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동근 (1916년)
강동근(1916년 11월 19일 ~ 2004년 2월 12일[1])은 대한민국의 비전향 장기수이다.
[편집] 생애
경상남도 하동군의 빈농가에서 태어나 1930년대 초반 진주에서 야학을 다니던 중 반일 운동에 뛰어들었다. 탄압을 피해 1934년에 중국으로 피신한 뒤 항일 운동을 계속했다. 태평양 전쟁 종전 후 1945년부터 1949년까지는 중국 공산당 소속으로 군 생활을 하였다.
1949년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으로 넘어와 조선인민군 6사단 소속의 군인이 되었다. 조선인민군 상위로 1950년 한국 전쟁에 참전하여 후방부대 책임자로 활동하였다. 후퇴하던 중 퇴로가 막히면서 지리산에 들어가 조선인민유격대에 합류했다.
1952년에 지리산에서 대한민국 국군 토벌대와 전투 중 체포되었다. 이때 오른쪽 팔도 잃어 외팔이가 되었다. 강동근이 제네바 협약에 따른 전쟁포로로 취급되었어야 한다는 견해도 있으나[2], 포로 대우는 받지 못했다.
1957년에 무기징역형을 선고받았다가, 제2공화국에서 20년형으로 감형을 받았다. 형기를 마치고 한 차례 출소했으나 사회안전법에 의해 1975년에 재수감되어 1989년에 다시 출소했다. 총 수감 기간은 초기의 미결수 생활까지 포함하여 약 37년이다.
출소 후에는 부산 북구의 양로원에서 생활하였다. 강동근으로 인해 입장이 곤란해진 가족이 사망신고를 내어 호적에서 삭제된 상태였고, 아들도 이미 사망하여 무적자로 혼자 살게 되었다.
2000년 6·15 남북 공동선언에 의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으로 송환되었다. 송환 후 조선민주주의인공화국에서 조국통일상을 수여받았고, 2004년에 송환된 비전향 장기수 가운데 다섯 번째로 사망했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애국렬사 칭호를 받고 애국렬사릉에 묻혔다.
[편집] 참고자료
- 이상헌. “[북송 비전향 장기수 남기고 싶은 이야기] <6> 사망신고로 무적자 강동근씨”, 《부산일보》, 2000년 8월 28일 작성. 2008년 8월 13일 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