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유섭
고유섭 高裕燮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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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정보 | |
출생 | 1905년 2월 2일 대한제국 경기도 인천부 |
사망 | 1944년 6월 25일 일제강점기 경기도 인천부 | (39세)
국적 | 대한제국 |
직업 | 동양 미술사 학자 |
학력 | 경성제국대학교 철학과 학사 |
필명 | 호(號)는 우현(又玄) |
활동기간 | 1929년 ~ 1944년 |
장르 | 동양미술사학 저술 |
웹사이트 | 공식 웹 사이트 |
고유섭(高裕燮, 1905년 2월 2일 ~ 1944년 6월 25일[1])은 일제강점기의 미술 사학자로, 호는 우현(又玄)이며 인천 출생이다. 고유섭은 미술사에 있어서 일찍이 유물 유적의 탐구의 중요성을 깨닫고 고적답사로 한국의 사찰 및 탑파를 찾아 연구하였고, 그곳에서 우리의 전통성을 찾으려고 하였다.[2]
인천부 부내면 용리(현재의 인천광역시 중구 용동) 출신이다.1925년 보성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였으며, 1927년에 경성제국대학 법문학부 철학과에 입학하여 미학·미술사를 전공했으며, 1930년에 졸업했다. 이후 경성제국대학 미학연구실의 조수(현재의 조교)로 근무하면서 국내의 중요한 고대 미술품의 조사와 연구에 힘썼다.
생애[편집]
1933년 3월부터 10여 년간 개성부립박물관 관장을 지냈다. 주요 논문은 대부분 이 시기에 발표되었으며, 이 때 그의 미술사 연구의 초점의 하나는 전국에 분포하고 있는 석탑이었다. 삼국 중 백제와 신라, 통일신라 때의 석탑들을 양식론에 입각하여 체계화하였다. 이 연구의 결과물이 《한국탑파(韓國塔婆)의 연구》이다.
또한 1934년에 조직된 역사 연구회인 진단학회의 발기인 가운데 하나로 참여하기도 했다.
1936년에 연희전문과 이화여전 교수를 역임했다. 주요 저서로는 《조선 탑파의 연구》, 《조선 미술사 논총》, 《한국 미술사급 미술 논고》, 《송도 고적》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