견 (성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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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성씨이다. (甄)씨는 중국에서 넘어온 성씨이고, (堅)씨는 고려 개국과 관련이 있다.

견(甄)씨[편집]

의 발음에는 두 가지가 있는데, 이 발음들은 중국어로는 zhēn(전)과 jiān(진)으로 불리며, 성씨로는 진에 해당하는 발음을 쓴다.[1] 한국은 견 이라는 발음이 쓰인다. 중국과 한국에서 각각 역사적인 영향에 따라 발음에 변화가 있었다. 李의 음은 리 이지만 두음법칙으로 이로 쓰는 것과 유사하다.

손견낙양에 들어서, 성의 남쪽에 주둔하였다. 견궁(甄宮) 우물 위에, 동틀 무렵 오색기운이 나타났다. 사람을 시켜 우물에 들어가게 하니, 전국옥새를 찾아서 갖게 되었는데, 甄과 그(손견)의 이름의 발음이 같았던 것을, 천명(天命)의 증거로 여겼다. 즉, 삼국시대 전까지는 발음과 사람이 떨어진 것이 없었다. 손권이 즉위하고, 손견의 시호를 황제로 추존하였다, 강좌(양쯔 강 하류 방면)의 모든 선비가 오나라를 두려워하게 만들기 위해서, 발음을 ‘진(眞)’으로 바꾸게 하였다.

孫堅入洛,屯軍城南,甄宮井上,旦有五色氣,令人入井,探得傳國璽,以甄與己名音叶,爲受命之符, 則三國以前未有音之人切者。孫權卽位,尊堅爲帝,江左諸儒爲吳諱,故攺音‘眞’。

 
— 《삼국지》, 오지(吳志)

즉, 229년에 손권이 황제로 등극할 때, 손견을 무열황제로 추존하는데, 손견의 이름인 堅과 같은 발음인 甄을 진(眞)이라는 발음으로 바꿔 버려서 삼국시대 이후 남방지역에는 진 발음으로 쓰이게 되었다는 기록이다.

한국으로 전래된 것은 남방음 진으로 바뀐 발음을 가진 甄씨가 전래된 것으로 볼 수 있다. 견훤도 이 甄씨인데, 그가 몰락한 이후 발음이 남방음 진에서 북방음인 견으로 바뀌게 되었다는 설이 있다. 그를 진훤으로 표기해야 한다는 주장은 이러한 맥락에서 나왔다.

삼국유사에 따르면 견훤은 이씨인데 진흥왕의 후손이라고 한다. 견(甄)은 병음은 진과 더 유사한데, 고려 이전, 이후의 한반도 한자 발음 체계는 차이가 있다.

황간 견씨 / 상주 견씨[편집]

황간 견씨후백제를 세운 견훤(甄萱, 867~938)을 시조로 한다. 상주견씨의 시조 아자개(阿慈介)의 맏아들로 견훤은 원래 이씨(李氏)였는데 후에 견으로 성을 고쳤다고 한다.

전주 견씨[편집]

견훤의 후손으로 전한다. 견의 한문 발음은 질그릇 , 질그릇장인 두가지이고, 병음은 전(Zhen)이다.[2]따라서, 본래 진이었다가 견으로 변한 것이 아니라, 李을 두음법칙으로 이로 쓰는 것과 비슷하기 때문에 甄의 발음은 견과 진으로 발음할 수 있다.

견훤의 후손이 지었다는 이제가기(李啼家記)에서 견훤은 신라 진흥왕의 후손이라고 기록했다. 진흥왕의 후손 가운데 원선의 아들이 아자개라고 되어 있고, 삼국유사는 이러한 내용을 수록하였다. 동사강목에서는 진훤 이름 앞 글자의 음이 (眞)이라고 주장과 함께 고대 한국에서는 甄(견)은 보다는 으로 발음 되었다고 기술하고 있다. 견(甄)은 질그릇 , 질그릇장인 두가지 발음으로 현재에도 사용되고 있다. 병음은 (Zhen), (Jian)인데, 중국에서 Jian로 발음되는 성씨는 Jin으로 발음되는 성씨와 혼용 사례가 있다.

견(甄)씨가 현재 별로 없기 때문에 견훤의 후손이 대부분 견씨을 유지하였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견(堅)씨[편집]

견(堅, Jian)씨의 시조는 견권(堅權)으로 선조는 전하지 않는다. 본관은 천녕 단본이다.

천녕 견씨[편집]

견권(堅權)은 고려 개국공신 2등이 되었고, 말갈족을 물리치는 공을 세웠고, 견훤, 박술희를 대동하여 후백제 신검을 공격하여 멸망시겼다.

주석[편집]

  1. 중국에서 e는 어 발음으로 zhēn은 전이며, Jian은 진과 유사한 발음으로 다른 진성으로 개성한 사례도 있다.
  2. http://hanja.naver.com/hanja?q=%E7%94%8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