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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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에 보존된 건빵
덴마크 크론보르에 있는 보존된 건빵
19세기 중반, 2가지 스타일로 다시 만든 건빵
일본식 건빵
일본 해상자위대의 건빵

건빵(Hardtack)은 과자의 한 종류인 비스킷이다. 명칭에 빵이 들어가 빵류로 혼동되는 경우가 많다. 주로 군용으로 소비된다. 처음 생산 되었을 때에는 끓여서 죽처럼 먹었다.

제조과정[편집]

밀가루에 효모를 첨가하여 오랜 시간 발효시킨 뒤에 섭씨150도 정도의 고온으로 구워낸다. 이 과정에서 수분은 거의 다 증발한다. 깨나 흑미, 현미 등을 첨가한 경우도 있다.

활용[편집]

비상식이나 보존식으로 이용되는 것이 특징이다. 한 입에 넣을 수 있는 크기와 적은 수분은 휴대성과 보존성, 그리고 간편성을 동시에 확보하였고, 특유의 담백함으로 질리지 않는 맛을 오랫동안 유지할 수 있다. 이러한 점들은 전투식량으로써의 조건에 잘 부합하게 되어 한국군에서는 건빵을 증식용 및 전투식량으로 보급하고 쌀가루를 포함하여 만든 쌀건빵을 2010년부터 보급하고 있다. 군용 건빵의 유통기간은 보통 6개월이다.

별사탕[편집]

건빵의 건조한 담백함은 다량 섭취시 목이 메여, 불쾌감을 유발한다. 이럴 경우 사용하는 것이 동봉된 별사탕이다. 보통 건빵 봉지 속에 따로 조그만 봉지에 싸여 함께 들어 있는 형태를 취한다. 모든 건빵에 들어있는 것은 아니다.

군용 건빵의 별사탕에 정력감퇴제가 포함되어 있다는 속설에 관하여 국방부에선 과거에는 별사탕을 만드는 기술이 부족하여 안에 좁쌀을 넣어 설탕을 입혔는데 이 좁쌀이 정력감퇴제로 오해받아 오해를 받아온 것이라고 한다.

현재는 기술이 발전하여 100% 설탕만을 이용하여 만든다고 한다.

건빵의 역사[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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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0년한국에는 일본인이 많았는데 제빵업, 과자를 만드는 사람도 있었다.

그 공장에 취직했다가 기계의 공정을 파악하고 과자를 만드는데에 관심이 있었던 이순택이란 한국사람이 일본인들이 하는 것을 보고 배웠는데 해방후에는 일본인들이 모두다 일본으로 돌아갔기 때문에 이순택 이라는 사람 외에는 아무도 그 기계를 다루거나 과자를 만드는 공정을 아는 사람이 없었다.

그 기계를 혼자 다룰 수 있었던 이순택은 그것을 바탕으로 건빵이라는 과자를 만들어 냈다. 당시엔 먹을것이 부족하였고 과자도 마땅한것이 없었기에 건빵이라는 과자는 성공적으로 팔렸다.

이후 한국 전쟁이 발발하자 북한인민군이 쳐들어 왔을 때, 서울에 공장이 있어 미쳐 도망가지 못한 이순택인민군의 협박아래 건빵을 만들었고 그들에게 건빵이라는 식량을 댔다. 그러다가 건빵 공장이 유엔군의 폭격으로 부서지게 되었고 이순택은 그것을 기회삼아 도망쳐서 가족들과 함께 부산으로 피난가게 되었다.

부산으로 피난을 간 이순택은 다시 건빵 사업을 하였고 주로 국군에게 납품하였다. 기반을 마련하여 휴전을 하자 다시 서울로 올라오게 되어 크게 건빵사업을 하였고 그 공장에서 배운 후계자들이 제빵, 제과업체(대표적으로 해태제과)에서 건빵을 대중화하였다.

사진[편집]

같이 읽기[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