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산사 석조아미타여래입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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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감산사석조아미타여래입상
(慶州甘山寺石造阿彌陀如來立像)
대한민국의 국보
지정번호 국보 제82호
(1962년 12월 20일 지정)
소재지 서울특별시 용산구 서빙고로 135번지
국립중앙박물관
제작시기 통일신라시대, 719년

경주 감산사 석조아미타여래입상(慶州甘山寺石造阿彌陀如來立像)은 경상북도 월성군 내동면 신계리(현재 경주시)에 있는 감산사 절터에서 석조미륵보살입상(국보 제81호)과 함께 발견된 불상이다. 1916년국립중앙박물관으로 이전되어 불교조각실에 진열되어 있다. 현재 전답지로 변해버린 절터에는 삼층석탑과 작은 불당 2채만 남아 있다.

목차

[편집] 기록

이 불상의 광배 뒷면에는 같은 절에서 출토된 미륵보살상과 유사한 내용으로 되어 있는 21행 391자의 명문이 새겨져 있어 불상의 확실한 조성연대를 알려준다. 명문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약부지도자 불생불멸 유표적어주소능인자 약거약래 상류형어한몽람상 조자서역전등 급지동토수내불일지영 엄일역이조임 패엽지문 월패천이계발 용궁착치 안탑병라 사위지경 재사극락지방 밀이유중아찬김지전 탄영하악 강덕성신 성협운하 정우산수온현재이명대회지략 이좌시조봉궐이함륜칙 수상사봉어 준계림이예수칙 임집사시랑 연육십칠현차치사 피세한거 모사호지고 상사영양성동 양소지견기 앙모무착진종시 시독유가지론 겸애장주현도 일일람소요지편 이위보덕자친 막여십호지력 수은성주 무과삼보지인 고봉위국주대왕 이찬개원공 망고·망비·망제·소사량성·사문현도·망처고로리·망매고보리·우위처아호리등 사기감산장전 건차가람 잉조석아미타상일구 복원탁차 미인초승피안 사생육도병증보제개원칠년세재기미이월십오일 내마총찬봉교 사문석경융·대사금취원□□□망고인장일길찬 연십칠고인성지 동해흔지변산야 후대추애인자 차선조재재김지전중아찬 경생이전차선업조 세□십구경신년사월입이일장서 위□지[1]

이 명문에 의하면, 김지성은 임금을 받드는 상사와 집사성의 시중이란 중임을 역임한 후 67세에 벼슬을 버리고 한적한 곳에 살면서 무착의 유가론을 탐독하고 《장자》의 소요편을 읽어 부모와 임금의 사혜를 보답하기 위해서 미륵보살상과 함께 이 아미타여래상을 조성하고 절에 안치했다고 한다. 더욱이 명문의 끝 부분에 성덕왕 19년(720)에 김지성이 세상을 떠나자 아미타상을 만들었다고 하는 내용이 있는 것으로 보아 김지성이 719년에 어머니를 위하여 미륵보살을 조성하고 아버지를 위하여 아미타여래상을 조성하고자 했으나 완성하지 못하고 그 이듬해에 김지성이 돌아가자 그의 명복을 빌기 위해서 720년 이후에 이 상을 만들었음을 알 수 있다. 《삼국유사》권제3 탑상 제4 남월산조에도 이와 비슷한 내용이 간략하게 기록되어 있는데 돌아가신 아버지 인장일길간을 위해서 아미타상 1구를 조성했다고 되어 있다.

[편집] 특징

감산사 석조아미타불상 역시 등신대 크기의 불상으로 광배와 대좌를 갖추고 있는 완전한 형태를 하고 있다. 나발이 표현된 머리 위에는 커다란 육계가 얹혀 있으며 얼굴은 풍만한 편으로 눈ㆍ코ㆍ입의 표현이 뚜렷하여 근엄한 표정이다. 넓고 당당한 어깨와 가슴 위로는 통견의 법의가 몸에 밀착되게 입혀져 신체의 윤곽이 그대로 드러나면서 볼륨감을 강조하였다. 법의는 목부분에서 한번 뒤집혀진 옷깃과 함께 가슴 앞에서 U자형의 옷 주름이 자연스럽게 흘러내리다가 양쪽 다리 위로 나누어지면서 각각 U자형의 옷 주름이 늘어져 발목 위에까지 내려와 있다. 특히 두 다리 위에 밀착된 옷 주름은 다리의 양감을 강조하면서 주름과 주름 사이의 간격에 변화를 주어 훨씬 사실적으로 표현된 것이 특징이다.

이와 같이 특이한 옷주름의 표현방식은 우진왕(優塡王; Udyana) 계통의 불상에서 많이 볼 수 있는 것으로 석가의 불전 중에 보이는 '우진왕사모상(優塡王思慕像)'이라는 인도에서 최초로 조성된 불상과 관련되어 있다. 즉, 석가가 어머니 마야 부인에게 설법하기 위해 도리천에 올라갔을 때 교상미국(憍賞彌國; Kausambi)의 우진왕이 부처가 잠시나마 지상에 계시지 않음을 섭섭하게 생각하여 전단의 향목으로 5척의 여래상을 만들어 공양했다고 하는 데에서 유래된 것이다. 인도의 우진왕식 착의법은 일본 경도 청량사에 있는 단목의 석가상에서 볼 수 있는데 이 상은 일본 승려인 조연이 985년에 중국 송나라에서 인도 우진왕이 만들었다는 불상을 그대로 모각하여 가져온 것으로 전해진다. 이러한 우진왕식 착의법은 인도의 또다른 불상형식인 아육왕(阿育王; Asoka)식 착의법과 함께 8세기 이후의 통일신라시대 불상에서 크게 유행했던 옷주름 형식이다.

오른손은 위로 올려 손바닥을 밖으로 향하게 하여 엄지와 둘째손가락을 맞대고 있으며 왼손은 아래로 늘어뜨려 역시 손가락을 약간 구부리고 있다. 이러한 수인은 아미타정인 중 상품하생인에 가까운 것으로 보이므로 명문에 기록된 대로 이 불상은 아미타불상의 특징을 보여준다. 아미타불은 서방 극락세계에 살면서 중생을 위해 자비를 베푸는 부처로서 《무량수경》과《觀無量壽經》 등에 의하면, 최상의 깨달음을 얻으려는 뜻을 가지고 살아 있는 모든 중생들을 구제하고자 48대원을 세웠다고 한다. 이 아미타불은 대승불교에서 가장 중요한 부처로서 정토신앙의 발달과 함께 중국한국일본 등에서 일찍부터 유행하여 많이 조성되었다.

광배는 몸 전체를 감싸고 있는 주형의 거신광배로 세 줄의 선으로 두광과 신광을 표현하고 그 사이에 여러 가지 화문을 장식하였으며 가장자리에는 화염문으로 마무리하였다. 대좌 역시 안상이 음각된 팔각대석 위에 앙련과 복련으로 구성된 연화대좌를 올려 놓았는데 앙련과 복련의 표현방식에 다소 차이가 있다.

이 감산사 석조아미타불상은 당당하고 위엄있는 모습에 이상화된 신체 비례와 양감이 강조된 신체표현, 사실적인 옷 주름 표현 등에서 8세기 전반의 통일신라시대 불상양식을 보여줄 뿐 아니라 명문에 의해 조성연대와 발원자를 분명히 알 수 있다는 점에서 통일신라시대 불교조각 연구에 중요한 자료라고 할 수 있다.

[편집] 주석

  1. 若若夫至道者 不生不滅 猶表跡於周宵能仁者 若去若來 尙流形於漢夢濫觴 肇自西域傳燈 及至東土遂乃佛日之影 奄日域以照臨 貝葉之文 越浿川而啓發 龍宮錯峙 鴈塔騈羅 舍衛之境 在斯極樂之邦 密爾有重阿湌金志全 誕靈河岳 降德星辰 性叶雲霞 情友山水蘊賢材而命代懷智略 以佐時朝鳳闕而銜綸則 授尙舍奉御 逡鷄林而曳綬則 任執事侍郞 年六十七懸車致仕 避世閑居 侔四皓之高 尙辭榮養性同 兩踈之見機 仰慕無著眞宗時 時讀瑜伽之論 兼愛莊周玄道 日日覽逍遙之篇 以爲報德慈親 莫如十號之力 酬恩聖主 無過三寶之因 故奉爲國主大王 伊湌愷元公 亡考․亡妣․亡弟․小舍梁誠․沙門玄度․亡妻古路里․亡妹古寶里․又爲妻阿好里等 捨其甘山莊田 建此伽藍 仍造石阿彌舵像一軀 伏願託此 微因超昇彼岸 四生六道並證菩提開元七年歲在己未二月十五日 奈麻聰撰奉敎 沙門釋京融∙大舍金驟源□□□亡考仁章一吉湌 年卌七古人成之 東海欣支邊散也 後代追愛人者 此善助在哉金志全重阿湌 敬生已前此善業造 歲□十九庚申年四月卄二日長逝 爲□之

[편집] 함께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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