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인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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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인선
Gyeongin-Line KORAIL.PNG
정보
종류 광역 철도
운행 국가 대한민국 대한민국
상태 영업 중
기점 구로역
(서울특별시 구로구)
종점 인천역
(인천광역시 중구)
역 수 21
운영
개통일 최초 개통 : 1899년 9월 18일
수도권 전철 운행 개시 : 1974년 8월 15일
소유자 한국철도시설공단
운영자 한국철도공사
시설
영업 거리 27.0 km
궤간 1,435 mm
선로 수 4(구로 - 동인천)
2(동인천 - 인천)
전철화 가공전차선
교류 25,000 V
신호 방식 ATS
경인선(구로역-인천역)
BSicon .svg STR STR
경부선(서울역 방면)
BSicon .svg SBHF STR
0.0 구로
BSicon .svg STR STRlf
BSicon .svg KRWgl+l STRq
경부선(수원역 방면)
AKRZ-AUKo
국도 제1호선(서부간선도로)
1.4 구일, 안양천
SHST
2.4 개봉
AKRZ-AUKu
남부순환도로
SBHF
3.7 오류동
eABZlf
경기화학선
SBRÜCKE
국도 제46호선(경인로)
SHST
5.6 온수(7호선 환승)
eGRENZE
서울시/경기도 부천시
SHST
6.9 역곡
SHST
8.4 소사
SBHF
9.5 부천
SBRÜCKE
국도 제39호선(신흥로)
eABZrf
김포선(김포역 방면)
SHST
11.2 중동
SHST
12.2 송내
AKRZu
서울외곽순환고속도로
eGRENZE
경기도 부천시/인천광역시
SHST
13.4 부개
SBHF
14.9 부평(인천1호선 환승)
SHST
16.6 백운
SHST
18.1 동암
SHST
19.3 간석
SBHF
20.5 주안
AKRZu
경인고속도로
SHST
21.5 도화
eABZlf
주인선
SBHF
22.5 제물포
SHST
23.9 도원
SHST
25.1 동인천
STR+4 STR BSicon .svg
KRWg+l KRWgr BSicon .svg
인천항방면
DST KSBHFe BSicon .svg
27.0 인천
  • S표시는 수도권 광역전철을 뜻함

(독일, 스위스, 오스트리아의 S-Bahn과 기능이 유사함)


경인선(京仁線)은 서울특별시 구로구구로역인천광역시 중구인천역을 잇는 총 연장 27km의 철도 노선으로, 대한민국에서 현존하는 철도 중 최초로 만들어진 철도이다. 대한제국인천항과 가까워 많이 이용되었고, 1974년 8월 15일부터 수도권 전철 영업을 시작하여 비둘기호 운행을 중지하고 현재 통근형 전동차만 운행하고 있다. 경원선 용산역 - 광운대역 구간과 함께 철저히 도시철도화되고 있는 노선이기도 하다.

운영[편집]

수도권 전철 운행 개시[편집]

1974년 8월 15일 지하철 서울역에서 지하 청량리역까지 건설된 서울 지하철 1호선과 연계된 통근형 전동차가 운행되기 시작했다[1][2]. 수도권 전철 개통 이후로는 일부 특별 열차를 제외하고는 KTX, 새마을호, 무궁화호 등의 일반 열차는 운행하지 않는다.

운행 구간은 현재와 동일하며 구로역에서 병점역, 서동탄역, 천안역, 신창역에서 출발한 전동차와 합류한다. 1994년에는 구로역 이후에서 빚어지는 경부선 서울 ~ 수원 구간과의 병목현상 해소를 위한 용산 ~ 구로간 2복선화 공사가 완료되었다. 현재 수도권 전철 체계 안에서 서울 서남부와 부천시, 인천광역시서울 중심부와 연결시켜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2005년 조사 결과 하루에 약 38만 명이 탑승하며 37만 명이 하차한다. 승하차 인원중 약 30만 명이 부천시 소재 역에, 약 33만 명이 인천시 소재 역에 집중되어 있다.

복복선과 경인선 급행전철[편집]

경인선은 약 340만 명 이상이 거주하는 인천광역시부천시, 서울특별시를 연결시켜주는 광역전철이므로 전철이 처리해야 할 교통량이 매우 크다. 복선만으로는 이 많은 교통량을 모두 처리할 수 없게 되자 선로용량을 확대시켜야 할 필요성이 제기되었고, 1990년대에 들어 복복선화 사업이 착수되었다. 구로역 - 부평 구간은 1991년 11월[3], 부평 - 인천 구간은 1996년 9월에 각각 착공되었다. 8년간의 공사 끝에 구로 - 부평 구간은 1999년 1월에 개통되었고, 부평 - 주안 구간은 2002년 3월에, 주안 - 동인천 구간은 2005년 12월에 각각 개통되었다. 2002년에 OD 조사에서 인천광역시 · 부천시 · 서울특별시 사이의 철도통행량은 511451로 조사되었는데[4] 이는 복복선화 작업을 하지 않았을 경우엔 처리가 불가능할 정도로 교통량이 매우 증가하였다. 한국철도시설공단의 계획에는 경인 급행선의 수인선 송도역까지의 연장이 포함되어 있다. 현재 인천역의 급행선 플랫폼은 지하에 건설중이다.

복복선 개통으로 가운데 내선에는 급행열차를 운행시키고 있는데, 이 급행열차는 동인천역용산역에서 발착하며, 경인선에서는 주안 · 동암 · 부평 · 송내 · 부천· 역곡역에 정차하고,[5] 경부선과 합류하는 구로역부터 용산역까지는 모든 역에서 정차한다.

2003년2004년 사이에 있던 전철 승차량의 이상 감소 현상으로 인해 복복선 개통이 승차량 변동에 얼마나 영향을 주었는지는 대체로 불분명하다. 그러나 급행 정차역의 승객 수 감소율이 급행 통과역의 승객 수 감소율보다 낮다는 것은, 급행열차가 도로교통으로의 통행수단 변동을 최소화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현재 용산역 3번 승강장과 동인천역 2번 승강장에서 출발한다. 열차 외부 행선안내기에는 동인천 급행, 용산 급행으로 표시된다.[6] 원래는 동인천역 대신에 주안역까지였으나, 동인천역까지 급행을 연장해 현재는 용산~동인선 구간을 왕복하고 있다.

정차역은 다음과 같다.

경원선 직통 급행전철[편집]

운용 차량[편집]

역사[편집]

경인선 개통식

경인선대한민국에 남아있는 최초의 철도로서,[9] 1897년 3월 22일미국의 철도 회사와 합작으로 공사를 시작했으나, 미국은 자금난으로 철수하고, 일본인의 손을 거쳐 1899년 9월 18일 구 제물포역-노량진역간 33킬로미터 구간이 개통되었다. 최초 개통시 노선은 현재의 노량진역에서 구 제물포역이었다. 현재의 제물포역과 개통 당시의 제물포역은 전혀 다른 역이며, 현재의 도원역 인근이다. 그러나 부천역[10]영등포역 등은 개통 당시 역 위치 그대로이다. 현재는 구로역에서 인천역까지를 경인선이라고 하고, 구로역 이북은 경부선에 편입되었다.

인천역 앞에 있는 ‘경인철도 시발지’ 빗돌

노량진역에서 한강철교 쪽으로 가다 보면 철도 시발지비가 있는데, 이 비는 지난 1999년철도청(현재 한국철도공사)이 한국철도 100주년을 기념하여 각 철도 노선 주요역에 발급한 스탬프 중 노량진역 스탬프에 새겨져 있다. 또한 도원역 역사 근처에도 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열강의 철도부설권 경쟁[편집]

조선은 늦게나마 철도건설의 필요성을 깨달았지만 당시 조정의 재정은 빈궁하여 독자적으로 철도를 부설할만한 능력이 부족했다. 수도 서울은 수백년간 한강을 통한 수운으로 물자를 수송했으나, 개화와 산업발전을 위해서는 서울을 항구과 직접 연결해주는 새로운 대량수송 수단이 필요했다. 조수간만의 차이가 큰 단점은 있지만 서울에서 가장 가까운 항구인 제물포가 1883년에 개항되면서 서울과 제물포를 잇는 경인선 철도가 구상되었다.

조선정부뿐만 아니라 미국 정부도 경인선 철도 부설에 관심이 있었으므로 1883년(고종 20년) 6월 23일 대한제국은 독변교섭통상사무 민영목을 통해서 미국에게 제물포와 한강의 수심 측량을 허가하였다. 5년 뒤인 1887년(고종 24년) 2월 9일 미국은 뉴욕 조선영사 프레이저(E. Frazar)를 통해 김윤식에게 '전등 및 철도 신설계획의 요청 공문을 보냈다. 이후 1891년 (고종 29년) 3월 고종은 이완용과 이하영을 시켜 주한미국전권공사인 기업가 제임스 모스(James R. Morse)와 '철도창설조약'을 협상하였으나 조선정부의 반대로 교섭을 연기하였다.

모스는 미국공사 앨런(Horace N. Allen)을 통해 지속적으로 경인선 부설권을 획득하기 위해 노력했으나, 일본의 방해로 뜻을 이루지 못했다. 일본정부 역시 조선의 이권획득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으나 철도부설권에 대한 직접적인 명분이 없었기 때문에 직접적으로 교섭하지는 못하였다. 하지만 청일전쟁이 발발하자 일본 외상 '무츠 무네미츠'는 '다케우치 츠나'를 특사로 파견하여 정부를 위협, 1894년 8월 '조일잠정합동조관'을 체결하여 경인선 및 경부선 철도를 부설할 것을 약정하였다. 또 이 시기에 일본은 경복궁을 습격하여 친일 내각으로 개편한 후 내각의 공무아문에 철도업무 중추기구인 철도국을 설치했다.

하지만 '청일전쟁이 장기화될 경우에 병참수송을 보조한다'는 명목으로 얻어낸 부설권이었기 때문에 일본이 일찍 승리하자 철도부설 계획은 연기되었으며, 청일전쟁 직후 러시아, 프랑스, 독일삼국간섭으로 일본이 요동반도중국에 돌려주도록 압력을 가하고 한국에서 철도의 주요 이권을 독점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이의를 제기하자 이때부터 일본의 영향력은 약화되었다. 또한 1895년 8월 명성황후 시해사건과 1896년 아관파천으로 인해 일본의 철도부설권은 유명무실해졌고 결국 아관파천 50일 만인 1896년 3월 29일 철도부설권은 미국인 제임스 모스에게 넘어갔다. 이는 철도에 대한 최초의 특허권 부여이자, 미국이 조선정부로부터 최초로 이권을 양도받은 사건이기도 하다.

미국인 모스의 부설권 획득[편집]

한국정부가 모스와 체결한 '경인철도특허조관'에는 특허일로부터 12개월 내에 기공, 그 후 3년 안에 준공하며, 이를 위반할 시 특허의 효력이 상실된다고 규정되어 있었다'

모스는 1897년 3월 22일 오전 9시 경인가도상의 우각현 (지금의 도원역 자리)에서 기공식을 거행, 공사를 시행하였다. 약 350명의 일꾼들을 모아 시작한 공사였지만, 시멘트와 폭약부족 문제, 기술적인 난제 등으로 더 이상의 진척이 어려웠다. 결국 1898년 5월 10일 모스는 공사중인 경인철도를 170만 2452원 75전 (당시 1백만 달러)으로 대륙침탈을 꿈꾸던 일본의 '경인철도합자회사'에 양도하였다.

또한 조선정부에서는 1894년 7월 갑오경장 관제공포와 더불어 내각 아래 공무아문에 철도국을 설치하고 참의 1명과 주사 2명을 임명하여 공식적으로 철도업무를 최초로 수행케 되었다. 이어서 7월 6일 농상공부 직제를 개편하여 철도국을 농상공부에 이관하고 철도사(司)를 설치하여 감독 1명과 사장 1명, 기사 2명, 주사 2명, 기수 5명 등 11명을 두어 철도업무를 전담케 하였다. 아울러 7월 21일에는 다시 농상공부의 직제를 개편하고 철도사를 철도국으로 개칭하고 세칙은 농상공부대신이 부령으로 정하도록 하였다.

조선 정부는 국유철도를 직접 설치하지 않았으며 철도의 부설권을 민간에게 부여 후, 사설철도를 관리감독하는 정부기관으로 철도국을 설립했는데, 이는 영국과 미국의 초기 철도와도 유사한 방식이다.

경인간철도규칙[편집]

다음은 한국 최초의 철도운송약관인 '경인간철도규칙'이다. 이는 1899년 9월 18일에 농상공부령으로 발령되었다.

아래 내용은 독립신문의 1899년 9월 16일자에 발표된 경인간철도규칙 전문이다.

서울과 인천 사이에 놓은 철도규칙을 다음과 같이 게재한다.

제1조 철도에 운전하는 화륜거를 타는 자는 어떤 사람이든지 먼저 표값을 내고 차표를 사서 차를 타고 차에서 내린 후에는 차표를 차주에게 내어라.
제2조 어떤 사람이든지 표값을 내지 않고 차를 타거나 자기가 가진 등급보다 고등급 차에 타고 가는 자는 그 차표에 정한 외에 찻값을 리수 원근과 등급의 어떠한 것을 물론하고 한사람에 5전씩 받는다.
제3조 돌림병을 앓은 사람은 승차를 거절한다.
제4조 미치거나 난잡한 자는 승차를 거절한다.
제5조 어떤 사람이든지 정거장과 철도소 안에 있는 각종 표지와 기계, 짐, 목침목, 담을 파손하는 자는 회사에게 적당한 배상을 해야한다.
제6조 차타는 사람의 손에 든 물건은 따로 운임을 받지 아니하며 차안에서 물건이 상하거나 차표를 잃어버리더라도 회사에서는 책임을 지지 않는다.
제7조 귀중품이나 금, 은, 그릇, 각종 표문건, 어음, 지전, 구슬, 금덩이, 모피, 상등의복, 단필, 서화 등 귀한 물건은 운송하는 비용이나 보험료를 내지 않으면 회사에서는 그 손해에 대하여 책임이 없다.
제8조 소와 말과 산짐승을 수송하는데 보험료를 내지 않으면 그 손해에 대해서 회사는 책임이 없고 만일 보험료를 낸 자라도 배상하는 돈은 말은 한 마리에 10원 안이요. 소는 한 마리에 20원 안이요. 다른 동물은 한 마리에 3원 안으로 정한다.
제9조 위험한 물건이라는 것은 화약, 폭발물, 동물과 생석회이며 석유, 초, 성냥 등 불이 나면 다른 물건을 해치는 물건은 위험물로 취급한다.
제10조 잃어버리거나 상한 물건에 대한 손해배상은 회사가 재물을 거둔 후에 혹 관리하는 동안에 회사에서 게을리 하였을 때는 배상하나 재물주인이 소홀히 하였을 때는 회사에서 책임이 없다.
제11조 물건을 철도에 부칠 때 운임을 내며 특별히 후에 내기로 약조한 정거장에 당도하여 운임을 받고 물건과 교환한다.
제12조 철도소 안에 두는 물건과 차에 실은 물건의 잃은 것과 상한 것은 물건주인의 책임이요, 철도는 화물을 차에 실은 후 내리기까지만 보호한다.
제13조 차안에 틈이 없고 차가 부족한 때에는 차객과 화물을 거절한다.
제14조 회사에서 정하는 근은 영국근이니 곧 방이라 하고 자는 영국 척이니 12촌이요, 리는 영리이니 백윤(百輪)을 일쇄(一鎖)라 하고 80쇄를 리라하며 톤은 영국근수로 2천2백40근이요, 용적은 1백립 영척으로 한다.
제15조 차객과 화물의 임자는 이상의 조목을 굳게 지키되 만일 이 규칙을 준행치 않는 자는 차타며 화물운송허가를 얻지 못한다.


광복 이후[편집]

1952년 한국 전쟁 중에 오류동역영등포역 사이에서 기관차 폭발 및 탈선 사고가 일어나 14명이 사망하고 2백여 명이 중경상을 입는 사고가 일어났다. 당시 기관차는 콘소리 39호였다.[11] 1928년부터 복선화의 계획은 있었으나,[12] 자금난과 태평양 전쟁으로 인해 무산되었다. 그 후 대한민국 정부에 의해 다시 추진되어 1963년 11월 착공, 1965년 9월 18일 복선화가 완공되었다. 이것은 대한민국이 최초로 복선화시킨 노선이며,[13] 대한민국 내의 철도 중 경부선에 이은 두 번째로 복선화가 완료된 노선이다. 1974년에 전 구간이 전철화되어 경원선 성북역(현 광운대역)과 인천역간을 통근형 전동차가 운행하기 시작했다. 서울 지하철 1호선을 통해 서울의 도심으로 바로 진입하기 때문에 서울 - 인천 간 교통에 큰 기여를 하였다. 현재는 소요산역 - 인천역으로 운행 구간이 늘어나게 되었다. 경인선 전철 지하화를 추진하자는 주장도 있으나,[14] 비용 문제, 공사 기간 중 발생할 운행 문제 때문에 실현 가능성은 낮다. 구로역에서 수원역, 천안역 방면 운행 계통으로 갈아탈 수 있으며, 추후 인천역수인선과 연결된다.

역 목록[편집]

  • 부기역명(사용료를 받고 한시적인 기간동안 걸어두는 역명)의 영문과 한자는 표기하지 않았다.
  • 굵은 글씨수도권 전철 운행 이전에 존재했던 역이다.
역 번호 역명 로마자 역명 한자 역명 급행 접속 노선 역간
거리
영업
거리
소재지
141 구로 Guro 九老 경부선 0.0 0.0 서울특별시 구로구
142 구일
(동양미래대학)
Guil 九一 1.4 1.4
143 개봉
(한영신대)
Gaebong 開峰 1.0 2.4
144 오류동 Oryu-dong 梧柳洞 1.3 3.7
145 온수
(성공회대입구)
Onsu 溫水 서울 지하철 7호선 1.9 5.6
146 역곡
(가톨릭대)
Yeokgok 驛谷 1.3 6.9 경기도 부천시
원미구
147 소사
(서울신대)
Sosa 素砂 1.5 8.4 부천시
소사구
148 부천
(부천대학교)
Bucheon 富川 1.1 9.5
149 중동 Jung-dong 中洞 1.7 11.2
150 송내 Songnae 松內 1.0 12.2
151 부개 Bugae 富開 1.2 13.4 인천광역시 부평구
152 부평
(가톨릭대인천성모병원)
Bupyeong 富平 인천 도시철도 1호선 1.5 14.9
153 백운 Baegun 白雲 1.7 16.6
154 동암 Dongam 銅岩 1.5 18.1
155 간석 Ganseok 間石 1.2 19.3 남동구
156 주안 Juan 朱安 1.2 20.5 남구
157 도화 Dohwa 道禾 1.0 21.5
158 제물포
(인천대학교 제물포캠퍼스)
Jemulpo
濟物浦 1.0 22.5
159 도원 Dowon 桃源 1.4 23.9 동구
160 동인천 Dongincheon 東仁川 1.2 25.1 중구
161 인천
(차이나타운)
Incheon 仁川 1.9 27.0

미래[편집]

인천역이 경인선과 수인선의 환승역이 되면, 경인 급행선로는 지하 인천역의 수인선 선로로 접속되므로, 전 구간이 복복선 전철화된다.

주석[편집]

  1. 최선학. "8.15특집 지하철 · 전철시대 개막", 《경향신문》, 1974년 8월 15일 작성, p. 3.
  2. 수도권 전철 1호선을 구성하는 운행 계통의 일부로서 운영된다
  3. "경인선 1997년까지 복복선 확장", 《동아일보》, 1990년 9월 30일 작성, p. 15.
  4. 서울시 교통국, 2002년 수도권 OD
  5. 평일 출근 시간대 2회 동암역과, 송내역, 역곡역을 통과하는 열차가 운행한 적이 있다.
  6. 운행 초기에는 직통열차라는 명칭이 사용되어 열차 외부의 행선 안내기에 부평역직통, 용산역직통 등으로 표시되었고 복복선이 주안까지 연장되면서 주안행에 한하여 직통열차 푯말을 끼우고 운행하기도 했다.
  7. 서울메트로 소속 열차로서 인입 선로를 통해 직결하여 운행한다.
  8. 김은신 (1995년 11월 1일). 《이것이 한국 최초》. 삼문, 269쪽
  9. 흔히 한국(대한민국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통틀어) 최초의 철도라고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는 대한민국(남한) 최초의 철도이다. 한국 최초의 철도는 평안남도 진남포에서 평양까지 55리에 이르는 협궤 철도이다.[8] 또한 여전히 현존하는 철도로서는 남북한을 통틀어 가장 오래된 철도이다.
  10. 개통 당시 이름은 소사역으로 현재의 소사역과는 다른 곳에 위치하고 있다.
  11. "사망 12, 중경상 127명 경인선열차사고후보", 《동아일보》, 1952년 9월 19일 작성, p. 2.
  12. "경인복선전제로 경용간을 삼선", 《동아일보》, 1928년 11월 23일 작성, p. 2.
  13. "경인간복선개통", 《동아일보》, 1965년 9월 18일 작성, p. 7.
  14. 배한철. "경인선 전철 지하화 추진", 《매일경제》, 2009년 10월 18일 작성.

바깥 고리[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