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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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궁(角弓)은 한국의 전통적인 참나무, 산뽕나무, 물소뿔, 소힘줄, 대나무민어부레풀을 이용하여 만든 복합단궁이다. 과거 한국에는 10여 가지의 활이 존재하였지만, 현존하는 것은 각궁 하나뿐이다. 그래서, 보통 국궁이라고 부를 때에는 각궁을 의미하는 경우가 많다.[1]

각궁

역사[편집]

각궁은 삼국시대의 맥궁에서 기원하였다. 한국의 활의 역사는 오래 되었지만 각궁이 언제부터 널리 보급되었는지 확실치는 않다. 다만 함흥 선원전태조 이성계의 유물로서 이 각궁이 보관되어 있었고, 또 경국대전에 각궁에 관한 내용이 많이 남아있는 것으로 보아 고려 시대에 이미 각궁의 꾸밈새가 정형화되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조선 중기 이후 각궁은 심신수련을 위해 주로 사용되었으며, 갑오경장 이후에는 국가 제식무기 편제에서 이 제외되면서 완전히 군사무기로서의 힘을 잃었다.

특성[편집]

한국의 활은 길이에 따라 장궁과 단궁으로 나누었고, 재료에 따라 한목궁과 합성궁으로 나뉘었다. 한목궁은 한가지의 재료만 사용하여 만들어지고 합성궁은 여러가지 재료로 만들어진다.


각궁은 영국롱보우에 비하면 그 길이는 짧지만 오히려 위력은 강한데 이것은 여러가지 재료를 덧대어 만든 합성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만들기가 까다롭고, 특히 물소뿔은 인도에서 수입해오는 전략 물자로 재료 자체가 절대적으로 적어 대량 생산하기에는 무리가 따랐다.

여름에 습기를 먹게 되면 탄성이 떨어지고 초보자가 요령 없이 다루면 파손되기 쉬운 각궁은 오늘날에는 거의 개량궁으로 대체되고 있는 추세이다.

영국 장궁, 일본활(히고유미) 같은 두가지 목제를 접착하거나 목제의 경계부분으로 만든 활을 복합궁이라 하고

여러가지 재료를 접합하여 만근 각궁을 합성궁이라 한다

전수[편집]

1971년에 궁시장이 무형문화재로 처음으로 지정됐다. 당시 활을 만드는 장인은 서울, 경기 부천, 경북 예천에 있었는데, 장진섭, 김장환, 권영만이 각 지역의 대표적 장인이었다.

현재, 무형문화재 47호의 보유자는 활과 화살을 나누어 지정되어 있는데, 활은 김박영 궁장, 화살은 유영기, 김종국, 박호준 시장이 지정되어 있다. 김박영은 부천 활 박물관 명예관장을 맡고 있고, 유영기는 경기도 파주의 영집궁시박물관을 운영하고 있다. [2]

외부고리[편집]

주석[편집]

  1. 홀로 깨어 일어난 활의 명인 - 궁장 권영학 대구은행 사외보 향토와 문화
  2. 박재광, 천하제일의 장기 - 조선의 각궁, 조선일보