진학했다가 1980년 2월 졸업하였다.[3]

이후 대구대학교에 편입학하여 졸업한 것으로 알려져 왔으나, 대구대학교에 MBC PC수첩 등이 의뢰, 확인한 결과 오선화 또는 오승일 이라는 이름의 졸업생은 대구의 모 전문대학 졸업생 명부에는 있었으나, 대구대학교 졸업생 명단에는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후 대구에서 체류하다 입대, 여군에서 4년간 복무했다.[1]

[편집] 문필 활동과 도일

1980년 이후 언론, 칼럼 기고활동을 하였으며, 1990년 이후에 대한민국에 컴퓨터 가 보급되면서 PC통신에도 글을 발표하거나, 그의 글이 소개되었다. 그러나 그의 글 중 대한민국의 광적인 애국심을 비난하는 글을 기고했다가, 문제시되어 심한 비판을 받았다. 또한 일제 강점기를 부정하거나, 일본에 대한 맹목적인 적대감과 반일주의는 옳지 못하다, 한국인의 겉과 속이 다른 이중적인 태도를 비판하는 내용의 글을 쓰거나, PC통신에 알려지면서 심한 비판을 받고, 협박과 폭언에 가까운 모욕을 당하기도 했다.

일설에는 1983년에 일본으로 건너가 우에노에 있는 한국 클럽 ‘뉴태양’에서 호스티스 생활을 시작했다 한다. 그러던 중 일본인 남성 기요츠카 마고토를 만나 5년간 동거한다. 한국어 학원을 운영하던 마고토는 “오씨가 영리해 자신의 비서로 일하게 했으며, 이후 동거까지 하게 되었다”는 증언도 있으나 진위여부 확인은 불확실하다. 1993년 이전에 일본으로 건너갔으며, 귀화 시점은 1994년 혹은 1998년으로 추정된다.

1994년경부터 일본의 언론에 칼럼과 논설을 기고하였으며, 도쿄 외국어대학 영문학과를 졸업한 후, 대학 영문학 강사와 교수로 활동하였다. 1995년경까지 그의 글이 일부 한국의 인터넷 게시판에 소개되기는 하였으나, 반일감정과 민족주의적 정서를 조장한다는 이유로 금지되거나, 소개되지 않게 되었다.

[편집] 교육, 칼럼 활동

1994년 일본에서 칼럼, 집필, 기고활동과 방송 출연 등을 시작하였으며, 일본에서 그는 다이토 문화대학 영문학과에 편입학한 뒤 졸업하였다. 이후 도쿄 외국어대학 대학원에 진학, 영문학 석사 과정을 밟았으나 중퇴하였다.

이후 칼럼, 기고, 방송 언론 활동을 하였으며, 한국의 국수주의, 광적인 쇼비니즘, 한국 남성들의 가부장적이고 권위주의적인 행동, 일제 강점기에 대한 한국인들의 피해 의식 등을 비판했고, 이 내용의 일부가 대한민국에 알려지거나 번역되면서 논란과 맹비난의 대상이 되었다.

일본에 체류하며 여러 대학의 강사로 활동하다 니가타 산업대학(新潟産業大學) 비상근 강사로 채용되고, 이어 다쿠쇼쿠 대학 국제개발학부 교수가 되었다.

[편집] 2000년대 이후

2000년 다쿠쇼쿠 대학 국제개발학부 교수에 재임용되고, 2000년 4월 다쿠쇼쿠대학교 일본문화연구소 객원교수가 되었으며, 한일문화협회 이사로도 선출되었다. 한편 그는 일본으로의 귀화 사실을 숨겨오다가 2006년 귀화 사실을 고백했다. MBC PD수첩은 지난해 “오씨가 지난 98년 일본으로 귀화했으나 주변에 이를 숨겨오다 2006년 6월에야 월간지 ‘쇼쿤’(諸君)에 귀화사실을 밝혔다.[4]”고 방송한 바 있다.[4]

[편집] 출입국 금지 파동

2007년 9월 제주도에 살던 어머니가 사망하자, 10월 1일 오전 자신의 어머니 장례식 참석에 참석하기 위해 제주공항에 도착했다. 하지만 제주공항에서 입국을 거부당했다.[1] 제주국제공항에 내렸으나, 입국을 추진하였으나 그녀의 한국 방문 소식을 접한 정부의 입국금지 조치에 따라 제주공항에서 출입거부 조치 당했다. 10월 1일 낮 12시 20분 도착 도쿄∼제주 항공편으로 제주국제공항을 통해 입국하려 했으나 출입국 심사 과정에서 대한민국의 입국금지조치 대상자로 지정됐다는 이유로 일시적으로 입국을 거부당했다.[5]

그녀는 입국을 허용해 줄 것을 요청했으나, 대한민국 정부는 거절했고, 이는 일본미국에 실시간으로 알려지면서 인권 침해, 표현의 자유 침해 논란이 불거졌다.[6] 그러나 고젠카가 일본 국적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제주총영사관에 의뢰해 대한민국과 교섭해 겨우 ‘인도적 배려’차원에서 ‘귀국’을 인정받았다. 이 과정에서 일본으로 되돌아갔다가 오후에 다시 제주국제공항으로 오는 등 수시간 동안 공항에서 묶여 있던 것으로 알려졌다.[1] 제주출입국관리사무소 관계자는 "그분이 부모님 상(喪)을 당해 지난 1일 제주공항에 입국하려 했었지만 입국을 거부한 적이 있다"며 "하지만 오후 다시 입국심사를 통해 귀국을 허용했다"고 밝혔다.[1]

뒤에 일본 정부 측의 요청으로 일시 입국을 허용되었다. 일본 국적인 고젠카는 제주도에 있는 재제주 일본 총영사관 등에 협조를 요청, ‘인도적 배려’라는 명목으로 입국 허가를 받은 뒤 장례식에 참석후 지난 4일 오후 일본으로 출국했다.[5]

일본의 대표적인 보수언론 산케이신문은 2007년 10월 9일자로 "한국인 여성 평론가 오선화씨가 어머니의 장례식에 참석하기 위해 제주도에 ‘귀국’하려했으나 제주국제공항에서 입국을 거부 당했다"고 보도했다.[1] 구로다 서울지국장 역시 같은 내용으로 보도하였다.[4] 산케이신문은 "일본에서의 '반한국적인 활동'을 한 이유로 한국 당국으로부터 입국 금지 조치가 내려진것 같다"며 "오씨가 오씨가 일본 국적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제주총영사관에 의뢰해 한국과 교섭해 겨우 '인도적 배려' 차원에서 '귀국'을 인정받았다"고 덧붙였다.[1]

이 사건 이후 그는 '한국의 입국금지 대상자 명단에 올라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7]

[편집] 학력 및 경력

[편집] 논란과 의혹

[편집] 학력 및 귀화 연도에 대한 의문점

고젠카는 제주도에서 태어난 것으로 알려졌으며, 생애 초기에 대한 자료는 알려지지 않고 있다. 다만 대한민국의 방송사 MBC2006년 8월 15일에 방영한 《PD 수첩》에 따르면 고젠카는 그녀의 주장과는 달리 대구대학교를 졸업하지 않았으며 1991년 6월 11일에 일본 국적을 취득, 1998년 10월 29일대한민국 국적을 상실했다. 이 때문에 그녀는 대한민국에 입국할 때 입국 심사관에게 자신의 한국어 이름인 오선화 대신 "고젠카(ごぜんか)"라는 자신의 일본어 이름을 쓰고 입국한다고 한다.

방영된 내용[8]에 따르면, 대구대학교의 입학생 명단과 졸업생 명단, 편입생 명단 어디에서도 오선화나 그녀의 본명으로 알려진 오승일(吳勝一)이라는 이름을 찾을 수 없으며 일설에는 일본으로 귀화한 이후에도 일본에서 한국인의 이름으로 혐한 및 친일 성향의 발언을 하는 것이 경제적인 이득을 얻기 때문에 여전히 귀화 사실을 숨기고 있다고 한다.

경향신문의 취재 결과에 따르면, 고젠카는 대구대학교가 아닌 1978년 대구의 한 전문대학 임상병리과에 입학하여 1980년 2월에 대학을 졸업한 것으로 확인되었다. 당시에는 본명인 오승일을 사용하였다.[9] 그는 1983년 일본 귀화 후, 일본 도쿄에 있는 다이토 문화 대학교(大東文和大學) 영문학과를 졸업하고, 일본 내에서 언론 투고, 칼럼 활동을 하였다.

고젠카는 일본에 처음 갔을 때 호스티스로 일했다는 의혹이 있는데, 이는 고젠카와 동거했던 일본인이 PD 수첩에 출연해 증언했다고 하나 사실여부를 확인하기는 어렵다. 현재 그녀는 대한민국에서는 입국금지된 상태이다.

[편집] 남성 비판 논란

그는 강연과 칼럼에서 한국 남자들의 가부장적인 사고방식과 권위주의를 비판하기도 했다. 2006년 7월에는 일본의 시사잡지 월간 분게이춘주(文藝春秋) 7월호에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한국남성 비판론을 기고했다.[7] 한 강연에서 그는 '한국 남성은 연애할 때는 온갖 미사여구를 다 써가며 여자를 유혹하지만, 결혼 후에는 바람기와 폭력, 남아선호사상, 고부 간 갈등 등을 통해 여성을 견딜 수 없이 괴롭힌다는 것 등[10]'의 주장을 하여 논란이 되기도 했다.

[편집] 여성 비판 논란

한국 여성들에 대한 비판도 하였다. 저서 《치맛바람(スカートの風)》등을 통해 한국 여성의 치맛바람 등을 비판[11]하였고, '한국에서는 여자 셋이 모이면 접시에 구멍이 난다[1]' 하여 한국 여성의 성향을 일부 비판하기도 했다.

[편집] 한국의 반일 감정 비판

한국의 반일 감정의 문제점을 지적한 바 있다. 창씨개명 논란에 관해 그는 '창씨개명은 하고 싶은 사람만 한 것이지 강제적인 것이 아니었[12]'다고 비판하였다.

2007년 일본에서의 한 강연에서는 한국의 반일 감정을 비판 "한반도 태풍은 일본이 다 막아준다. 한반도에서 보면 고마운 일이다[1]"고 주장하였고, 독도 영유권 논쟁 당시에는 "욘사마나 쫓아다니는 기품없는 사람들이니 독도 문제나 역사교과서 문제에 대해 제대로 발언하지 못하는 것이다[1]"라고 한국을 비판했다.

그러나 대한민국을 비판하는 과정에서 일부 터무늬없는 주장도 제기되어 비판을 야기했다. '한국 남대문주위에는 쓰레기 만 있으며 북한은 위험하니 일본의 선제 공격도 생각해봐야한다[12]'는 주장을 하여 논란이 되기도 했던 것이다.

[편집] 입국금지 논란

2007년 10월 제주도에 살던 어머니가 사망하자, 그녀는 입국을 추진하였으나 제주공항에서 입국금지당했다. 이때 일본 내에서는 인권 침해라는 비판이 나왔고, 일본외무성은 고젠카의 입국을 허용할 것을 한국정부측에 전달했으나 한국 정부에서는 거절하였다.

친일파를 옹호한 강연과 칼럼, 인터뷰, 그리고 친일파를 위한 변명 이라는 책을 출간한 것에 대한 비판이 있다. 또한 그의 저서 《추한 한국인》은 일본 내에서는 베스트셀러였지만 한국 내에서는 반감을 조장한 측면도 존재한다. 한편 고젠카에 대한 입국금지에 대해 한국 측에서는 고젠카에 대한 입국금지는 정당하다는 의견과 표현의 자유, 사상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부정적인 시각이 양립하고 있다.

[편집] 비판

고젠카는 저서 《치맛바람(スカートの風)》등을 통해 한국 여성의 치맛바람 등을 비판했는데, 일각에서는 그가 이런 책을 통해 왜곡되고 추한 한국인상을 부각시키는 데 힘을 기울이고 있다[11] 는 비판이 있다. ‘일본 우익의 앞잡이[7] ’라는 비판도 있다.

그는 과거사와 관련한 일본 우익의 심정을 그대로 대변해 일본에서 각광을 받고 있기도 하다. 이 때문에 재일동포와 유학생들 사이에서는 ‘일본 우익의 애완견’이라는 비난을 받고 있다.[7]

《치맛바람》이란 책에서 제기한 '한국에서는 여자 셋이 모이면 접시에 구멍이 난다[1]' 는 등 한국 여성들에 대한 비판도 문제시 됐다. 저서 《한일합방의 길》은 일본의 조선통치를 정당화[1]하여 문제가 되었다.

한국을 비하하는 내용의 저술로 끊임없는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4] 고젠카에 대한 비판은 주로 애국심과 민족주의, 한국 사람의 단점을 비판한 것에 대한 반작용, 감정적인 비판의 성향이 강하여 객관적인 평가는 현재로서는 어렵다.

[편집] 저서

1990년 이후 몇권의 저서와 논문을 발표했으나, 대한민국 내에서는 반입 및 출판금지된 내용이 대부분이며, 한국내에서 출판한 몇 권도 절판된 상태이다.

  • 《추한 한국인》
  • 《치맛바람》(スカートの風)
  • 《반일 한국에 미래는 없다》
  • 한국인이 보았던 북한 (2003년)
  • 한국 병합에의 길 (2000년)
  • 생활자의 일본 통치 시대 (2000년)
  • 양이의 한국·개국의 일본 (1996년)

[편집] 가족

[편집] 관련항목

[편집] 바깥 고리

[편집] 주석

  1. 친일파 오선화씨 고향 제주 입국거부 '소동'. 제주의 소리 (2007년 10월 10일). 2007년 10월 10일에 확인.
  2. 남제주군은 2006년 서귀포시에 흡수되었다.
  3. 이때까지는 오승일이라는 이름을 사용했다.
  4. 친일저술가 오선화 제주도 입국거부 논란. 나우뉴스 (2007년 10월 10일). 2007년 10월 10일에 확인.
  5. ‘오선화 소동’:일본서 한국 폄하 활동 공항서 한때 입국 거부. 제주일보 (2007년 10월 12일). 2007년 10월 12일에 확인.
  6. 2007년의 오선화 입국 금지 조치는, 신문과 방송, 인터넷 등을 통해 일본과 미국 내 반한(反韓) 단체들의 대한민국 비판, 규탄의 주된 재료가 되었다.
  7. 오선화씨, 日 귀화 이후 노골적 친일행각. 한국일보 (2007년 10월 10일). 2007년 10월 10일에 확인.
  8. MBC PD 수첩 690회 신(新) 친일파의 정체를 밝힌다 (2006년 8월 15일 방영)
  9. 희대의 사기꾼 ‘오선화 불똥’에 대구대 전전긍긍. 경향신문 (2006년 8월 18일). 2010년 6월 22일에 확인.
  10. http://news.hankooki.com/lpage/opinion/200609/h2006091818101724720.htm
  11. 예, 우린 '조센징' 입니다 [2000.08.03 제319호]. 《한겨레21》. 한겨레신문사 (2000년 8월 3일). 2009년 6월 22일에 확인.
  12. 일본과 세여자,이희자, 가오진 쑤메이,오선화. 마이데일리 (2006년 8월 21일). 2006년 8월 21일에 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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